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팡세의 4회차 독회날입니다. 권태의 장에 관련된 내용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독회는 2/13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주최자의 판본은 민음사로, 본문에 표기되어 있는 숫자들에 관해서는 을유판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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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판 기준 단 한페이지만으로 목차를 차지하고 있는 탓에, 사실상 4-5회에 걸쳐 연계적으로 이야기를 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게 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오늘은 분량이 적어서 댓글로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분량이 적으니 또 의외의 장점이 생겨나는군요.
- dc official App
오늘 독회인 거 깜빡했다.. 빨리 읽고 오겠습니다
https://m.dcinside.com/board/reading/240164
오늘자
팡세 민음 버전 ㅇㅇ
오늘의 제목은 권태와 인간의 본질적 특성임. 160번 권태에 관한 얘기는 128번 “우리를 비참에서 위로해주는 유일한 것은 위락이다.”라는 말과 이어지는 듯...? 우리의 본성은 움직임에 있고, 열정과 오락을 잃어버린 사람은 끝없는 허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 같음.
인간의 본질적 특성은 인간의 허영심과 엮어서 설명함. 우리는 남들에게 있어 보이려 애쓰고, 그것을 위해선 때때로 추잡한 일을 하기도 하고... 결국 이것도 파스칼이 말하는 비참과 허무의 일종인 것 같음.
파스칼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뭔가 무척이나 염인적인 거 같가...
제목도 권태고 마지막 문단의 의미심장함(?)을 생각해보면 뭔가 불륜이나 유흥이 생각남. 부부나 연인 사이에 권태가 찾아오고,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는 남자... 뭐 이런 속된 예를 가지고 썼을 거 같진 않은데 내 수준에선 이런 생각부터 떠올랐음ㅋㅋ 그리고 인간에 대한 묘사에서 흥미로운 건 종속과 독립의 욕망을 나눴다는 점. 종속과 독립에 대한 욕망은 전혀
다른 의미일 텐데 무슨뜻일까
어딘가에 종속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타로부터 독립적이길 바라고, 욕망적인 존재이다. 라고 보긴 했는데 이게 맞는걸까 - dc App
호기심은 허영일 뿐이라는 말도 뭔가 여러가지 의미로 나를 찔리게 함. 사실 어려운 비문학을 읽는 내 모습과 심리에서 과연 0.000001프로의 지적 허영이 없을까 싶기도 하고... 결국 호기심은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 같게 하는 착각에 이르게 하는 허영의 본질이라고 보면 되려나
종속은 신에 대한 종속, 독립은 속세에 대한 독립, 욕망은 그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감정? 이라고 이해하긴 했는데 나도 잘모르겠음ㅋㅋ
나도 이 구절에서 가슴이 얼얼하더라. 내가 정말 단순히 "알고자 함"에 기반해서 책을 읽어왔는지 아니면 그런 지적 저작활동을 기반삼아 남들보다 나은 지평에 있다는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서 시작한 활동인지 되짚어보게 되더라... - dc App
단편적이라 해석의 여지가 좀 많긴 해... - dc App
그 불륜 파트는 먼가 그런 거 같음. 평소엔 불륜 안 해도 자신의 가정생활에 만족했었는데, 딴 여자와의 불장난으로 인해 가정에서의 만족감이 사라지고 비참해진다는 것...? 쾌락을 좇는 시도가 오히려 우리를 더 무디게 한다는 말인 것 같음
뭔가 말초적 자극, 자극을 위한 자극에 대한 경계인 건가... 감정이란게 본래 완벽히 이성의 지배 아래만 있지 않으니 권태가 자칫 잘못된 욕망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
욕구적으로 한발짝 나아간 상태에서 다시 되돌아오면 그 "비교적 따분한 상태"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는, 인간의 원초적 욕구에 대한 비판같이 느껴졌는데 뭔가 더 있을까? - dc App
파스칼은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권태'로 본 게 아닐까 싶음. 인간은 누구나 지금의 자신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 상상적인 나, 맛보지 않은 행복을 추구하니까. 하지만 그 '나'를 구성하는 것은 일시적인 것들이고, 159에 나타나 있듯이 행복은 결코 지속되지 않기에(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본성은 움직임에 있다'라고 한 거 같음) 인간은 본질적으로 권태로울 수밖에 없다 - 나는 이렇게 이해했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167임. 인간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파스칼의 지적대로 우리는 결코 어떤 사람의 모든 부분을 사랑할 수 없음. 그렇기에 사랑하는 부분이 제거되면 그 사랑은 끝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사랑'이라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음
167 구절을 보면 사람은 아가페적 사랑을 구현할 수 없다는 걸 느끼게 되는 것 같아. 모든 부분을 공통으로 평등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어느 한 부분을 전체에 가깝게 보기때문애 타인과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아 - dc App
사람들은 어느 한 부분을 전체와 치환해 생각한다고 할 수 있겠구나. ㅇㅇ 사실 모든 부분을 평등하게 받아들이는 건 그 누구라도 불가능할 테니까..
마지막 문단은 생각해보면 그닥 어렵게 생각할 필요없이 가정생활에 충실하라는 교훈으로 받아들여도 될듯. 결국 기독교 교리 안에서 뭔가 비근한 깨달음을 주기 위한 목적이라면 가정과 가족, 아내와 자식들에게 신경 써야한다는 가장의 의무를 되새겨주는 것 같기도 하고ㅋㅋㅋ
깊이 파고드는 것 이상으로, 한 눈에 보고 파악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것들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되는 거 같다 - dc App
가장의 의무 ㅋㅋㅋ 그럴듯하다
근데 마지막에 "이보다도 더 흔한 일은 없다."란 사족 붙인 거 보면, 먼가 쾌락의 보편적인 허무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