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젊은 미국 현역 작가의 단편집을 읽고 있음
어중간하게 알려진 사람임. 무려 '작가들의 작가'이며 불행하게도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고 함
첫 장을 펴 봄.
일단 문체는 간결하고 건조함. 배경은 현대. 등장인물은 어떤 젊은 남녀.
끝까지 읽음. 별 감흥 없음.
다음 것도 읽음. 별 감흥 없음.
슬슬 열이 뻗치기 시작함. 바로 인터넷에서 '작가의 최고작'을 검색함.
페이지를 휘리릭 넘겨 최고작을 읽기 시작함. 나름 최고작이랍시고 분량은 거의 중편 소설에 가까움.
1시간 정도 걸려서 다 읽음. 아, 내가 뭘 읽은 거지. 감흥이 없어도 너무 없는데
슬슬 나 자신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함. 평론가들과 작가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는데 왜 나에게는 아무 감흥이 없을까?
살짝 우울한 상태로 서재로 가서 나보코프의 단편집을 뽑아 옴. 의자에 앉아 읽기 시작함.
이름을 들어 본 적도 없는 단편이 나옴. 제목은 'Details of a Sunset'
초반을 읽음. '오...' 기깔나는 묘사에 일단 탄성부터 지르고 시작함
중반을 읽고 있음. '와, 왜 이런 거 놔두고 아까 그런 거 읽고 있었지?' 행복한 의문이 들기 시작함
후반을 읽고 나니 온몸에 전율이 다 일 정도임. 책을 가까운 협탁에 던지고 혼자 기쁨에 잠겨 생각함
'아, ㄹㅇ 이게 문학이다!'
'아, 이게 나보코프다!'
난 현대 문학을 자주 읽는 편인데, 사실 마음 한 켠에는 혹시 좋은 작가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열망이 숨어 있음
근데 요즘은 모르겠음. 과연 그런 '현대의 숨겨진 보석'이라는 게 정말 존재할까?
독갤이 고전, 근대 문학 쪽을 많이 논하는 것 같긴 한데
님들은 현대 문학 자주 읽는 편임? 아니면 그냥 확실히 역사의 검증을 받은 작가들 위주로 독서함?
애초에 미국문학에 나보코프를 이길 수 있는 작가는 별로 없잖아..
대중 픽 평론가 픽 작가 픽 다 이유가 있다 생각하므로 참고는 하는 편인데, 그래도 기본은 남 의식보다는 내 취향 위주로 읽는게 맞지 않나 싶음(전공이 아닌 취미라면). 독갤에서는 명작 고전 지분이 높지만 나도 개인적으로는 현대문학, 국내 문학을 많이 읽는다. 비문학은 해외로 다 몰려있는데 문학은 자국 작가 작품이 공감대 형성하기 좋더라.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고전이 된 작가들은.. 시간이라는 엄청난 필터를 뚫은건데. 그 필터에 걸려서 잊혀져간 글쟁이가 얼마나 많을까.. - dc App
고딩 때 갈매기랑 등불 읽고 너무 벅차서 이 사람을 나만의 히든 작가로 해야지! 결심했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 초인싸라 당황했던 경험이 ㅋㅋㅋ
나한테도 나보코프가 신의 영역인데 나보코프를 알게 된 뒤로 아직까지 나보코프"보다"는 커녕 나보코프"만큼" 재밌는 작가를 찾지 못하고 있고 찾을 수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함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