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도입부분에 중요한 부분이 담겨있지 않는 책들이 있죠. 소설. 그러니까 소설을 읽으면 안돼.
소설을 읽는 훈련이 돼있으면 사회과학도서를 읽기 어려워. 소설. 가령 최명희씨의 그 혼불. 혼불 앞에 50페이지를 읽는다고 혼불얘기 전체를 알 수 있지 않아.
다 못읽었어. 읽다 죽는줄 알았슴돠. 태백산맥도 끝까지 좀 읽어보려고 했는데 못읽었고, 아리랑은 물론이거니와, 장편대하소설 끝까지 읽어본 게 없어요.
황석영의 장길산? 멋진 소설임에는 틀림없습니다만은, 읽기 어렵습니다.
왜. 이 논리적으로 만들어진 글을 읽는 훈련이 돼있는 사람들은 장편소설 읽기가 힘들어요.
앞에 목차를 보면 아 대강 이게 무슨 내용이구나 머릿속에 짐작이 돼야하는데. 소설은 목차를 봐도 짐작이 안돼.
이 논리적으로 만들어진 글을 읽는 훈련이 돼있는 사람들은 장편소설 읽기가 힘들어요 -> 이건 개인적 경험을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단정적으로 표현한 문장이죠. 논리적 글읽기 훈련이 되어 있어도, 별도로 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글읽기 훈련을 하면 충분히 잘 읽을 수 있는 듯하니까요. 사람의 글읽기 능력이, 총량을 키울 수 없어, 한쪽이 늘면 한쪽이 줄어드는 제로섬 게임 같은 것이라면 이 말이 맞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므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지점은, 밖에서 볼 때 누군가 글을 읽는다는 행위는, 겉보기와는 달리, 글읽기 분야에 따라 서로 매우 다른 이질적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저 역시 이 글의 주장처럼, 논리적 글읽기와 소설적 글읽기는 서로 같은 내적 행위가 아니라고 봅니다. 스마트폰을 보는 행위가, 밖에서 보기에는 동일한 행위이지만, 게임을 하느냐 누구와 대화를 하느냐 아니면 무엇을 검색하며 정보를 수집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내적 행위인 것처럼 말이죠.
이런 사정 때문에, 책읽기 게시판에 일정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읽기라는 이름은 우리의 기대보다 더욱 더, 인간의 각종 관심사들을 하나의 대화 마당에 모을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책읽기라는 행위를 할 때 그 대상을 넓히면,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한 내적 과정을 경험할 수 있기도 하고요.
끄덕끄덕
소설은 취미죠
소설도 글줄로 쓰이는 이상 인출단서의 배치를 얼마나 신경쓰는데 이건 무슨...
근데 진짜 이 사람 뭐하는 사람이냐? ㅋㅋㅋㅋㅋ 굉장히 한정적인 지식으로 오만 곳에 삽질하는 타입인듯 ㅋㅋㅋ
미셸 투르니예, 올라프 스태플던, 카렐 차페크 - 철학 박사 출신의 소설가 // 루이스 캐럴, 루디 러커, 찰스 스트로스 - 수학자 출신의 소설가 //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까뮈 - 소설 문학과 철학을 겸하여, 양쪽에 모두 업적을 남김... 논리 그 자체로 무장한 사람들이 재미 있는 소설도 잘 쓰고, 잘 읽고... 사례 많아요
카뮈 인정 한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