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사유의 부재는 자신의 신앙생활 뿐 아니라 삶에까지 영향을 끼쳐 오늘의 운세, 정치선동, 사주팔자, 혈액형같은 비논리적인 사술에도 쉽게 넘어가 굳은 믿음을 가지게 되죠. 자기 인생의 방향타를 왜 남한테 맡겨버리는 걸까요?
짝녀따라 몇번 교회도 가고 성경도 읽고있는데 참 고역이네요.
댓글 19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5~27)."
익명(118.220)2017-12-18 23:15
이 구절은 의심에 관해 매우 의미심장한 구절임
익명(118.220)2017-12-18 23:16
실례지만 본인이 저 구절에서 느낀 바를 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앞 뒤 구절이 없어서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ㄹㄹㄹㅇ(118.216)2017-12-18 23:18
나는 개신교는 아니고 카톨릭이야. 거기다 자연과학 분야를 전공하고 있어. 성경에 어떻게 쓰여있던 간에 항상 마음속에 의심이 있고 그 의심을 버릴 생각은 전혀 없다. 맹목적인 믿음을 가질 바에는 차라리 종교를 버릴거야.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요, 과학이 없는 종교는 맹인이다. - 아인슈타인 -
익명(221.139)2017-12-18 23:22
저 구절은 사실 해방적 신학해석에서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긴 한데 예수의 가르침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저 구절은 예수가 부모처자형제를 미워하라는 건데 기독교의 가르침에 의심이 없다는 너의 말이 단지 억지로 끌려간 교회에서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결론인것 같아서 쓴거야 해석은 너에게 달린거지 나한테 달린게 아니다
익명(118.220)2017-12-18 23:22
이런글 쓰면 어그로 잘 끌리자너 ㅋㅋㅋ
익명(119.196)2017-12-18 23:24
다 한마디씩 할 말 있어서 ㅋㅋㅋ
익명(119.196)2017-12-18 23:24
이게 존나 흔해빠진 주제란걸 모를리는 없고 ㅋㅋ 니 어그로 맞냐? ㅋㅋㅋ
익명(119.196)2017-12-18 23:25
아인슈타인은 범신론자였고, 저기서 말하는 종교는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호기심이 아녔나요?
ㄹㄹㄹㅇ(118.216)2017-12-18 23:27
하지만 그건 중요한게 아니니까.. 궁금한 점은 자신의 지식이 종교적 가르침을 부정할 때 어떻게 대처하나요?
ㄹㄹㄹㅇ(118.216)2017-12-18 23:28
그러면 무신론자가 되면 되지 교회다니는 게 고역이면 안가면 되고 나는 무신론자지만 신약도 자주읽고 예수에 대한 책도 읽는 편이다
익명(118.220)2017-12-18 23:32
네 저는 무신론자예요. 그냥 요즘 맘이 심란해서.. 내 믿음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믿음도 존중해야 하는 건데 괜한 분란을 일으킨 것 같네요.
ㄹㄹㄹㅇ(118.216)2017-12-18 23:34
니가 지금 착각할 수 밖에 없는게 ㅋㅋ 종교인에 대한 이미지 하나 만들어 놓고 교리를 그 이미지에 대입시키고 있는거자너 ㅋㅋㅋ
익명(119.196)2017-12-18 23:44
내가 신앙심 잘 안 생기는 카톨릭인데, 언젠가 어느 신부님이랑 사적으로 난 종교적 인간이 아닌 것 같다 의심을 버릴 수 없다고 했거든. 근데 그 양반 하시는 말씀이, 그건 성직자도 마찬가지라고, 신부도 평생 자기의 불신과 싸우다 가는 거라더라. 불신은 인간 이성의 당연한 귀결인듯. 무조건적 믿음이 어딘가 기대고 싶은 인간 감성의 산물이듯이.
Machiavelli(redhot27)2017-12-18 23:45
오랜 서양철학사에서도 프로 의심쟁이가 둘 있었어요.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와 데카르트입니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는 주교였어요. 신학자였죠. 앙마와 하느님에 대한 의심에 의심을 더하가다가 결국엔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해냈죠. 물론 종교가 없는 작성자님이나 저는 그 증명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상관 없겠지만, 적어도 종교인도 의심이란걸 할수 있다는건 알 수 있죠 :)
익명(175.223)2017-12-18 23:51
신부님 말씀대로 의심과 싸우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 같아요. 의심이 생기는 건 어차피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싫으면 신앙인 안하면 되는거구요.. 고비가 시시때때로 찾아오네요 ㅜㅜ
ㄹㄹㄹㅇ(118.216)2017-12-18 23:53
음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누구나 의심하는 마음은
가질 수 있죠. 그건 맞지만, 기독교에서 의심은 억눌러야 할 대상이고, 이런 과정을 통해 교인들이 점차로 의심을 억누르는 것에 점차 익숙해지는 것 같다는 것이였어요. 댓글 쓰면서 다시 읽어보니 글을 한참 잘못썼다는 생각이 드네요
ㄹㄹㄹㅇ(118.216)2017-12-18 23:57
그리고 많은 분들이 댓글로 종교적 믿음과 비판적 사유는 별개라는 것도 지적해주셨고요
ㄹㄹㄹㅇ(118.216)2017-12-18 23:59
기독교에 의심이 허락되지 않았으면 교리사라는 신학 세부전공이 생길 수조차 없음. 글쓴이는 지금 뭔가 착각하는 듯. 기독교에서 억누르라는 의심은 니가 말하는 그런 의심이 아니라 신의 존재에 대한 궁극적 긍정에 대한 의심 또는 신의 섭리와 자비에 대한 의심이지.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5~27)."
이 구절은 의심에 관해 매우 의미심장한 구절임
실례지만 본인이 저 구절에서 느낀 바를 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앞 뒤 구절이 없어서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나는 개신교는 아니고 카톨릭이야. 거기다 자연과학 분야를 전공하고 있어. 성경에 어떻게 쓰여있던 간에 항상 마음속에 의심이 있고 그 의심을 버릴 생각은 전혀 없다. 맹목적인 믿음을 가질 바에는 차라리 종교를 버릴거야.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요, 과학이 없는 종교는 맹인이다. - 아인슈타인 -
저 구절은 사실 해방적 신학해석에서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긴 한데 예수의 가르침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저 구절은 예수가 부모처자형제를 미워하라는 건데 기독교의 가르침에 의심이 없다는 너의 말이 단지 억지로 끌려간 교회에서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결론인것 같아서 쓴거야 해석은 너에게 달린거지 나한테 달린게 아니다
이런글 쓰면 어그로 잘 끌리자너 ㅋㅋㅋ
다 한마디씩 할 말 있어서 ㅋㅋㅋ
이게 존나 흔해빠진 주제란걸 모를리는 없고 ㅋㅋ 니 어그로 맞냐? ㅋㅋㅋ
아인슈타인은 범신론자였고, 저기서 말하는 종교는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호기심이 아녔나요?
하지만 그건 중요한게 아니니까.. 궁금한 점은 자신의 지식이 종교적 가르침을 부정할 때 어떻게 대처하나요?
그러면 무신론자가 되면 되지 교회다니는 게 고역이면 안가면 되고 나는 무신론자지만 신약도 자주읽고 예수에 대한 책도 읽는 편이다
네 저는 무신론자예요. 그냥 요즘 맘이 심란해서.. 내 믿음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믿음도 존중해야 하는 건데 괜한 분란을 일으킨 것 같네요.
니가 지금 착각할 수 밖에 없는게 ㅋㅋ 종교인에 대한 이미지 하나 만들어 놓고 교리를 그 이미지에 대입시키고 있는거자너 ㅋㅋㅋ
내가 신앙심 잘 안 생기는 카톨릭인데, 언젠가 어느 신부님이랑 사적으로 난 종교적 인간이 아닌 것 같다 의심을 버릴 수 없다고 했거든. 근데 그 양반 하시는 말씀이, 그건 성직자도 마찬가지라고, 신부도 평생 자기의 불신과 싸우다 가는 거라더라. 불신은 인간 이성의 당연한 귀결인듯. 무조건적 믿음이 어딘가 기대고 싶은 인간 감성의 산물이듯이.
오랜 서양철학사에서도 프로 의심쟁이가 둘 있었어요.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와 데카르트입니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는 주교였어요. 신학자였죠. 앙마와 하느님에 대한 의심에 의심을 더하가다가 결국엔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해냈죠. 물론 종교가 없는 작성자님이나 저는 그 증명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상관 없겠지만, 적어도 종교인도 의심이란걸 할수 있다는건 알 수 있죠 :)
신부님 말씀대로 의심과 싸우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 같아요. 의심이 생기는 건 어차피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싫으면 신앙인 안하면 되는거구요.. 고비가 시시때때로 찾아오네요 ㅜㅜ
음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누구나 의심하는 마음은 가질 수 있죠. 그건 맞지만, 기독교에서 의심은 억눌러야 할 대상이고, 이런 과정을 통해 교인들이 점차로 의심을 억누르는 것에 점차 익숙해지는 것 같다는 것이였어요. 댓글 쓰면서 다시 읽어보니 글을 한참 잘못썼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댓글로 종교적 믿음과 비판적 사유는 별개라는 것도 지적해주셨고요
기독교에 의심이 허락되지 않았으면 교리사라는 신학 세부전공이 생길 수조차 없음. 글쓴이는 지금 뭔가 착각하는 듯. 기독교에서 억누르라는 의심은 니가 말하는 그런 의심이 아니라 신의 존재에 대한 궁극적 긍정에 대한 의심 또는 신의 섭리와 자비에 대한 의심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