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자오선은 아주 잔인한 소설임. 살인, 강간, 약탈에 소아성애가 깜박이도 없이 튀어나옴. 땅이 소변과 피에 젖는 것이 호수가 석양에 핏빛이 되는것처럼 그 지역의 당연한 이치로 묘사됨.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폭력은 배경이지 주제나 주인공으로 묘사되지 않음에 마냥 역겹기만 한 소설은 아님
핏빛 자오선의 주인공은 1838년 사자자리 유성우가 내리던 날 밤에 태어난 소년임. 소년은 폭력에 길들여졌고, 서슴없이 사람을 죽이고, 글도 읽지 못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앎'을 숨기고 있음. 바로 이 영지, 외계에서 온 빛이 소설의 주제임. 잔인한 소설이지만 맥카시는 소년을 통해 인간의 선한 면을 보여주고 있음. 피로 찌든 여정 속에, 세상과 무관하며 외계에서 온 것만 같은, 이치와 무관하거나 반대되기까지 하는 내면의 선함이란 주제를 곳곳에 숨겨 놓음. 핏빛 자오선에선 맥카시가 이 주제를 제대로 발달시킨 않지만 다른 소설인 더 로드를 읽어봤으면 더 잘 알수 있을거임.
여정 내내 소년은 키가 2미터에 가까운 대머리인 흰 피부의 악마와 동행함. 판사 홀든이고 왜 판사란 칭호가 붙었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음. 사막 한가운데 로마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서양의 법학을 인용하며 총과 탄약을 즉시 자기에게 던질 것을 요구하는 사람임. 저녁에서는 식물이나 화산에 대한 일지를 쓰고 횃불로 비추어 오래전에 그려진 벽화를 스케치하고 책장 사이에 특이한 나뭇잎을 끼워넣고 닫음. 수첩이 닫히면 신이나 폭력에 대한 장광설이 시작됨. 판사는 제국주의와 자연과학의 폭력을 상징하는 인물임.
이 두 인물이 핏빛 자오선에서 묘사하는 세계관의 두 축임. 맥카시는 1848년에 실존했던 인디언 사냥꾼들과 서부극이란 장르를 가져와 문명이 없던 땅에 자기의 견해를 강제로 적용하는 제국주의의 강압을 악신으로 묘사함. 19세기의 시대정신을 종교적 상징으로 묘사해냈음. 소설의 끝자락에서 폭력은 정점, 즉 그 자오선을 찍고 몇백페이지 만에 서술이 현재시제로 돌아오며 맥카시는 그 순간을 사진처럼 박제해냄. 이렇게 맥카시가 서부개척시대에게 바치는 찬사는 완전하게 마무리됨.
핏빛 자오선이 처음 출판되었을때 사람들은 핏빛 자오선의 주제를 허무주의라고 착각함. 소설에서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자면 돌폭풍에 뼈가 부러진 여행자의 분노는 해의 악의적인 이글거림 아래선 풍화될 뿐임. 하지만 조금만 더 주의깊게 읽어보면 개인의 견해를 압도하는 더 큰 질서와, 그 질서를 거부하며 부정하는 선의 대립을 볼수 있음.
폭력, 서부, 사막 또는 19세기 역사에 관심이 있으면 무조건 읽어야할 소설임. 아니더라도 그 화신이 등장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유럽의 학문적 전통에 끌림을 느낀다면 꼭 읽어라
핏빛 자오선의 주인공은 1838년 사자자리 유성우가 내리던 날 밤에 태어난 소년임. 소년은 폭력에 길들여졌고, 서슴없이 사람을 죽이고, 글도 읽지 못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앎'을 숨기고 있음. 바로 이 영지, 외계에서 온 빛이 소설의 주제임. 잔인한 소설이지만 맥카시는 소년을 통해 인간의 선한 면을 보여주고 있음. 피로 찌든 여정 속에, 세상과 무관하며 외계에서 온 것만 같은, 이치와 무관하거나 반대되기까지 하는 내면의 선함이란 주제를 곳곳에 숨겨 놓음. 핏빛 자오선에선 맥카시가 이 주제를 제대로 발달시킨 않지만 다른 소설인 더 로드를 읽어봤으면 더 잘 알수 있을거임.
여정 내내 소년은 키가 2미터에 가까운 대머리인 흰 피부의 악마와 동행함. 판사 홀든이고 왜 판사란 칭호가 붙었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음. 사막 한가운데 로마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서양의 법학을 인용하며 총과 탄약을 즉시 자기에게 던질 것을 요구하는 사람임. 저녁에서는 식물이나 화산에 대한 일지를 쓰고 횃불로 비추어 오래전에 그려진 벽화를 스케치하고 책장 사이에 특이한 나뭇잎을 끼워넣고 닫음. 수첩이 닫히면 신이나 폭력에 대한 장광설이 시작됨. 판사는 제국주의와 자연과학의 폭력을 상징하는 인물임.
이 두 인물이 핏빛 자오선에서 묘사하는 세계관의 두 축임. 맥카시는 1848년에 실존했던 인디언 사냥꾼들과 서부극이란 장르를 가져와 문명이 없던 땅에 자기의 견해를 강제로 적용하는 제국주의의 강압을 악신으로 묘사함. 19세기의 시대정신을 종교적 상징으로 묘사해냈음. 소설의 끝자락에서 폭력은 정점, 즉 그 자오선을 찍고 몇백페이지 만에 서술이 현재시제로 돌아오며 맥카시는 그 순간을 사진처럼 박제해냄. 이렇게 맥카시가 서부개척시대에게 바치는 찬사는 완전하게 마무리됨.
핏빛 자오선이 처음 출판되었을때 사람들은 핏빛 자오선의 주제를 허무주의라고 착각함. 소설에서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자면 돌폭풍에 뼈가 부러진 여행자의 분노는 해의 악의적인 이글거림 아래선 풍화될 뿐임. 하지만 조금만 더 주의깊게 읽어보면 개인의 견해를 압도하는 더 큰 질서와, 그 질서를 거부하며 부정하는 선의 대립을 볼수 있음.
폭력, 서부, 사막 또는 19세기 역사에 관심이 있으면 무조건 읽어야할 소설임. 아니더라도 그 화신이 등장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유럽의 학문적 전통에 끌림을 느낀다면 꼭 읽어라
이새끼도 잔인하고 저새끼도 잔인한 샠기였음...
피곤해하면서 억지로 읽느라 큰그림을 못봤는데 이렇게 감상을 올려줘서 고맙다
님 메인어 갤러리에서 해석쓰는 사람 아님?ㅋㅋ
? 어캐 알았노
ㅋㅋ 미츠케타~
<판사는 제국주의와 자연과학의 폭력을 상징하는 인물> -> 다시 읽어라
판사는 자연의 폭력 force of nature 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즉 자연 그 자체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