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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소설은 이입이 잘 안되서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음. 입대하고 나서 꿀보직을 배정받아 책 읽을 시간이 많이 나서 영어 실력을 키워보자 하고 원어본으로 더블리너, 로리타, 핏빛 자오선을 구매했음. 로리타는 단어가 어려워서 읽다 포기했고 더블리너는 한번 읽고 어디서 잃어버림. 핏빛은 몇개월동안 한 3번정도 읽은것 같음


반쯤 읽었을 때 문법과 어휘가 독특해서 1900년 초반 쯔음에 쓰여진 책인줄 알았음. 스페인어나 고유명사가 섞여있고 사전에도 안나오는 단어들도 많아서 이해가 안되는 문장은 그냥 넘기며 읽었음. 해삼이 cucumber이 아니라 라틴어로 holothurian이라고 나오고 지금은 안쓰이는 동사의 시제변화를 가져다 쓰는데다 어순이나 문법도 일부러 꼬아쓴 느낌임. 나중에 찾아보니까 1980년대 중반에 쓴 책이였음. 간혹가다 작가들이 일부러 현학적인 단어와 복잡한 문장을 쓰는 경우가 있음. 핏빛 자오선의 경우에는 대놓고 그럼. 굳이 옛날 단어나 독자들이 모르는 고유명사들을 찾아서 박아 넣음.


어떤 비평가가 맥카시가 일부러 책을 어렵게 쓴다고 깐 글을 봤었음. 맥카시의 다른 소설은 잘 모르겠지만 핏빛 자오선의 경우에는 이런 문체가 굉장히 잘 어울림. 배경이 1840년대의 사막으로 독자들은 잘 알지 못하는 시대와 세계관이고, 표현과 관점을 투박한 그 옛날의 것을 차용해 그 시대에 쓰인듯한 느낌을 줌. 그렇다고 해서 맥카시가 1850년대 서부의 언어를 재현해낸건 아니고, 오히려 지가 읽은 영지주의 문헌의 표현들, 자기가 조어한 개인적인 단어들로 세계를 낮설게 표현함. mallethead, coalblack부터 시작해서 장면을 전환하기 직전엔 rode on이라 끝내고 몇 페이지마다 항상 누군가가 바닥에 침을 뱉음. 앞서 사용했던 낮선 단어들도 대게 나중에 다시 나옴. 실재 역사의 사실성을 빌려서 서부개척시대를 자기만의 구약성경이나 서사시에 나올법한 고대의 낮선 사막으로 재창조한 거임.

단어나 표현 말고 서술법도 모호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도 많이 나옴. 소설 결말이 너무 갑작스럽고 은유적으로 제시되서 처음 읽은 사람들은 뭔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힘듬. 뭔 일이 있었는지 이해를 한다해도 결말의 의미를 해석하려면 몇페이지 전에 등장한 꼬마아이의 탄생년도에 유성우가 떨어졌단 사실을 알아야함. 배경지식 없이 소설을 처음 정독하면 상징으로 제시된 떡밥들이나 주제의식은 보이지 않고, 그냥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한 소설로 보일거임. 그리고 이게 맥카시가 의도한 바라고 생각함. 나는 읽을때마다 떡밥이 하나씩 더 보이니 지적 욕구를 긁어주는것이 마음에 들었음.

마지막으로 소설의 밀도가 높은 것과 관련이 있음. 핏빛 자오선은 서사에 관련없는 정보들이 많이 제시됨. 작은 풀이 어떤 느낌으로 사막에 나 있는지, 날씨가 어땠는지를 뻔뻔할 정도로 자세하게 서술함. 그래서 낮선 단어를 박아 넣어 소설을 읽는 속도를 강제로 낮춘걸로 보임. 작가들이 간혹가다 일부러 어려운 표현을 사용할때가 있음. 작가가 지적 허영심에 빠져, 부족한 필력을 감추려 그러는 경우라면 가독성도 떨어지고 그냥 읽기가 싫어짐. 하지만 핏빛 자오선은 일부러 어렵게 썼단걸 당당하게 드러냄. 문체는 난해하지만 전체적인 구성은 B급 서부극을 패러디한 소설이고 오락성도 뛰어남. 오히려 난해한 문체가 소설을 더 재밌게 만든다고 생각함.


생각없이 여러번 읽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핏빛 자오선으로 영어를 공부하는건 좋은 생각이 아니였음. 문체나 어휘가 너무 독특함. 같은 이유로 영어가 된다면 원어로 읽는걸 추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