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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지식 : 역사 274~304

오늘로 3부에 들어섰다. 3부의 시작은 1, 2부의 핵심 요약이자 두 문명권의 비교였다.

지리적 중심이 확고하고 하나의 이념(유학) 아래에서 진행된 중화 세계는 그야말로 강했다. 주나라 때 등장한 천자의 개념과 한 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유학) 정립. 이어지는 분열기 후 당 제국은 유학을 정치 체제로 완성했다. 하지만, 완벽한 체제는 닫힌 세계에서만 기능했다. 너무 순수했던 중화 세계는 외부의 작은 불순물에도 탁하게 흐려졌다. 결국, 세계사적 중심 문명의 자리를 서양에게 내주고 만다.

지리적 중심이 바다였기에 중앙의 힘이 약했던 서양. 한데 힘을 모으기 힘들었던 그들은 늘 중화 세계의 뒷꽁무니를 쫓았다. 유럽은 중국의 1000년이 지나서야 지배 이데올로기(그리스도교)가 등장했으며 다시 수 백년이 지나서야 그 이념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공인했다(밀라노 칙령). 이념이 만들어지고 통일 제국을 건설한 중국과 달리 유럽은 로마 제국이 먼저 들어서고, 이념이 따라왔다. 뒤늦게 따라온 이념을 실현할 구조가 부재했던 서양은 이때부터 중화 세계와 전혀 다른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한다.

천자의 관념아래 하늘과 땅은 모두 황제의 소유물이었던 중국과 달리, 서양은 하늘의 황제를 세우고 지상의 왕을 세웠다. 하나의 황제, 수십의 왕. 신성과 세속의 분권화. 이렇게 봉건제와 분건제가 발달하고 각개약전을 벌인 결과, 중심의 힘(중국)에 좌우되어 흥망성쇠를 이루던 동양과 달리 서양은 어느 하나가 망해도 다른 것들이 흥하며 문명적인 발전을 이뤘다. 발전에 가속도가 붙은 서양은 결국 순수했던 중화 세계에 침범하기에 이르렀다. 오리엔트, 흉노(훈족), 돌궐(튀르크), 몽골의 걸음걸이에 존망을 위협당하던 서양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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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집약체, 명제국.

한족의 봉기로 몽골(원)을 몰아내고 오랜만에 중원의 터줏대감 한족이 방석을 차지했다. 중화 역사상 가장 미천한 신분의 황제, 주원장이 명 제국을 세운 것이다. 여진, 거란, 몽골에게 탁해질대로 탁해진 중원에, 주원장은 다시 순수함을 덧씌웠다. 그는 송 제국의 실패를 외부적 요인(북방 이민족)에 한정하고 중앙집권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명 나라는 가장 완벽했던 송 제국마저 실패한 중화식 제국 체제를 다시 실현한다.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지는 못할 망정 옛것을 고대로 가져다 쓰니 명의 미래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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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 초기 증후군 : 당-고려-조선-명

분열기를 끝내고 하나로 통일되는 당시 중앙의 힘은 그야말로 넘사벽이다. 카리스마 넘치고 대륙을 통일할 수 있는 군사를 지휘하는 통솔력. 하지만 카리스마와 통솔력은 유전이 아니다. 대륙 통일을 이룬 아버지보다 세자가 뛰어날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여기서 재밌는 점은 늘 걸출한 황제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에는 이유가 있다.

왕자의 난!

초대 황제 사후, 다음 제위는 장자가 가져가야 마땅하다. 하지만, 수많은 왕의 아들 중에서 가장 유능한 아들이 장자일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수많은 아들중 왕위에 아무도 욕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 왕자들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시작한다. 이 싸움의 승자가 바로 3~4대 황제다. 수 양제, 한 무제, 당 태종, 광종, 태종 이방원. 이 걸출한 3, 4대 왕들은 건립자가 세운 명패를 닦고 닦아 체제를 완성한다. 완성된 체제는 이후 큰 변화 없이 유지되며 곪고 곪아 터지고 만다. 건국 초. 50~100년 동안 빛나는 발전을 이루고 곧장 추락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뛰어난 황제는 거저 나타나지 않고 완성된 체제는 내리막길을 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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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성 외유 : 정화의 남해 원정

명 초기에도 강력한 중앙권력이 형성됐다. 하지만 권력의 정통성은 없었다. 한족 왕조이나 미천한 신분의 황제 주원장은 이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오랜만에 중원을 차지한 한족 왕조를 홍보하고자 대규모 해상 원정을 계획한다. 하지만 이 엄청난 규모의 원정이 역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이유는 원정의 목적이 '정벌'이나 '식민지 개척'이 아닌 '홍보'였기 때문이다. 한 세기 후 훨씬 작은 규모의 이베리아 서해 원정이 정화의 남해 원정보다 커다란 역사적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바로 '목적성'이다.

남해 원정은 자신을 알리는, 일종의 뽐내기 원정이었고 서해 원정은 남을 알아가는 실익을 추구한 행위였다. 돈지랄과 투자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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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사의 문제

서양의 일부일처제는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보다 오래된 제도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바람을 피울지언정 결혼은 한 번 만했다. 이것은 오리엔트 세계(일부다처제)에 비해 정치체제의 발달이 뒤늦었다는 점을 말해주기도 한다. 일부일처제의 우너형은 대우혼인데, 이는 원시사회의 관습이다. 아마 문명의 발달이 늦은 서양에서는 고대적 대우혼의 흔적이 남아 일부일처제로 정착되엇을 것이다.

그래서, 서양은 동양과 달리 권력 불안을 겪어야 했다. 중국, 오리엔트는 많은 후궁, 많은 아들이 있었으니 후사에 문제가 없었지만 로마 황제는 후궁은 있었어도 오직 정실의 아들만을 후사로 삼았다. 그렇기에 왕통이 끊기는 경우가 잦았다.

팍스로마나 시대의 오현제는 마지막 황제를 제외하면 모두 아들이 없었다. 그렇기에 양자 상속제가 혈통 세습을 보완하는 대안으로 기능했는데, 황제 측근이나 장군중 리더십을 갖춘 사람을 나이와 무관하게 양자로 맞아 제위를 계승한 것이다. 덕분에 뛰어난 황제들이 뛰어난 인물를 골라 왕권을 세습했으니, 항상 좋은 황제가 제위에 오른 것이다. 이 번영기를 끝낸 게 오현제의 막내, 아우렐리우스의 친아들로 악명 높은 폭군 콤모두스였다. 제국의 몰락을 앞당긴 폭군이 세습으로 제위에 올랐다니, 세습제는 문제가 많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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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과 조선의 서열 정하기

몽골에서 해방된 후 세워진 신생국 명과 조선. 두 지역 모두 원의 지배기 동안 중화 질서에서 벗어나 있었으므로 처음으로 서로가 낮설다. 명은 옛 중화 세계의 귀화를 노려 조선이 사대의 예를 갖추길 바라고, 조선은 같은 신생국 처지에 수구리기 싫다. 조선의 건국자는 이성계지만 실질적 기획, 지휘는 정도전이 맡았으니 주원장과 정도전의 신경전이 벌어진 것이다. 주원장은 정도전의 국왕 책봉을 거절하고 정도전을 황도로 부르는 등, 정도전 길들이기를 시전했고 이에 맞서 정도전은 요동 정벌으로 시위한다. 이렇게 신경전을 벌이던 둘이 같은 해에 요절하자 갈등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에서 볼 수 있듯, 더이상 중화 세계의 중심이 가지는 위상이 예전같지 않았다. 그러나 힘을 잃은 중심은 변할 생각이 없었다. 중심이 변하지 않으니 주변이 먼저 변한다. 중화 세계는 좁아지고 비중화 세계는 힘이 커진다. 당대오말에 일찍이 비중화로 돌아선 일본이 국제 무대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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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삼국 전쟁

수세기 동안 분열기를 거친 일본. 16세기 말에 일본 열도는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을 이룬다. 봉건영주(국가)가 하나의 중앙집권적 국가로 통일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익숙하지 않은 평화와 남아도는 군사력. 이 물리력을 효과적으로 투자하기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륙 침략을 시작한다. 결과,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원대한 구상과 달리 대륙 침략은 실패로 끝났다. 사무라이 개인의 무예는 전투에서 빛나지만 전쟁에서는 달랐다. 한반도 남부를 파죽지세로 유린한 일본군은 해상에서 일어난 예기치 않은 사태에 기가 꺾였다. 이름도 찬란한 이순신 장군님의 등장이다! 일본은 섬나라였으나 자체로 중화의 역사를 지닌 탓에 해군이 약했다. 이런 약점을 알고 해군으로 승부한 이순신의 전략 감각은 탁월했다. 이순신 장군의 연전연승 무패에 더해 의병들의 활약으로 왜군의 북상을 저지했다.

그리고 명의 뒤늦은 생색내기용 참전. 전황이 균형을 이룬 뒤 참전한 명은 개전 몇 개월이 지나도록 눈치만 보다가 7월에 국경수비대 일부를 파견해 일본에 대패한다. 겁을 잔뜩 집어먹고 싸울지 말지를 놓고 몇 개월을 질질 끌다가 12월에 군대를 파견한다. 당시에는 무능한 황제 치하에서 당쟁이 만연했는데, 이는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 왕실과 판박이다.

명의 군사 파견 이후 전황은 몇 년 동안 소강상태에 머무르다가 강화 교섭이 진행됐다. 전장은 조선이었지만 조선은 외교권을 중국에 위탁한 상태라 명과 일본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일본은 터무니 없는 강화 조건을 걸었고 명의 책임자는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 두려워 황제에게 거짓 보고를 올렸다. 도요토미는 명의 사신이 그를 일본 왕으로 책봉한다는 칙서를 주자 격노했다. 이듬해 도요토미는 다시 원정군을 보낸다. 심유경의 농간으로 조선은 정유재란을 겪게 되었다. 정유재란은 이순신과 정신차리고 전열을 가다듬은 조선 관군에 막혀 실패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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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전후처리

도요토미의 터무니없는 망상, 터무니없는 요구. 명의 터무니없는 자세. 그리고 화룡정점은 조선 정부의 터무니없는 전후 논공행상이다. 1등 무공훈장에 해당하는 호성공신은 적군과 맞서 싸운 군인이 아니라 국왕 선조를 의주까지 안전하게 도망치도록 노력한자들이 오른 것이다. 2등에 해당하는 선무공신으로 이순신을 비롯해 무신과 의병장이 임명되었다. 왕의 발을 닦은 내시가 1등, 전쟁에 참여한 군사들이 2등인 것이다.

하지만 동양식 왕조의 기본 이념이 비추어보면 불공정한 논공행상은 아니었다. 동양식 왕조에서는 사직이 제일 중요하다. 사직의 구현체 왕은 곧 국가이니 국난이 닥쳤을 때 국가가 멸망을 피하고 생존하려면 왕이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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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정말 동양제국의 뽕에 막 차올랐다. 하지만 시대가 진행될수록 뒤쳐진다. 너무 올곧은 이상만을 세워서 이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묶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에휴... 아직 대항해시대, 르네상스를 제대로 안 배웠는데 벌써 이렇게 뒤쳐지는 느낌을 받으니까 동양 문명권 뽕에 차오르던 나한테 열등감까지 조금 생김. 라때는 말이여!! 문화가 왜 있는지 알거 같다. 그리고 정화의 남해 원정... 진짜 순수 그자체다. 중원에 명 제국이 들어섰어요!! 모두들 다시 중화를 섬기세요!!! 하고 떠난 원정이라니... 그 크고 많은 배로 아메리카를 가라고!! 어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서양 문명이 딱 이길을 걸은 거 같다. 동양은 중국이 너무 강해서 그냥 혼자 다 해먹었어. 옛말 틀린거 하나 읎다이!!!



내일은 꼭.... 꼭 로미오와 줄리엣 읽을 거야! 전생슬라 덮고 읽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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