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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과거에 camus의 Sisyphus의 신화에 대해서 들었는데요. 내용은 아실테니 따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아무튼 제가 궁금한것은 제가 볼때 우나무노의 돈키호테는 신을 믿는 Sisyphus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또한 Sisyphus처럼 모든 행동이 무의미해지며 부조리한 현실에 대항하는 실존적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Sisyphus가 끝없이 열정적으로 돌을 산에 나르면서 운명에 대항한다면 돈키호테는 풍차에 돌격하며 운명에 저항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처지를 아주 잘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자신들의 행동들이 모두 무의미해질것을 알지만 끝없이 운명에 저항합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비슷한 비극속의 영웅들입니다. 삶의 부조리함과 죽음에의한 무의미성에 투쟁하는 영웅들이죠.

그러나 돈키호테가 Sisyphus와 다른점이 있다면 그는 체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운명과 이 투쟁의 무의미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확실성 우리 운명의 불확실성에 희망을 가집니다.

 그는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연약하고 가망없는 희망 모순적인 희망없는 희망 이것이 돈키호테의 희망입니다. 돈키호테의 투쟁중 일부는 이 희망을 비웃는 자신에 대한 투쟁이자 이 희망을 비웃는 단체 개인과의 투쟁입니다. 아마 Sisyphus는 이런 돈키호테를 보며 비웃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아마 이렇게 말할것입니다.

 " 돈키호테는 유니콘과 산타클로스를 믿는 자다. 그러나 Sisyphus는 비웃지만 그 어떤 희망도 없습니다. 그의 투쟁자체가 그저 부조리의 연장이자 무의미한 세계에대한 의미없는 발버둥입니다. 잔혹한 운명은 Sisyphus를 비웃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과거 우나무노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성이 의지보다 위에 있는 자들은 희극적 최후를 맞이한다. 종국에 신은 그를 비웃고 말것이다. 그러나 의지가 이성보다 위에 있는 자는 사실 영웅적인 자이다.

 왜 돈키호테가 영웅적인 존재일까요?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소망을 기반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돈키호테는 자신이 비웃을 당한것 또한 알면서도 이 행동에 나서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 한테 모범을 보여 희망을 주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나무노 말대로 돈키호테로 인해 그를 비웃는 자들 또한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즉 돈키호테는 구원을 위한 투쟁과 운명에 대한 저항 2가지를 동시에 달성시키는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돈키호테는 절절히 원합니다.

 그에게 신앙이란 믿는것이 아닌 있기를 바라는것이 때문입니다. Sisyphus 또한 이것을 원하겠지만 아마도 그는 이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할것입니니다. 비이성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이것을 원하며 갈구하며 사랑하며 이것이 사실이기를 바라며 이것이 사실인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리고 그는 Sisyphus 같은 처세술이 아닌 정직성을 통해서 자신이 영웅임을 증명합니다.

진정한 영웅이란 Sisyphus 처럼 운명의 비웃음에 맞서는 것이 아닌 스스로 비웃음 거리가 된는것입니다. 진정한 영웅은 예수처럼 마지막에 아버지 아버지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외치는 자야만 합니다.

진실된 영웅은 비극에 우는 법을 아는 자야만 합니다. 과거 솔론이 울었던 것 처럼 아무 의미 없고 무의미 한다 해도 우리는 반응해야 합니다. 이 비극에 말입니다. 아무런 말없이 돌을 나르는 Sisyphus와 다르게 우리는 울때 울어야 합니다. 과거 예수가 나사로가 죽었을때 울었던것 처럼 우리는 슬퍼해야합니다. 이것이 진정 뼈와 살을 가진 인간이며 진정한 우리 영혼의 영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