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5일자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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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 0 영 ZERO 零, 작가정신, 2019.
네 번째로 읽은 김사과의 작품이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너무 재밌다. 김사과는 정말이지 최고야. 건강하게 오랫동안 글을 써서 나를 기쁘게 해줘...
여태 내가 읽었던 김사과 소설들처럼 이 소설 역시 광기가 지배하지만 다른 작품들보다는 그 광기가 상당히 현실적이다. 특히 후반부에 나오는 주인공 ‘나’와 헤어진 전 연인 성연우의 대화는 매우 익숙했는데 다름 아닌 내 친모 친부가 그렇게 싸워서... ㅋㅋㅋㅋ 대강 얘기하자면 자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우연의 일치들이 모두 주인공에 의해 철저히 계획되었다는 성연우와 그런 성연우를 향해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고, 망상이 너무 심하다고 하면서 다투는 내용인데 정확히 똑같은 내용의 싸움을 대략 10년 간 들으며 자랐다. 진짜 읽으면서 엊그제도 들은 것처럼 소름끼쳤다.
암튼 주인공은 돈 자체가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 그 돈을 통해 누군가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라고 얘기하는 인물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마치 세상의 신이라도 되는 듯이 안하무인으로 행동한다. 동시에 주인공은 자신의 잘못없음을 마치 법원에서 항변하기라도 하듯 계속해 표출하는데 이 점이 이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는 파트이지 않을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약육강식적 세계관 인식을 지닌 주인공이 계속해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모습, 그리고 자신이 인생을 “잡아먹은” 제자 박세영을 환영으로 접하며 공포에 떠는 모습에서 이 잔인한 세계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작가 특유의 절망적 관점을 고스란히 만끽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세간의 소문과 달리 인생에 교훈 따위 없다는 것. 인생은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0. 제로. 없다. 아무것도 없다.”라고 소설의 맨 마지막 장에서 말하는 주인공처럼 이 세상에서 진리라 불리는 것들은 모두 허구고 우리 모두는 그저 서로를 잡아먹고 잡아먹히기 위해 살아가는 것뿐이라는 절망 혹은 달관.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오직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바로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뿐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경우 이번 생은 정말이지 글러먹은 것 같다. 술이나 마시고 책이나 읽다가 사라지면 그만이겠다. 나도 참 인생 편하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