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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좋다. 근데 재미는 없다. 현대 정치 사상의 거의 모든 내용들을 다 담다보니 얻어갈 수 있는 지식은 확실하지만 백과사전나열식에 가까워서 읽는 재미는 떨어짐.

총 12가지의(이거도 급진적/극단적 좌/우파 내에서 또 분과가 있지만) 정치사상을 두고 4가지의 철학적 가정과 7가지의 정치적 원리에 대해 설명하는데, 통독하기 보다는 차라리 관심 가는 사상 하나 잡고 쭉 읽는게 낫지 않나 싶다.

근데 역자 서문이랑 저자 서문, 1장 정도는 내용적으로도 꽤 괜찮으니 일단 그거 만이라도 읽어보면 좋을 듯. 여담으로 오바마 정부에 대한 얘기가 보론으로 수록됐는데, 집권 초기에 써서 그런기 예측 위주고 정확한 평가는 알기 힘들다. 그 시절 정부에 대해 잘 알면 모를까 난 거의 아는게 없어서 그냥 그렇구나 싶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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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세계는 수위만 따져본다면 전쟁 문학 중 낮은 편이다. 어떤 끔찍한 생체 실험들이나 대학살의 비중은 그닥 높지 않다. 오히려 상류층에 속하는 여러 장군들과 정치인들, 혹은 피폐해진 시민들의 단조로운 삶들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룬다. 작가는 전쟁의 긴박감이나 긴장감 없이, 우리가 주목하지 않을 사소한 사건들에 집중한다.

각 장의 제목이 되는 동물들은 전쟁 속 삶의 한 부분들을 은유한다. 그리고 이 은유는 기존의 문명을 지탱하던 정신들의 붕괴를 폭로한다. 그저 사람을 많이 죽였기에 삶이 피폐해 진 것이 아니다. 학살은 인류의 역사에서 수없이 많이 일어났다. 그러나 누군가를 규정하고 지탱하던 뿌리 자체가 뽑혀 방황하는 역사는 이때가 처음이리라.

과거의 전쟁은 삶의 한 부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영웅이 될 기회였고, 누군가에게는 부를 쌓을 사업 아이템이며, 누군가에게는 탈출을 할 절호의 찬스였다. 이 전쟁은 그렇지 않다. 누구도 영웅이 되지 못하고 누구도 탈출하지 못한다. 전쟁의 역사가 삶을 압도하고 인물들을 이리저리 비틀어 버린다.


전쟁 문학하면 떠오르는 고정 관념이 있다. 참호에서의 끔찍한 생활, 광기 넘치는 전쟁광 장교, 희망를 잃고 삭은 얼굴의 사병들, 현장 모르고 편안하게 명령만 내리는 장군들, 사라진 인류의 존엄성 등등

과연 저것이 전쟁의 전부라 생각한다면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전쟁은 인간성 훼손으로 환원시킬 단순한 사건이 아니요, 그것이 끔찍한 이유도 그저 누군가 많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다.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달콤한 근대의 희망이 뿌리 뽑혀 사라졌기에, 찬란하던 문명의 계보가 향수만을 남기며 소멸했기에, 그리고 그 사이를 한 시대의 종언이 낭랑하게 울려퍼졌기에 이 전쟁은 다른 무엇보다 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