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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동아리에 올린 서평입니다. 무관심 속에 묻혔길래 관심 받고 싶어서 여기에도 올립니다.

내겐 유명한걸로 유명한 책 데미안. 무엇이 그것을 명작의 반열로 올려놨을까 궁금해 읽기 시작했다.번역의 문제인지 문장이 길고 어수선해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다. 헤세의 문체는 시적이라고 평가받지만 내가 읽기 위해선 문자도 어순도 달라져 공감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건 메세지인데, 여러 서평을 참고하며 장고한 끝에 나는 이 책을 종교적 경전에 빗대고자 한다. 불경과 논어가 성인의 사상을 당시 사회 속 일화로 담은 것처럼, 데미안은 제 1차 세계대전기에 자신이 지키고 싶던 니체의 사상을 소설의 형태로 담아낸 것이다. 작가도 이를 숨기지 않고 넌지시 니체를 책 곳곳에서 언급한다.(125페이지 마지막 문장)

아래 문단은 데미안의 간략한 내용이다.(내용을 알고 있으면 건너뛰어도 좋다.)
책의 등장인물은 간단하다. 주인공 싱클레어, 크로머, 데미안, 피스토리우스, 크나우어, 에바부인 총 6명. 공간도 고향, 김나지움이 있는 성 oo시, H대학이 있는 도시, 군병원 4곳이 전부다.

어린시절 고향동네 불량배 크로머의 협박으로 인해 평화롭던 일상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 싱클레어, 새로 전학 온 데미안은 독심술적이고 이성적인 말과 행동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거리에서 싱클레어를 만났을 때 고민을 털어놓도록 이끌었고 크로머를 쫒아내야 된다고 용기를 줄 뿐더러 자신의 선에서 크로머를 떼 냈다. 그 역시 자신의 세상을 위협하는 또다른 크로머일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갖지만, 데미안의 초인적인 존재감과 자주적 사상에 이끌려 싱클레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 눈을 뜬다.
이 후 싱클레어는 김나지움에 진학하기 위해 성 oo시로 떠난다. 새로운 환경에서 소외감과 고독에 절여진, 군중에 섞여 방탕하게 살아가는 싱클레어의 앞에 다시 한번 데미안이 등장한다. 자신의 처지에 열등감을 느낀 싱클레어는 그와의 만남을 헛소리와 냉소로 채웠지만 데미안은 나무라지 않고 방탕한 삶도 거쳐야 한다며 마음 속 초인을 찾을 것을 당부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던 어느 날, 싱클레어는 불현듯 격한 사랑에 빠진다. 그 사랑은 그의 방탕한 삶을 청산하고 그녀에 걸맞는 품위를 갖도록 이끌었으며, 싱클레어는 기억 속 그녀를 그리기까지 한다. 그녀를 그리는데서 시작한 그림은 공을 들일수록 그녀 베아트리체가 아닌 데미안으로 완성되었다. 데미안을 생각하다 잠들었던 싱클레어는 꿈에 나온 쐐기돌 속 새를 그려서 무작정 데미안이 과거에 살았던 주소로 부쳤고 얼마 후 데미안에게서 답장이 왔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싱클레어는 아브락사스의 정체를 알기 위해 배회하다 교회 오르간 연주자인 피스토리우스를 만나게 된다. 피스토리우스는 데미안이 그랬듯 싱클레어의 이해자로서 자아형성을 돕고 개인의 자주성을 지켜야 된다고 강조한다. 피스토리우스와 만남을 갖기 시작한 싱클레어에게 특별한 존재감을 느꼈다며 동급생 크나우어가 따라다니기 시작했고, 크나우어의 자살기도 때 싱클레어가 불현듯 나타나 구해준 이후 싱클레어가 특별한 능력이 있다며 더욱 추종한다. 이는 싱클레어가 어린시절 데미안의 존재감(그가 정의하길 카인의 표적)을 습득했음을 암시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의 말이 인간의 본질에서 벗어나 종교 쪽으로 향하는걸 느꼈고, 충동적으로 이를 지적하게 되면서 둘의 영적 교감도 끝을 맺게 된다.
H대학으로 진학해 새로운 도시에 살게 된 싱클레어는 또다시 데미안을 마주친다. 데미안은 그를 반갑게 맞이하고 언제든 자신의 집으로 놀러오라고 환영한다. 데미안의 집에서 데미안과 같은 존재감을 갖는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을 보고 싱클레어는 사랑에 빠진다. 이후 데미안의 집을 매일같이 찾아와서 에바부인과는 꿈과 소원에 대한 얘기를, 데미안과는 운명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이런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는데, 독일과 러시아의 전쟁이 발발해 데미안이 입대를 했고 머지않아 싱클레어도 징집됐다. 싱클레어가 전쟁 중 부상을 입고 병상에 누워있을때 데미안의 환상을 보게된다. 자신은 언제나 너의 가슴 속에 있다는 말을 남긴 데미안은 이제 싱클레어의 자아 속에 완전히 융화된 것이다.
성oo시에 머물때부터 꿈에서 나타난 자애로우면서 차갑고, 늙으면서도 젊고, 남성이면서 여성인 인물은 어머니도 데미안도 아닌, 자신의 운명이었고 자아였던 것이다.

  데미안은 단편적으로는 부모의 품 속에서 자라던 아이가 크면서 바깥 세상에서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떻게 인격체로서의 성장하는지에 대한 서사시다. 하지만 헤세가 말하고 싶던 것은 아이를 감싸고 도는 부모의 영향력처럼, 사회는 개인에게 정해진 도덕규율과 사상을 정의내린다는 점이다. 개인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알 속이 세상의 전부인 채로 생을 마감하는 절반의 생명일 뿐인 것이다.
이 소설이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쓰여져 출판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참전국들은 경쟁적으로 자국의 청년과 청소년에게 애국심을 빌미로 사지에 목숨을 던지게 했고, 이를 거부하면 흑백의 주홍글씨를 뒤집어 씌웠다. 개인을 몰아세우는 사회에 비판적인 지식인마저 그 화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때문에 헤세는 인간의 주체성과 도덕성을 회복해야된다고 데미안을 통해 우회적으로 호소했다. 사회 고발적 의도가 있음에도 내용적으로 사회적 갈등이나 외적 갈등 대신, 대화와 사색을 통해 니체의 정신을 담은 점은 직설적면서 우회적이다. 상황적 낭비가 없이 절제적이고 대화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메세지의 종점에 도착할 수 있는 매력이 있음에 동시에 사건의 진행이 정적이고 부드럽지 못해 현학적이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호불호와는 별개로 데미안이 니체에 대한 최초의 경전이란 점에서 그 가치는 결코 폄하될 수 없다. 예를 들면, 이후에 명작영화 매트릭스가, 사회적•외적 갈등을 극대화한 조지 오웰의 1984와 동물농장이 데미안과 같은 결의 메세지를 가지며 세계관을 공유한다 할 수 있다. 데미안은 맛의 종갓집, 수학의 유클리드 원론처럼 세계관의 기준과 중심을 잡아주는 등대 역할을 해준다. 이 작품은 헤세의 작은 한 걸음으로 시작했지만 문학계의 위대한 도약이 된 것이다.

데미안 출간 이후 우리는 헤세가 지키고 싶은 세상을 만났나 생각해본다. 출간 20년 뒤 독일은 전체주의 속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10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중동, 북한, 심지어 국내에서도 이해관계가 만든 광신과 흑백논리는 우리의 주체성과 자유를 위협하고 있으며, 이런 광경은 먼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본문에서 적혀있듯이 우리 스스로가 운명에 준비돼있는 것. 초인, 곧 자아는 운명이란 풍랑에서도 인사이트를 지닌 존재이다. 세상의 혼란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의 탈무드를 지킨다면 헤세는 그걸로 만족하지 않을까.

  아, 혹시 누군가 데미안을 읽겠다면 동서문화사 송영택 역 데미안이 좋다고 하니 더 스토리 출판본으로 고생하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