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적 관점에서 적나라하게 보면


인생의 본질은 벌거벗은 채로 치욕을 당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힘센 자나 좆밥이나 여자나 남자나 흰둥이나 검둥이나 황둥이나


이건희나 조두순이나 피할 수 없다


우리는 몸을 가지고 태어났고 생체공학의 현 발달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는 (아직까지는)


한 벌밖에 안되는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단벌신사이고


이걸 냅다 버릴 수 없으니 끊임없이 궁시렁대며 쭈그러지고 추해진 옷귀퉁이를 감수하며 계속 쓰는 거다


아무리 거창한 사상 예술 자유 문명 해봤자 결국은


뒷방에 앉아 엉터리 바느질 꾼인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


양말이나 터진 팔꿈치 소매를 꿰매는 게 삶의 본질이라는 게 불교적 통찰이라고 본다


그런 지금 여기의 자신을 받아들이라는 것이 첫번째다 자기를 속이지 마라


태어나고 오래 늙고 오래 병들고 뒈지고 이 과정 자체가 4대 필수과목의 치욕이고


이 4대문을 경유하면서 겪는 수난의 연속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에 덧붙여 그립고 친애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


온깆 개새끼들의 들볶임을 당하면서도 헤어질 수 없어 콧김을 서로 주고 받을 만큼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는 게



인생 게임의 핵심이다.





그리고 살만해지면 인간 회로는 고난의 진동을 발생시켜야 하기에


욕심을 부리고 헛된 희망을 품으며 파편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는 인간 프레임에 갖혀


따라쟁이 거울신경 세포를 경유해서


시기 선망하는 타인의 욕망을 그대로 카피하는 욕망하는 논리에 따라


세속의 소꿉놀이 속에서


다른 바보 중생 속물 개'돼지들의 시선들에 의해 하이랭크되는 무엇인가를 성취하려고 하고



성에 안차니 물질적 증거인 훈장도 달고 싶어하고 상장도 트로피도 받으려고 하고 트로피 미녀도 가지려고 하고


그러는 과정 중에 겪게 되는 겪을 수 밖에 없는


한두 단계 내지 몇 단계나 높은 하이퍼한 수모들까지 긍정을 하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끌어안은 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을 인간다움의 가치 일부로 수용하려고 한다



이러한 관점의 연속선 상에서 인간 문명 내지 리버럴 아츠는


휘빠람 불고 딴곳보면서 수치스러운 곳의 욱신대는 현재적 통증을 잊어보려는 수작에 불과하다


...


한마디로 인생을 받음 자체가 TOTALLY FUCKED UP인데


다만 인간은 이성이 있고 자각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탈옥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무엇으로부터의 탈옥이냐?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부터의 탈옥이다


왜냐하면 육도윤회하기 때문이다


계속 태어나서 우주의 광기에 동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혼이라는 것은 우주가 자신을 작동하기 위해 brainwashing( 뇌세척)해서 다시 쓰는


재활용 밧데리 건전지 같은 것이고


지구는 우주가 고깃감을 얻어다 쓰기 위해 방치한 척 관리하는 방목장 겸 도살장의 일부이며


인간의 몸은 없어져도 영혼백의 티끌만큼이라도 남으면 재생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억을 잃지만


아무리 깨끗이 지워봤자 그 흔적이 남는 영혼의 시트지 위에 눌러쓴 연필 자국을 따라


전에 다하지 못했던 원망을 실현하려고 스스로 돌아오게 만든다


(귀신은 그럴 여유조차 없어서 못 떠나는 거고)



다시말해 우리의 고통, 인간 그밖의 유정한 존재들의 병신짓에 수반되는


까르마의 진동은 육도 윤회의 우주를 갱신하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육도윤회를 통해 신진대사하는 우주=생명체의 입장에서 볼 때 cosmic drop out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종의 니르바나 내지 해탈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마야의 베일을 씌어 유혹해서 우리가 다시 돌아오게 만든다


탐욕 분노 멍청함이 감정의 아스트랄체에 깃들어 불붙게 해서 3D를 실체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미 지나가 흔적도 남지않는 과거에 붙들리게 하는 우리의 번뇌,


아직 오지도 않아 아무것도 없는데서 괴로워 하게 만드는 미래라는 망상이


시간의 연속선이라는 환상체 위에 깃들게 하고


탐진치는 감정의 빌미로서 우리 각자의 아스트랄체에 생채기를 내고


꿰서 걸려있는 일종의 낚시 고리 역할을 한다



'''''''''



인간 삶은 감옥이고 충분히 좆같은 모드이지만


그 아래의 짐승 모드는 더 좆 같고


또 그 아래의 지옥은 인간의 상상력으로 가닿을 수있는 더 최악으로 좆같은 바닥이기 때문에


인간모드가 그나마 웰빙 차원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낫다 하겠다



수라 세계는 신급 존재로서 인간보다 능력적으로 월등할지 몰라도 그들의 오만과 분노로써


끝없이 아수라장이 되는 세계로서 역시나 좆같다


더 본격적으로 불타면서 서로의 육체를 으깨는 응축된 투기장이다



천상 역시 신급 세계이지만 붓다의 관점에서 볼때는 눈속임이다


천상은 텔레토비 동산과 같은 다른 차원의 낙원이기 때문에

(해탈 학교인 아미타유스 붓다의 서방정토 극락과는 다르다)


엄청난 능력에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일지라도


발심해서 이 좆같은 윤회를 벗어나야겠다는 동기부여가 잘 안되고


아차하고 정신줄을 놓는 순간 수만년이 지나가서


까르마 코인이 떨어지면 다시 아래 플로어로 떨어져서


좆같은 재활용 밧데리 역할을 반복해야 한다


그걸 수행을 통해 벗어나자고 하는 게 불교의 팔정도 육바라밀 수행이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능력을 가진 슈퍼 히어로의 일종인 신들보다


곧 쓰러지기 직전의 병든 노구에 깃든 붓다 의식이 더 우월하다


통찰하는 자가, 아둔하지만 힘있는 자보다 상위 클라스라는 거다



이 수행은 한 번 생으로 끝나지 않는다


만약에 이번 생뿐이라고 믿고 있는데 웰빙 차원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불교를 찾는 거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



그럼 그 뼈가 깍이는 프로 수행러들의 수행 따위는 불필요한 것이고


한번 생의 고통을 쫓아보려고 더 큰 조직적인 고통을 끌어온다는 거 자체가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생이 한 번뿐이라면 더 이상 삶이 수지타산이 안맞고 늙고 병들고 궁지에 물려 더좋을 일도 없을 거 같고


못견디겠을 때 - 그런 경우는 굉장히 많다 - 자살하는 게 논리적 필연이다


삶이 한 번 뿐이라면 삶 밖에서 그를 규정할 어떠한 가치도 없다


따라서 불교에서 윤회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



뇌세척 된 채로 다시 태어나는 것의 장점은


고기 기운의 맹목적 드라이브로 출발하는 거긴 하지만


이번 생을 소중히 하고 필사적으로 살수 있다는 것이다


한번 뿐인 생이라는 생각은 광기와 집착의 집중된 소용돌이를 낳기도 하지만


발광해봤자 더 물러설 곳 없는 데서 나오는 수행력의 분발심에 힘을 보태기도 하기 때문이다


....



깨달음이 무르익은 샤카무니나 라마나 마하리쉬, 혜능 같은 예외적인 존재들 빼놓고


어짜피 토탈리 퍽 떱을 자각해야... 한마디로 리얼타임으로 좆되봐야 수행을 하게 된다


이유없이 병원에서 해명되지 않는 희귀한 병에 걸리거나 단기간에 가까운 가족 친구 친지들이 죽어 나가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통제할 수없는 대재난을 겪는 게 발심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이것을 서구의 신비주의에서는 성자통 saint pain 이라고 하고 니코스 카잔차키스 같은 이도 겪기도 했다


다차원의 실재가 허리를 찌르듯 비집고 출현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납작한 몸과 빈약한 감수성에 걸맞게..


감당할 수 없는 숭고와 죽음의 얼굴 따위를 하고




영생을 얻기 위해 기도하는 기독교와는 달리


불교는 이 삶에서, 삶의 윤회에 지쳐 영원히 죽기를 기도하는 정반대편의 종교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자살한다고 죽는 게 아니다 살아있을 때 죽어야 한다..)




영원한 죽음을 통해 다른 무엇인가를 얻는다고 하지만...


샤카무니의 말을 빌리면 체험으로 검증되지 않는 것은 믿을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