※ 팡세의 3회차 독회날입니다. 비참의 장에 관련된 내용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독회는 2/10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주최자의 판본은 민음사로, 본문에 표기되어 있는 숫자들에 관해서는 을유판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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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에서는 인간의 비참한 면모를 이야기한다.
112 - 295 : 내 것. 네 것. <이 개는 내 것이야> 가엾은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양지 쪽의 이 자리는 내 것이야. 이것이 온 땅위에서 벌어진 찬탈의 시초이고 그 양상이다.
소유욕으로 말미암아 많은 것들을 불태우는 비참한 굴레.
153 - 88 : 자신이 먹칠한 얼굴을 보고 무서워하는 아이들. 이들은 아이들이다.그러나 이처럼 허약했던 것이 나이를 먹는다고 하여 강해질 수 있는가. 생각이 달라졌을 뿐이다.
발전으로 인해 완성된 모든 것들은 발전으로 망한다. 약했던 모든 것들은 결코 절대적으로 강해질 수 없다. 그는 달라졌다. 그는 변했다. 라고 말한들 소용없다. 그는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이다.
사람은 변화하는 듯 변화하지 않는다. 더 나은 무언가가 될 수 있으리라고 소망해본들, 우리는 몇 년전의 우리에게서 조금 떨어진 우리일 뿐이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좋은 점이기도 하며, 동시에 비참한 점이기도 하다.
156 - (165) : 사유. 우리의 상태가 진정 행복하다면 행복해지기 위해 굳이 이것을 떠올리는 것에서 마음을 돌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행복이나 구원을 떠올릴 때, 우리 스스로를 비참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탓에, 우리는 차라리 행복에 관해 떠올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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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더 쓰고 싶은 구절들이 많았는데, 너무 길어서 비교적 짧지만 얕지는 않은 구절들을 몇 개 적는 것으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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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조금 더 사회적인 측면이나 관련 문제에 대한 파스칼의 견해를 알 수 있었던 거 같음.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몇 개 꼽아보자면 첫번째로 파스칼은 인간의 양면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듯하는 걸로 보여서 흥미로웠음. 파스칼의 용어를 쓰자면 변덕, 요즘 말로는 흔히 내로남불이라 칭하는 이중성을 인간적 미숙함, 혹은 선천적 약점이라 보고 조금 이해하는 듯한
느낌이었음. 두번째로는 법에 대한 파스칼의 독특한 인식이었음. 인간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법은 어떤 나라에서는 정의라고 해도, 어떤 나라에서는 불의가 될 수 있는 상대적인 의미라는 점, 인간이 법을 준수하는 이유는 그 법을 만든 지배자의 의도에 충성하기 위한 것이 아닌 자연법에 따라 마땅히 그러는 것이 옳기에 그렇다는 점, 법은 자족적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꽤
흥미로웠음. 세번째로 흥미로운 점은 본문에서 주최자 독붕이가 썼다시피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이라고 선언하는 데서부터 찬탈이 시작된다고 말하는 부분. 결국 자연 그 자체에 속해있는 것에 대해 우리가 소유권을 주장함으로서 분쟁과 갈등, 숱한 악덕들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뭔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적인 극단으로 나아갈 여지를 차단하자면
파스칼은 소유할 수 없는 것은 자연 그 자체, 한마디로 신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권리도 주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거 같았음. 즉, 자연은 신의 것이니 인간이 함부로 왈가왈부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정도..? 마지막으로 역시나 자연과학적 이성에 대한 비판도 빠지질 않던데 이 부분은 뭐 이제 팡세의 기본 밑반찬 같은 부분이라 따로
얘기할 필요도 없이 그냥 또 나왔네?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반가움ㅋㅋ
변덕스러움에 관해서는 굉장히 깊이 공감했던 부분인데, 사람을 일관성없는 오르간에 비유한 부분이 특히 그랬어. 사람간의 의사소통, 그밖의 모든 협의에 있어서 서로의 이해를 바탕으로 살아가는데,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타인의 모종의 면모가 이런 변덕을 낳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오해와 몰이해의 비참을 낳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 - dc App
아 그런 의미로 비참을 해석해도 괜찮은듯. 법, 질서, 불의, 변덕, 찬탈 같은 갈등의 근원들이 비참으로 귀결된다는 의미 같기도 하고
법에 있어서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자꾸만 떠오르게 되더라. 우리가 절대적인 정의를 확립할 수 있는 존재였다면, 땅 몇 마지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정의에 구애받으며 갈등을 빚는 일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 dc App
맞아, 근데 파스칼은 그 로마법은 로마에서만 정의지 당장 로마만 벗어나도 의미가 없다고, 아니 무의미를 넘어 불의가 될 수고 있다고 하니 그게 곧 인간의 비참함이기도 할듯
민음 113번, '다양성'을 말하는 부분은 로마서 12장 4, 5절 말씀이 연상됨.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근데 이 부분이 왜 '비참' 파트에 있는지 좀 의문이 생김...
좀 비약인 것 같긴한데, 개개인으로 보면 각자의 다양성이 있고, 서로서로가 서로를 하나의 개체로써 볼 수 있다는 다양성의 측면이 촌락이라는 뭉뚱그려진 하나의 개체로써 그려지는 것의 비참한 모습이지 않을까 싶어. - dc App
법이 자존적이다. 이 말에 의해서 갈라져 내려올 많은 논의들이 있을 것 같음. 내 주관으로 법은 사람이 사람끼리 집행할 수 있는 권리가 없기에, 법이라는 상위 개념을 통해 사람을 집행한다는, 상위 개념으로 존재하고 그로 인해 법은 신성하다라는 느낌이 있음
그러나 파스칼은 법은 그저 법이기에 법이지, 법이 법이기 위한 논리는 없다라고 말하는 게 놀라웠음. 법은 그냥 법인 거임. 또, 충격적이었던 건 법은 자존적으로 법이니, 법을 고치려는 법은 더 옳지 않다라는 것. 이게 비꼬는 문장일 지 아니면 진심일 지 구분이 안가는데 와...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해가 안가는 문장이 있는데, 을유판 60-94에 보면 <사람들은 정당하지 않은 관습이 소멸시킨 국가의 맨 처음 기본법에 의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부분이 이해가 안감. 정당하지 않은 관습이라 함은 아마 법에 반항하는? 혁명의 관습인 거 같은데 이로 인해 망한 나라의 기본법을 지켜야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기독교도로서 보면 이게 에덴을 가르킨다고도 생각이 듦. 올바르지 않은 관습. 아담과 이브가 열매를 먹어 버린, 호기심이라는 오만의 관습으로 인해 망해버린 국가 에덴의 첫 기본법, 아마 신의 말씀을 따르자는 건가?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변질되기 이전의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관습을 따르라는 의미는 아닐까? - dc App
나라가 부패해서 변질되버린 관습이 아닌, 막 세워졌을 때의 신선한 관습을 따르자는 건가???
오,에덴은 생각못해봤는데...역시 종교적으로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해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는가 봐. 난 자꾸 내 입맛대로 보는 느낌이라... - dc App
ㅇㅇ 난 그렇게 봤는데 에덴의 예시를 보고나니 신의 교리에 따르는 것이 가장 합당한 것이라는 의미로도 보인다. - dc App
나도 기독교도이기도 하고, 팡세가 종교적인 철학서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 쪽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큰듯
나도 비슷하게 이해했는데 '정당하지 않은 관습=인간이 만든 법'(관습 자체가 인간 사회의 오랜 암묵적 합의고 이걸 성문화한게 곧 법이라고 생각), '국가=자연? 신의 세계?', '기본법=자연법, 인간이 마땅하게 지켜야 할 신의 섭리, 말씀'이라고 봤음.
음 아무래도 이 구절은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게 맞나보다. 인간이 손을 대기 이전의 관습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옳다는 쪽인가 보네... 팡세도 은유가 많이 쓰여있다. 3장 까지 읽으면서 든 생각이지만 두 단락 이내로 쓰여진, 예를 들면 <비참. 솔로몬과 욥> 같은 구절은 그냥 넘어가는 건 어떤가 싶음. 너무 해석의 폭이 넓어서 오히려 무의미 하지 않나
어느 정도 동감. 정말 낙서 수준의 코멘트는 적절하게 넘어가야지 다 어떤 상징으로 의미하고 해석하려면 단서도 너무 없고 복잡해서 머리 터질듯ㅋㅋ
나도, 내 노트 보니까 솔로몬, 욥이 뭘 뜻하는지 꺼라위키 뒤져가며 고민한 흔적이 있는데 지금보니 삽질이네..
비참 솔로몬과 욥은 그 뒷부분에 부연 설명 있긴 함. 솔로몬은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서, 욥은 가장 비참한 사람으로서 '비참'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아마 개개인의 환경, 처지, 상황 등이 다르다 해도 인간은 결국 비참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음
성경 배경지식에 아예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은 너무 빡센 것임...
맞아. 존경 : 불편함을 감수하시오. 이것도 2장에 나온 건데, 내 나름으로 해석하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4장 가니까 길게 다시 설명되있더라... 퍼즐형식의 책이야
솔로몬은 전도서의 저자인데, 왕이 되어 온갖 향락을 누렸음에도 세상살이의 허무함에 시달리면서 살았음. 그게 전도서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래서 파스칼이 전도서를 자주 인용하는 듯. 욥은 알다시피 하나님에게 시험당해,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비참한 사내... 가족이 죽고 병에 걸리고 재산이 없어지는 비참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신을 믿었음.
아, 파스칼은 두 첨단에 서있는 인물들을 예로 들어 인간이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비참함을 보여주려고 한건가??? 그건 생즉고인 거 같네 욥은 알고 있었는데 솔로몬은 몰랐다...
ㅇㅇ 극과 극을 비교해서, 제일 넉넉한 사람도 비참하고 제일 빈궁한 사람도 비참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듯
이렇게 보니까 확실히 종교적으로 해석해볼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는게 느껴지네. 좀 다른 이야기인데, 비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라틴어중에omnes una manet nox(같은 밤이 모두를 기다린다)라는 말이 죽음이외에도 비참을 가리키는 말 같이 느껴진다. - dc App
그건 파스칼이 차례에서 예고한 거 처럼, 인간의 정신적 기능, 임의대로 내가 나누자면 상상력 이성 감성이라는 세 파트의 한계점을 드러내고, 그로 인해 기능을 확연히 하고자 하는 작업의 일환인 걸까?? 그렇게도 느껴지네
아 그리고 개인적인 의견인데 독회 시간에 대해서 대부분 이 시간이 편한거?? 나는 조금 더 늦었으면 해서... 9시나 10시? 너무 늦나
나도 6시는 저녁이랑 겹쳐서 8~9시 정도가 편함..
혹시 독회장이 가능하면 시간 늦추는 거 가능??
나도 ㄱㅊ
시간은 언젠든지 조정가능해유 - dc App
시간 몇시쯤으로 하는게 편해? - dc App
나는 9시 레미제라블 겹칠 수도 있으니까
그럼 9시에서 10시 사이로 조정할께 - dc App
아까 말하려다 까먹은 건데, 파스칼이 법이 생겨나는 과정을 즐거움의 전파와 같은, 유행으로 인한 성행으로 본다는 게 획기적이라 재밌었어. 사실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나라에 고유의 법이 자발적으로 생겨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단순히 타집단이 그걸 먼저 선행해냄으로써 모방해 일파만파 퍼지는 형식을 취해서 자리를 잡았 - dc App
다고 생각하니 크게 무리가 없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당장 현대에 사람들이 이유도 모르고 행하는 일의 대부분이 내막을 자세히 모르지만 단순히 유행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실행하는 경우가 많은 모습을 보니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거 같아. - dc App
정의는 유행해서 만들어진다 와 같은 맥락인 거 같음. 신에 대해서는 드높이면서도, 인간이 만들어낸 가치들에 대한 환상을 해체하는? 모습이 엿보이는 장이었던 거 같아. 법이나 정의나 대단한게 아니라 자족적이고, 그저 유행일 뿐이라고 하는게 충격적이기도 하네
전반적으로 사르트르가 많이 떠오르는 내용이었음. 116 - (205)는 구토에서 이와 거의 똑같은 문구를 본 기억이 있어서 놀라웠고, 141 - (455)는 어디서 주워들은 <존재와 무>에서 사르트르가 다루고 있다는 문제와 비슷해서 신기했음.
그것보다 마지막 156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ㅋㅋ '굳이 이것을 생각하는 것'에서 '이것'이 뭔지 모르겠음..
내가 사르트르를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사르트르와 관련해선 뭐라고 답변을 못하겠네. 다만 116-(455)는 우리가 다른 모든시대를 제쳐두고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나 살아가야하는 마땅한 이유도 없이, 그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살아가는, 그런 것들에 대한 비참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 dc App
141-(455)는 아가페적 사랑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는데, 모든 것들을 한 치의 차별도 없이 사랑하는, 그런 존재가 사람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어. 자아로 하여금, 타의 중심이 되고, 남과 분쟁을 조장하는데, 이 중 서로간의 이해를 통해 불쾌함을 지울 순 있지만 여전히 자신을 중심적으로 세상을 보는 탓에 불의한 존재로 보인다는 - dc App
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 마지막 156은 본문에도 써놓았지만, 행복 내지는 신이 아닐까 싶어. 우리가 지고의 행복 속에 놓여져 있다면, 우리 자신을 비참히 여기거나, 연민하거나, 구원을 바라는 일따위는 없을 것이니, 굳이 이걸 떠오리려는 시도에서 눈을 피해 달아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라는? - dc App
ㅇㅇ 116 관련해서는, 사르트르는 인간은 그 어떤 이유도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 즉 피투된 존재라고 말하거든. 읽자마자 이 개념이 확 떠올랐음. 그 다음에 구토가 떠올랐고. 파스칼은 아무래도 기독교 신도이다 보니 그걸 조건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비참이라고 생각한 듯 ㅋㅋ
글고 141은 나도 똑같이 이해했음. 사르트르는 "왜냐하면 각각의 자아는 모든 타인들의 적이고 ..."가 타인은 곧 지옥이다'랑 겹치면서 갑자기 떠오르더라고 ㅋㅋ
156은,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음. '진정 행복하다면 / 행복해지기 위해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에서 '굳이 이것을 생각하는 것에서 마음을 돌리는 것'이 ~에 들어갈 것 같음.
156의 구절 자체가 짧기도 하지만, 내가 종교적인 관점에서 글귀를 볼래도 아는 게 없어서 괜히 애매하게만 만든 거 같네... - dc App
또 '굳이 이것을 생각하는 것에서 마음을 돌리는 것'은 '이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 '행복해지기 위해 ~할 필요 없다'는 '행복해지기 위해 이것을 생각해야 한다'가 될 것 같음. 응? ㅋㅋㅋㅋ 쓰다보니까 점점 이상해지네
뭔가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말하려는 바는 알 것 같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파스칼이 말하는 무언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라는 게 논지인 것 같은데, 문제는 이 무언가가 신인지 아니면 행복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인지를 갈피를 못 잡겠어... - dc App
원래는 문장이 모순이다는 식으로 적으려고 했는데, 막상 적고보니 그건 아닌 것 같네 ㅋㅋ ㅇㅇ 정확히 '이것'이 뭔지 말을 안 해 놓아서 헷갈리는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