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코프 절망 읽는데 그이 소설로는 롤리타 다음으로 두 번째로 읽는 거다
간만에 나보코프를 읽는 셈인데 예전에 로리 읽을 때 느꼈던 특유의 쌔한 느낌 올라오네
이 인간은 글쓸 때만 그런건지는 몰라도
글에서 느껴지는 지배적인 정서가 오만과 빈정거리는 정서라는 거...
지 잘난 맛이라는 게 이렇게 숨길수가 없이 뿜어져 나오는 물건은 오랜만인 거 같다.
중간에 도끼 패러디도 보이지만 그런 것만 있는게 아니고 탐정 느와르물 패러디도 보이고
소설을 쓰고 있다는 자의식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난 물건을
1930년대 중반에 썼다는 거 고려하면 전위인 건 분명하고
그때 동아시아에서는 다자이가 이제 막 데뷔할 때고
루쉰이 아직 살아있을 때고 샤오홍이나 이상이 죽어가면서 쓰고 있었고
염상섭이 삼대를 쓰고 얼마 안되었을 때니까
유아적인 응석이나 의지박약으로 딴 소리하기,
플롯이나 스토리텔링으로 통합되지 않는 것,
우연히 목격한 것,
한눈팔기로 맥락없이 프레임 하나에 들어온 것들이
마구 삽입이 되는데 오늘날에 시도한다 쳐도 책 안팔아먹겠다는 궁리 밖에는 안될 거 같고
분명히 이 작가에게는 시인다운 낭만적 투사project의 감성이 있는데
동시에 그런 걸 자연화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는 자각을 할 만큼 지성적이라서
꽃 피우는 동시에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듯
끊임없이 말장난 하는 거는 소싯적부터 유래했을 법한 취향인 거 같고
메타성이라느니 그런 거창한 취지에 부합해서 내놓는 강박은 아닌 거 같고
도끼와는 정반대편에 서서 영혼의 심연, 진심의 토로라는 걸 믿지 않는건 분명하고
'자기'를 믿지 않는다 '문장'을 믿을 뿐
그래서 양파껍질처럼 슬라이스되지만 그 끝은 공허한,
비어있는 발화의 사건들이 이어질 뿐이다
읽어면서 읽는 나 자신이 종교인의 심성에 가깝다는 걸 느끼게 된다는 점도 확인한다
결국 나보코프는 절망을 통해 보편적인 예술가의 실패(자기는 안보이고, 타인한테는 극명히 보이는 예술적 실패)의 절망을 비웃으면서 동시에 나보코프 자신의 예술의식에 대한 한계와 단점을 동시에 드러내는 책이기에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버겁고 안 읽을 수밖에... 더욱이 그런 주제는 공허하고 남는게 많이 없지 작가로 종사하지 않는한...
읽기 버겁다는 말은 안했는데..' 나보코프가 자신의 예술의식의 한계와 단점을 동시에 드러낸다'고 했는데 빈정대는 게 아니고 진짜 뭔 말인지 모르겠음.. 알레고리로 읽히지는 않아서
일반 독자라 함은 님을 지칭한 게 아니고 말 그대로 나보코프를 들어본 적도 없는 독자들을 겨냥한 글임. 나보코프 자신의 한계란 밑도끝도 없는 패러디임. 쉴새없이 패러디하는 나보코프의 모습에서는 자신의 예술보다는 나, 이만큼 알고있지롱 하는모습을 자기 자신도 깨달은듯한 문장과 단락이 보임. 게르만이 푸시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부분, 도스토옙스키를 조롱하지만
정작 도스토옙스키에게 열등감을 가지면서 깎아내리는 부분은 나보코프의 사상과 닮아있음. 게르만과 나보코프는 서로 떨어져 보는 것이 맞지만 나보코프가 밝힌 자신의 특징을 게르만과 같이 비추어보면 패러디가 서로 겹치는데 절망은 그 부분을 집요하게 비추고 있어서 게르만의 비틀린 생각뿐 아니라 나보코프의 패러디관(?)도 자연스레 묻어나오는 것같아 언급한거임.
아 위에 나임 (1.244) 닉 헷갈리겠네
ㅇㅇ 그니까 패러디가 앞서다 보니 다른 예술작품 내지는 예술가와의 관계성 속에서만 사고하는 게 한계가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나...나보코프가 문학이나 예술 일반을 풀세트로 물신화할 만큼 멍청한 거 같지는 않지만 본인의 밑도 끝도 없는 애완 행위를 스스로 역겨워할만큼 희극적으로 전시하진않는 것처럼보여.. 그래서 그런 작업을 계속할 수도 있는 거겠지 읽어본 게 이제 고작 두 권이지만 말야.. 좀 다른 얘기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문학의 무용성을 뻔뻔 스럽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문학을 신화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문학은 제한적이지만 충분히 쓸모가 있거든. 바꿔말하면 쓸모가 있으나 자신의 제한적인 위치를 자각한다면 소위 모더니즘이나 포모작가들은 텍스트의 그물 속이 마치 우주의 전체인 듯 헤매지 않을 텐데.
이를테면 문학은 야동처럼 쓸모가 있다고 생각해 요즘 나는 야동을 거의 안보지만 말야... 겸손한 쓸모를 자각한다면 그런 인용 행위와 상호텍스트성에 심취할 수 있을까.
그렇지 나보코프 자신도 분명 패러디와 인용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 많은 생각을 했으니 절망을 느끼면서도 지속해서 글을 썼던 거겠지? 나는 개인적으로 나보코프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사실 그의 패러디임. 그는 패러디조차 나보코프화 시켜서 자신의 문학관을 설명하는데, 그게 나한텐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어.
맞아 문학의 제한성과 무한성에대한 님의 의견은 중요하다고 생각함. 내가 작가가 아니어서 잘 모르지만ㅋㅋ
와 너무 잘 이야기했다. 덕분에 나보코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음 항상 대단하다고만 했지만 곱씹어보니 또 다른 존경심이 생기네.. 즐거웠음 글 잘 읽었어.
응 나도 덕분에.. 말할 상대에 따라서 자기 생각의 다른 면모가 드러나기도 하니까 그런건 운이 따라야 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