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일차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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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준철, 가난의 문법, 푸른숲, 2020.


누구든 리어카에 골판지 상자를 가득 싣고 힘겹게 길을 건너는 작은 몸짓의 여성노인을 마주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매일 마주치는 그들의 삶에 대해 가끔씩 호기심이 들 때도 있지만 그것은 금새 휘발되기 십상이었다. 다행히 이 책 가난의 문법을 통해 그들의 삶을 수박 겉핥기로나마 알아갈 수 있었다.


책의 저자는 도시사회학 연구자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재활용품 수집 노인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이 책의 내용을 채웠다. 책의 구성은 1945년생 윤영자라는 인물의 24시간을 통해 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생활과 그를 둘러싼 사회문제들을 전반적으로 이야기한다. 윤영자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저자가 연구하면서 인터뷰한 여러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의 생애와 경험을 취합해 구성함으로써 그들이 겪는 현실의 다양한 질곡을 낱낱이 파헤친다. 이러한 구성은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이 그러했듯 비록 허구이지만 한국 사회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해도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을 인물로 독자들에게 와닿는다.


책은 방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의 일과나 그들이 일을 하면서의 고충, 왜 그들은 멀쩡한 공중화장실을 냅두고 굳이 자택까지 무거운 짐을 이끌고 가서 볼일을 보는지 등 비교적 지엽적이고 세세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 가난이라는 문법이 씨실과 날실처럼 얽히고설키는 과정, 재활용품 산업에서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이 어떠한 위치에 서있는지, 왜 우리는 65세가 되면 은퇴를 강요하면서 동시에 노인 일자리를 내놓는 모순을 되풀이하는가 등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물음들 역시 놓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있게 읽었던 부분은 재활용품 산업에 관련한 것이었다. 올해 들어 한국일보에서 포커스 취재로 연재하는 제로웨이스트기사들을 유심히 읽어오고 있는 바로써 결국 소비자들 개인의 노력과 인식의 전환을 바탕으로 기업과 국가가 재활용품 산업을 비롯한 쓰레기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러한 방향전환과 더불어 이 빌어먹을 성장주의, 소비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아무리 체제가 잘 정비되어 있어도 너무 많이 소비한다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원은 무한정하지 않고 환경에도 한계가 있다. 뭐든 덜 써야 한다. 그것이 식품이든 공산품이든 의복이든 간에.


또한 가장 마지막 파트에 있는 윤영자의 하루 일과에서 나타나는 교회의 역할에 주목이 갔다. 코로나 19 이후 이단으로 불리는 신천지뿐만 아니라 수많은 비이단 교회들에서도 대규모 전염사태가 지속돼 왔다. 많은 이들이 그들을 향해 비판을 가하고 그러한 비판에 정당성이 없지 않다. 교회는 그러한 비판을 귀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생각해봐야 할 지점은 한국 사회에서 이토록 교회가 뭇사람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까닭이다.


교회야말로 공권력이 못해주고 있는 것-끼니를 해결해주고 식품을 나눠주고 미용을 봉사하며 묫자리를 알아봐주고 다른 이들과 함께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을 여태 대신 해줘왔던 것이 아닌가(그것이 성경적 의미에 따른 것이든 자본적 의미에 따른 것이든은 둘째치더라도). 그런 현실에서 제아무리 사회가 방역을 이야기해도 우리 교회 목사님보다 얼마나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교회를 두둔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기층에 있는 이들에게 과연 사회와 공권력이 교회보다 얼마나 더 나은 대우를 해주었나에 대해 자문해봐야 할 필요성에 대한 얘기다.


사회학 책이니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복잡한 이야기들도 저자가 최대한 잘 풀어 설명하는 노력이 돋보였고 매번 기사나 연구논문들의 사례들이나 본인이 직접 연구한 경험들도 수록하여 더더욱 생생함을 만끽할 수 있다. 판본도 작고 페이지도 채 3백 쪽이 안 되고 글자도 빽빽하지 않아 아마 이런 현실르포형 책에 거부감이 있거나 어색하신 분들도 나름 술술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