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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208161









이광수는 문학가로서 자신의 역할이 매우 보잘 것 없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글 (가)에서는 ‘그 무지하고 천박한 문이 사랑하는 청년 형제자매에게 해독을 끼쳤으리라 생각하면 이 붓대를 잡은 손을 끊어버리고 싶도록 죄송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한다. 글 (나)에서는 자신이 ‘문사로 자처하기를 즐겨한 일이 없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이 글은 서두에서 ‘나는 내 일생 생활 중에서 문예작가(文藝作家)의 생활이라는 것을 심히 경시(輕視)한다’고도 서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장들을 통해 이광수가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것은 참회나 후회는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글 (가)에서는 여러가지로 부족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창작 활동이 ‘우리나라에 신문체(新文體)를 보급시키는 데에 일조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글 (나)에서는 ‘독자들에게 건전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조선어문(朝鮮語文)의 발달에 일자격(一刺激)을 주었다’는 점을 성과로 내세운다. 이광수가 실제로 전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이 ‘신문체의 보급에 기여하고 조선어문의 발달에 자극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이광수 스스로는 자기의 강점은 문체이지 문예가 아니라 생각한듯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