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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자 독후감.
계속해서 너무 밀리는데 이번 주내로 밀린 거 싹다 쓰겠음..
인간실격, 트랜스젠더 저자의 만화 두 권, 김사과 한 권, 라틴아메리카의 흑인성에 대한 책 하나, 마지막으로 식민지기 대중문학 이렇게 읽어놓긴 했는데 귀차니즘+연휴 현생살기로 짬이 너무 안 났다... ㅠㅠㅠ




손성욱, 《사신을 따라 청나라에 가다》, 푸른역사, 2020.

일단 푸념부터 늘어놓자. 도서관 홈페이지에 이 책이 신간으로 와있길래 좋다구나하고 찾아보니 홈페이지의 내용과 달리 책이 없어서 직원에게 문의를 넣으니 그쪽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 분명 들어는 왔다는데 어디 있는지를 모르겠으니 찾으면 연락주겠다길래 번호를 남기고 왔다. 그게 벌써 한 달전인데 어제 도서관에 들리니 책장에 꽂혀있더라. 아니 찾으면 연락준다매... 왜 돈받고 일을 안 해...

뭐 어찌됐든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읽은 보람이 있는 책이었다. 흥미롭고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다 쓰자면 너무 길어지니 개인적인 흥미에 따라 몇 가지만 간추리자.

① 명과 청의 황제는 코끼리에게 절을 받았다.

명의 건국자인 홍무제는 코끼리를 정례적인 의례 행사에 이용했다. 거대한 코끼리가 황제에게 절을 하면 얼마나 위엄있어 보이겠는가. 명은 청나라 군대가 북경을 점령하기 불과 8년 전인 1636년까지도 코끼리 6마리를 조회에 참여시켰다. 청은 명의 전례를 충실히 따랐다. 건륭 말기인 1793년에는 북경에 있는 코끼리의 수가 자그마치 39마리에 달했다. 조선이 태종대에 일본에서 보낸 코끼리 한 마리를 감당하기 어려워 지방을 떠돌게 한 것과 생각하면 확실히 제국 수도로서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이후 청 역시 망국의 길에 접어들면서 1875년 미얀마로부터의 조공을 마지막으로 코끼리는 중국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청나라 문인 진균에 따르면 1884년 코끼리 한 마리가 사람을 해치고 궁벽을 부순 뒤로는 코끼리가 의례 행사에 쓰이지 않았고 이후 관리를 받지 못하고 한 마리씩 죽어나갔다고 한다.

② 낙서는 우리네의 유구한 전통?

벽이나 문화재 등에 낙서를 하는 몇몇 한국인들 때문에 국제망신이라는 얘기는 잊혀질 만하면 들리는 소식인 것 같다. 그런데 왕명을 받고 상국인 청으로 떠난 사신들마저도 유물에 낙서를 했다. 금나라 때 창건된 법장사는 7층짜리 백탑이 있어 그곳에 오르면 북경 전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조선 사신들 역시 그 장관을 빼먹지 않고 관람했다. 그렇게 관람온 사신들 중 1713년 법장사를 방문한 김창업을 시작으로 백탑 벽면에 제명을 쓰는 이들이 생겨났다. 1833년 백탑에 오른 김경선은 “좌우편 벽의 제명은 다 우리나라 사람의 것이었는데, 친구 중에 연경에 사신 온 자의 것이 많았다. 그리고 심지어는 옛것을 지우고 새로 써서 붓을 댈 만한 곳이 없었다”라고 그 낙서(?)들을 묘사했다. 다행히도(?) 1965년 법장사 백탑은 주변 철로의 안전 문제로 철거되었다고 한다. 요즘은 SNS가 있어 실시간으로 데이터 낙서를 할 수 있으니 이제는 낙서하는 사람이 좀 줄지 않았을까 싶다.

③ 러시아에게 밀린 조선 사신들.

청은 조선 사신에게 숙소와 음식, 땔감 등을 지원해 줬다. 숙소의 이름은 회동관으로 명나라 제도를 이어받는 것이다. 그런데 1686년 전쟁의 화친을 위해 러시아 사절들이 북경에 도착하자 청은 그들을 회동관에 머물도록 했다. 회동관에 이미 묵고 있었던 조선 사신단은 일반 가옥으로 옮겨야만 했다. 러시아는 조선과 같은 조공국도 아니고 전쟁 중인 적국의 사절이었음에도 그들을 위해 조공국인 조선의 사신들이 숙소를 옮겨야 했던 것이다. 이후 1689년 청과 러시아가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하고 정식으로 러시아의 사절단과 상단이 북경으로 파견되었다. 청은 그때마다 회동관을 러시아 사절단에게 머물도록 하였고 그럴 경우 조선 사신들은 회동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옛 사찰을 숙소로 삼아야 했다. 억불숭유의 조선 선비들에게 사찰에 머물게 했으니 사신들 입장에서는 청의 멸시가 한스럽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조선은 조공국 중 나은 대접을 받는 편이었다. 조공국 사신 중에서는 때에 따라 내성 밖의 공간에서 묵은 적도 꽤 있었지만 적어도 조선 사신은 언제나 내성 내에 머무르는 ‘특권’을 누렸다. 1717년에는 유구(류큐) 사신이 조선 사신이 도착하자 회동관에서 비능암으로 숙소를 옮기는 일도 있었다. 마치 조선 사신이 러시아 사절 때문에 숙소를 옮겼던 것처럼 말이다. 어찌됐든 이후 회동관은 러시아 사절을 위한 아라사관으로 바뀌게 되고 청은 조선 사신을 위해 옥하교관방이라는 전용 숙소를 제공하게 된다. 비록 러시아에 밀리긴 했지만 조선은 청에게 특별한 조공국이었다.

이외에도 더 많은 흥미로운 얘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조선 사신들의 목욕탕과 사진술 후기나 19세기 초반부터 차르의 명에 따라 체계적으로 이뤄진 러시아의 중국학 얘기, 사신과 역관들을 통해 중국에 넘어간 우황청심환과 인삼, 조선의 금석문을 탐내는 청의 금석문학자들 등등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화들을 다룬 1, 2장 유람하다와 교유하다를 지나 3장 교섭하다에 이르면 정말로 구구절절한 내용이 줄을 잇는다. 조공국인 조선이 상국인 청의 황제로부터 책봉을 받기 위해 뇌물을 쏟아붓고 오랑캐라 멸시하는 만주족들 앞에서 돗자리를 깔고 곡을 해 처지를 알리는 모습은 처량하다. 일국의 왕조차 정통성을 타국의 황제를 통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는 조공국의 현실을 저자는 가감없이 파헤친다. 왜 일본이 청과의 시모노세키조약에서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첫 번째로 명시했는지가 더 확실히 다가왔다.

아 마지막으로 한 마디. 청의 책봉을 받기 위해 사대부의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린 채 곡을 한 조선 사신은 최석정으로 최명길의 손자다. 이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최명길과 최석정같은 사람들이 나랏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