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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천주교는 조선의 사회 변동과 함께 신앙으로서 들어왔다. 그러나 집권층은 성리학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천주교를 박해했다. 천주교에 대해서 일부 양반 지식인은 유교를 보완할 수 있는 신학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천주교가 신앙의 형태로 양반을 포함한 사람들에게 수용되는 순간, 천주교는 조선 사회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다시피 조선은 성리학을 정학(正學)으로 삼는 국가였다. 성리학, 더 넓게 보면 유교는 세속주의 성향이 강한 이념으로 내세지향적인 천주교와는 본질적으로 맞지 않았다.
게다가 천주교의 평등 사상은 왕조국가를 부정하는 사상으로 보일 수 있기에 조선 사회 성원과의 갈등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 책은 조선 천주교회의 성립과 집권층의 박해, 그 과정에서 조선후기 사회에 천주교가 미친 영향을 설명하는 연구서이다. 저자가 예전부터 천주교를 연구해왔기 때문에 객관적 관점에서 조선후기 천주교를 새로 규명해보고자 하는 시도는 매우 좋았다고 생각한다.특히 기존 연구에서 많이 주목하던 서울과 경기 지역 뿐 아니라 지방의 천주교 수용 실태에 대해서도 연구한 것은 저자의 역량과 열정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인상깊었던 점은 조선 천주교회의 탄생과 유지 과정에서의 게층별 신도수의 변화였다. 1791년의 진산사건과 1801년 신유박해 이후 많은 양반 신자가 천주교를 버렸다. 그러나 신유박해 이후 수많은 박해 속에서도 조선 천주교회는 유지되었고, 특히 신도 구성은 여성이나 하층민 등 기존 사회 비주류층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이미 집권층이 지키려 했던 성리학적 사회질서가 그 수명을 다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변화와 천주교의 평등사상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의 천주교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황사영 백서에서 드러나듯 일부 천주교 신자들은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성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서양 선교사들은 조선이란 나라를 오리엔탈리즘적 관점에서 보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결국 1880년대가 되서야 천주교가 기층민들에게, 그것도 열강의 강제성을 통해 전파된 것에서 드러난다.
또한 이 책의 관점도 약간은 아쉬웠다. 저자 자신은 호교론적 관점을 지양하고 객관적으로 천주교사를 연구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적어도 필자가 느끼기에는 저자 자신도 호교론적 관점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의 오기나 오탈자가 읽을 때 신경 쓰일 수 있기에 이 점을 유의하며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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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심하지는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