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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글 씁니다. 저자 박균호님께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책을 받은 건, 2월 7일 오전 9시의 일이었다. 평소보다 피곤한 아침이었다. 간밤엔 여느때보다 물류가 많이 들어왔고, 그 탓이라고 해야할지 실수로 야쿠르트 5봉지를 터뜨려버렸고, 5봉지, 25개, 자그마치 1리터 하고도 625ml의 야쿠르트를 울며 겨자먹듯 다 처먹어야만 했고, 시급 8590원 중에서 3000원이니까 얼추 20분 정도가 방금 날라갔구나, 그런 셈을 했고, 플라스틱 병 위에는 큼지막하게 빙그레가 쓰여 있었지만 난 도무지 웃을 수 없었고... 아무튼 그 덕에 아침이 돼서도 입안에 유산균 향이 맴돌았다. 그건 뭐랄까 배설을 부르는 향이었다. 물리적인 배설보단, 감정적인 배설을.
- 그러니까, 책장을 펼 때부터 나는 다소 심사가 뒤틀려 있었다. 뭐든 하나만 걸려봐라... 그런 심정으로 책장을 펼친게 사실이다. 그런데 웬걸,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내 심정은 점점 차분해져 갔다. 심지어 책장을 덮을 때는 화장실에서 막 나왔을 때의 상쾌함마저 느껴졌다. 아, 이게 카타르시스인가... 까진 물론 아니었지만, 적어도 시간을 들여 서평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쩐지 그게 좋은 책을 받은 사람으로서의 예의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제목부터 대충 예상했겠지만,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책에 관한 글이다. 일종의 메타-책이라고나 할까. 독특하게도, 이 책은 다른 책들의 내용을 소개하지 않는다. 대신 책이 만들어진 배경, 출판사와 번역자, 책의 외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기호품으로써의 책이 아닌, 수집품으로써의 책을 말한다. 예컨대, 기상도와 현해탄의 표지를 이상이 직접 디자인했다는 사실이나, 박상영이 극찬한 문예지 “후장 사실주의”가 실은 천 부밖에 뽑지 않은 희귀본이라는 사실 같은 것들 말이다. 일견 무미건조한 내용만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진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책을 수집하면서 겪게 되는 온갖 중상모략, 투쟁, 모험을 적나라하게 담아뒀다. 작가 자신도 치밀한 책 사냥꾼으로서 남들을 속이고, 희귀본을 강탈한다. “이것은 병약하고 겁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문구가 책장 앞에 붙어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 책을 읽는 내내, 난 한 가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균호씨는 혹시 책 먹는 여우가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많은 책을 말 그대로 "밥 먹듯이" 읽을 수 있지? 확실히 선생님께서 책을 다루는 모습은, 읽는다기 보단 먹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나 할까, 차라리 식재료를 다루는 모습에 가까워 보였다. “현암사의 나츠메 소세키 전집은 플레이팅이 참 먹음직스레 생겼고, 우엘벡의 소립자는 뭐랄까... 에펠탑에서 된장찌개를 먹는 느낌이랄까...” 그런 평가들을 바라보며, 와, 이 분은 진짜구나... 책의 맛을 아는 분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한편으론, 혹시 소금과 후추가 있을까 싶어 책 맨 뒷장을 펼쳐보기도 했다. 왠지 조금 짠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 바로 그 짠맛이, 또 페이지 너머로 느껴지는 왕성한 식욕이 - 야쿠르트 탓에 뒤집혀있던 내 속을 가라앉혀주었다. 특히 민병산 선생님에 관한 단락을 읽었을 때 속이 제일 편했다. 왤까? 왜 속이 가라앉았지? 그런 호기심에, 난 ‘으능나무와의 대화’ 편을 다시 펼쳤다.
- 종종 질문을 받곤 한다. "책을 왜 읽는거야?" 그럴때면, 늘 대답이 궁해지곤 했다. 책은 돈을 주지 않는다. 밥을 먹여주지도 않는다. 어떤 답을 주는 대신, 질문만 늘린다. 굳이 책을 읽을 이유가 뭐 있어? 그래봤자 책인데... 그렇게 책의 입지는 점점 줄어만 간다. 그 자리는 유튜브가 대신한다. 알튀세르의 주장대로, 우리의 모든 것은 결국 경제(혹은 경제성)라는 최종 심급에서 결정되는 지도 모르겠다. GS에서 “550원! 땅! 땅!” 하고 야쿠르트의 가치를 정하는 것처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8590원! 땅! 땅!” 하고 내 가치를 셈하는 것처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을 사랑하는, 아니 그보단 책을 밥 대용으로 삼은 박균호 선생님의 글을 바라보며, 나는 어째선지 위로를 받았다. 그래, 책이 뭘 해주진 않지만... 그래도 책이잖아... 다 필요 없어. 책, 너만 있으면 돼. 꼭 그런 낯 뜨거운 대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이상으로 책에 대한 뜨거운 사랑 같은 걸 넘겨받은 느낌이었다. 그와 더불어 새로운 세계에, 부르디외였다면 책장이라고 할 만한 그런 세계에, 초대받은 기분이 들었다.
- "그래봤자 책 아냐?"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래도 책인걸"이라 대답해주며,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한 작가의 글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고 싶다. 다만, 읽고나면 그들 역시 책을 먹고싶어질 지도 몰라 염려는 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 dc official App
와..님이야 말로 이렇게 글을 달콤쌈쌀하게 잘 쓰시다니 ㅎㅎㅎㅎ 제 부족한 책을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데이...
후장 사실주의....?
나도 안 읽어봤는데, 내용이 별로 자극적이진 않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