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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다음으로 서머싯 몸의 소설을 2번째로 읽었다
역시 캐릭터의 외양적인 묘사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도 성향과 행동 이면의 생각 같은 복잡한 내면적인
묘사를 최대한 공정하고 편견 없는 작가의 시선으로
면밀하고 쉽게 이해가 되도록 깔끔하게
쓰였기 때문에 작품을 쓰는 작가가
정말 작가적 품위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유머 또한 최대한 캐릭터 묘사를
방해하지 않는 부분에서 적절하게
사용되었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계층 이동에 성공해
지위와 사교계에 집착하며 수많은 파티와
상류사회를 누렸던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속물적이면서 친절한 캐릭터 앨리엇이
죽기 직전에 얕은 사회적 관계와
가짜 초대장을 움켜쥔채
비참하게 죽는 장면에서
수많은 호사들이 마지막에 주는 것이
고작 호화스러운 관이라는게
정말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자연적 죽음 중에
가장 비참한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사회적 관계를 갈망하지 않고
혼자 쓸쓸하게 죽었더라면
그 정도로 비참하지 않았을텐데
그는 전 생애에 걸쳐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사회적 관계를 중요시 했기 때문에
그의 쓸쓸한 죽음이 더욱 비참해보였다.
평생 품위를 중요시했던 앨리엇이
품위 없는 유언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이
정말 희극적이면서 비극적이였다.
이사벨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정신적으로 평범한 여자였지만
외양은 시종일관 아름답게 묘사되었다.
그래서 이사벨이 나오는 부분은
서머싯 몸이 이사벨을 만나러갈 때
'바라만 봐도 즐겁다'는 말이 이해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매력은 외양만이 아니다.
결점을 스스럼없이 수용하는 태도
그걸 맞받아치는 용기,
자신의 욕망을 위해 거리낌없이 쟁취하고
버리는 행동들을 통해 더욱 매력적으로 그려졌다.
래리를 평생 사랑할테지만
그를 이해할 수 없어서
재력가에 시집가는 이사벨은
대공황도 버텨낼만큼
호사와 사치를 누리면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한다.
하지만 그녀의 행복은
반쪽짜리다.
그것은 오랜만에 만난 래리를
뒷좌석에서 바라 본 그녀의
욕정을 묘사한 부분을 통해 알 수 있다.
서머싯몸은
모든 캐릭터들이 각자의 바람대로
결말을 맞이한 성공담이라고 끝부분에
말했지만 그것은 그들을 일정부분 비꼬는 것이 틀림없다.
래리가 내면의 세계를 추구하게 된 것은
전쟁 트라우마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평범하게 자란듯 보이지만
쉽게 말해 혈육이 없다.
천애고아라는 점이 책에
강조되지는 않았지만
삶의 의미에 대한 집착에
많은 부분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궁극적으로 무엇인가와
연결되고 싶어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인간들이 '신'이라고 불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내면의 세계를 추구하는 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무엇이며
나같은 일개 독자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가 수행 끝에 방갈로 숲에서 느낀
황홀경에 대한 묘사는
절대자와 같은 무언가와의 일체감이었다.
아빠 친구 밑에서 자랐지만
그와도 깊은 유대적 관계가
드러나지는 않았다.
래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 외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사회적 활동들을
하찮게 여겼다.
그렇다고 그가 현학적이거나
선민의식을 가진
허세스럽게 재수없는 젊은이로
묘사되지 않은 것은 몸의 작가적 솜씨다.
아무 계산 적인 마음 없이 호의를 베풀고
맘대로 잠수 타지만
자유롭게 사교적 관계를 이어나가고
부드러운 미소와 계속 아무것도 알지 못해서
겸손한 마음으로 책과 경험에 파고드는 래리의
소년같은 캐릭터적 인상이 정말 멋졌다.
그는 비록 사회적 시선에 의해서는 실패자이거나
도태한 인간이었지만
서머싯 몸이 그와 나눈 대화를 통해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성취일지도
모르는 경험을 느끼게 해주었다.
물질적 세계관을 과감히 버리고
거지꼴로 내면의 성취와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려는 래리를 통해
물질적 세계관에 눈이 멀어버린
당시 고속 성장과 고속 하락을 맛본 미국에
신랄한 메세지를 전달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조종사를 퇴역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래리에게
다들 그래서 뭐할거냐고 묻지만
래리는 시종일관 아무것도 안할 거라고 하거나
빈둥거릴 거라고 말하면서 지인들을 열받게 한다.
하지만 그의 내면 탐구는 사실 엄청난 활동이다.
신체적으로는 가만히 있는 명상이
사실 엄청난 정신적 활동이라고
에리히 프롬이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의 집착과 열정과 활동은 돈에 환장한 사업가와 비슷하다
방향이 완전히 다를 뿐이다.
하지만 그가 빈둥거릴거라고 한 것은
물질적 세계관에서 그런 활동은
활동을 안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비꼬는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래리는
그들의 세계관에 맞춰서 얘기해준 것이다.
그가 사랑하는 연인까지 포기하며
수 많은 책과 경험과 수행을 통해
마침내 방갈로 숲에서 느낀 황홀경은
숭고하고 장엄해보이기까지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서머싯 몸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았더라면
그가 더 안정돼 보였을 거라는 지극히
인간 사회적 관점인 생각을 통해 공정하게
래리를 평가하면서 열기를 식히고
작가적으로 냉철하게 래리라는 캐릭터를
마무리 지었다는 점이 좋았다.
[그는 야망도 없고 명예욕도 없다.
어떤 식으로든 유명해지는 것은
그가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삶의 행로를 따르며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는 데 만족할 것이다]
514p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