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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왕자와 거지』는 21세기의 기준에 부합하는 아동 문학으로 성공적으로 가공되었기에 엄청난 인지도를 끊임없이 얻은 소설이다. 작가인 마크 트웨인 역시 이 소설을 아동 문학이라고 생각하고 집필했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마크 트웨인 시대의 간극이 빚어내는 시대착오적 관점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조정하는 것만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21세기 어린이들의 입맛에 맞출 수 있었다. 작품 내부의 기승전결과 권선징악이 확실하고, 왕자와 거지의 신분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는 작품의 뼈대가 여러 아이들의 보편적인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용이하다는 기존의 장점은 거의 변질되지 않았다. 단연코 조정 과정에서 가장 많은 매력이 깎여나간 부분은, 현대 아동 문학으로서 불필요한 것을 넘어 최대한 지양해야 하는 부분인, 그 시대 어린이들은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잔혹성과 빈부격차, 신분 등을 꼬집는 풍자성이다.



가공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누락된 『왕자와 거지』의 잔혹성과 풍자성 중 특히 풍자성은 마크 트웨인의 능수능란함이 가장 돋보이는 매력이다. 물론 나 역시 이 책을 아이들에게 재미있고 가볍게 읽히도록 조정해야하는 입장에 서 있다면 잔혹성과 풍자성을 도려낸다는 똑같은 선택을 종용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후세 사람들의 입맛에 의해서 트웨인 본연의 매력이 감퇴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통해 그 누구보다도 미국적인 소설을 쓰는 미국적인 작가라는 호평을 얻은 그는, 무대가 바뀌어서인지 몰라도 『왕자와 거지』라는 영국적인 소설에서의 풍자의 빈도와 표현의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왕자와 거지』 속 귀족층과 빈민층 모두 트웨인의 엄격한 눈길을 벗어나지 못해 전 영국이 무분별한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되었다. 영국의 전반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짧지만 강렬한 빛과 대비되어 오묘한 느낌을 준다.



 이 당시, 즉 헨리 8세가 재임하던 시대의 영국은 명보다 암이 훨씬 크고 권위적인 시대인 것처럼 보인다. 왕에게 옷을 입힐 때 많은 사람이 일렬로 서서 하나씩 하나씩 옷을 전달하는 등 궁정의 절차는 번거롭고 실속 없었고, 엄정한 법의 무서움에 비해 떠돌아다니는 부랑자들의 규모와 분노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부랑자 이하의 약자들은 그들의 횡포에 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었다. 또한 기술력과 신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면 무조건적으로 근처 인물이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고, 사람의 귀를 자르고 노예를 뜻하는 이니셜을 새겨 넣는 잔혹함과, 목장을 짓기 위해 일하던 노동자들을 내쫓던, 동물이 사람보다 우선시되는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시대가 바로 트웨인이 묘사한 『왕자와 거지』의 배경이다.



 거의 모든 영국인들이 트웨인의 펜에 의해 부정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에, 가짜 왕이자 부랑자로 태어난 톰 켄티의 양심과 헨리 8세의 아들인 진짜 왕 에드워드 튜더의 보은, 그리고 부랑자 신세를 겪던 에드워드를 바라는 바 없이 전폭적으로 도운 마일스 헨든의 따뜻함은 작중 음습한 분위기와 대조되어 특히나 아름답고 고결해 보인다. 톰의 경우 궁정의 생활상에 적응한 이후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도취되었으나 손에 쥔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친어머니를 모른 체한 잘못을 행한 이후, 에드워드 왕의 삶을 포기하고 다시 톰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갈구했으며, 에드워드는 선뜻 왕위를 양보한 톰과 지고지순하게 자신을 따른 마일스에게 확실하고 파격적인 보상을 해주었다. 마일스 역시 곤란한 처지의 에드워드를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동정심으로 감싸 안았고, 거지로밖에 보이지 않는 에드워드가 자신을 하대하더라도 에드워드를 정신이 이상한 아이로 생각해 다른 어른들처럼 그를 학대하지 않고 기꺼이 침대를 양보하고 지근거리에서 걱정해 주었다. 에드워드를 계속 위협하고 핍박한 톰의 아버지는 교수형을 선고받았고, 마일스의 재산과 연인을 앗아가고 마일스를 거짓말쟁이로 몰아 투옥시킨 동생 휴 헨든은 감옥에 갇혔다. 또 왕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고관들은 가짜 왕이라는 것이 밝혀진 톰에게 해코지하려다 에드워드의 면박을 받았으니, 이 세 사람은 선한 세 사람이 악인들의 엉덩이를 걷어찼다는 노골적이고 전통적인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작품의 엔딩을 상기하는 것으로 독후감을 마무리하기 전, 한 가지 중요한 의문점을 마저 떠올리기로 하자. 왕자 에드워드와 거지 톰은 서로 어느 정도 묘하게 닮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쌍둥이마냥 완전히 똑 닮았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왜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를 채지 못했을까? 이는 트웨인의 다른 노골적인 풍자와 비판에 교묘하게 가려져 선뜻 눈에 띄지 않는 풍자이며, 아마 작가의 풍자 중 가장 핵심적인 풍자일 것이다. 왕자와 거지가 옷을 바꿔 입자, 모든 주변인들이 둘의 행동이 얼빠지게 바뀌었다는 점은 지적해도 외적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사람의 가치를 사람의 외견이 아닌 신분과 옷의 외견에 따라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신분이 바뀌었다는 것도 이런 작품에서 흔히 있을법한 미세한 신체의 차이로 알아채는 것이 아닌 거적때기를 걸친 에드워드가 옥새의 위치를 떠올린 것으로 증명했다는 사실도 사람들이 사람의 자리가 사람의 진가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사람의 내면이 아닌 외면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인식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옷을 바꿔 입었다는 간단한 행위에 의해 너무나도 쉽게 두 사람의 처지가 바뀌었다, 트웨인은 신분에 따른 계급은 지고불변하지도 않은 허망한 것임을 작품에 내포시켰고, 이는 곧 신분에 종속되지 않은 마일스와 에드워드가 쌓은 신뢰와 애정이 이 작품 내에서 더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내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왕자와 거지』에서 마일스 헨든이 무일푼인 에드워드가 작위를 약속한 일을 곱씹으면서 한 대사를 그대로 박아넣는 것으로 내 독후감을 마무리하겠다. “인색하고 이해타산적인 권력한테서 노예처럼 비굴하게 얻는 진짜 작위보다 차라리 깨끗한 손, 맑은 영혼의 소유자에게서 공짜로 얻는 이 보잘것없는 가짜 작위가 더 낫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