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2월 19일자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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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인생의 이야기, 시와서, 2019.
사노 요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을유문화사, 2016.
이슬아, 심신 단련, 헤엄출판사, 2019.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문학동네, 2020.
수필과 에세이들(이하 산문)이 넘쳐흐르는 요즘 도서 시장에 반감이 있다. 어디서 본 듯한 표지 일러스트와 디자인, 그럴 듯한 문장형 제목, 뭐가 그리 TMI가 많은지 모르겠는 책날개의 작가 소개까지. 하여간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이런 피상적인 부분이야 저마다의 취향이니 그러려니 하더라도 대체 그 내용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준 미달이라고밖에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서점에 가서 유행하는 산문들을 훑어본 결과 다들 비슷비슷하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지만 누구나 일상에서 지키기 어려운 것들을 약간의 개인 경험에 버무려서 “우리 모두 힘들지만 노력해요!” 아니면 “힘들면 잠시 내려놓고 너 자신을 찾아봐!” 이렇게 둘 중 하나로 결론짓는 게으른 글쓰기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모름지기 산문이라면 글에 뚝뚝 묻어나오는 솔직함만큼 좋은 무기가 없음에도 너무들 독자를 의식하는 것 같다.
맛없는 음식을 먹어 기분이 나빴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어 기분을 채워줘야 하듯이 책 역시 그러한 법.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산문들 네 권을 다시 읽어봤다. 그중에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죽는 작가의 글도 있고 태어난 지 채 서른 해가 되지 않은 작가의 글도 있다. 그만큼 다양한 매력이 있고 문장의 방식에 차이가 있으며 다루는 내용 역시 상이하다. 하지만 한 세기를 뛰어넘는 그 글들을 내가 사랑하게 만든 공통점은 앞서 얘기한 솔직함에 있다. 한낱 독자인 내가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여부를 어떻게 아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한 번 읽어보라는 답밖에 할 수 없다. 그들의 글을 읽어보고도 솔직함을 느끼지 못하겠다면 겸허히 내 안목을 반성하겠다.
먼저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산문선 《나쓰메 소세키-인생의 이야기》는 기고, 수필, 담화문, 강연문, 서간으로 구성돼 있다. 영어 교사 시절 한 한생이 I love you를 일본어로 어떻게 번역하면 되겠냐는 물음에 月が綺麗ですね(달이 아름답네요)로 답한 일화로 유명한 소세키의 문장은 대단히 감성적이다. 육성으로 한 말을 글로 옮겼을 뿐인 담화문이나 강연문에서도 그와 같은 감성은 일관되게 표현되어 이 사람은 그 자체로 세상의 감성과 공명하는 사람이구나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또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에 기반한 지성으로서의 면모 역시 보여주고 있어 만약 그가 50도 안 된 나이에 병사하지 않았다면 그 뒤 진행되는 일본의 전체주의 파시즘에 글로써나마 반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문단에 있으면서 일본 문단을 향한 신랄한 비판을 가하거나 영국의 자유와 도덕을 찬미하면서 영국이라는 나라는 싫어한다는 등의 배짱과 솔직함은 덤이다.
두 번째는 일본의 동화작가이자 수필가인 사노 요코의 에세이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로 소세키의 글이 일본적인 분위기보다 옛날의 글이라는 분위기가 훨씬 더 강했다면 이 책은 다분히 일본적이라 부를 수 있는 분위기로 채워져 있다. 마치 만화 《심야식당》에 나오는 에피소드들 같달까. 잔잔하지만 한국 사회와 비교했을 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그런 분위기를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하기에 좋게 읽었다. 그런데 읽다 보니 기시감이 들었다. 잠시 읽기를 멈추고 그 근원을 돌이켜보니 박완서의 수필에서 접한 내용과 주제들이었다. 나이 든 여성에게 부여된 고루한 인식에서 벗어나 자기 인생의 주체로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써내려 간 두 여성작가들. 두 달의 텀을 두고 사이좋게(?) 이 세상을 떠나간 두 사람. 비록 생전에 인연은 없었을지라도 그들의 글들은 남아 이 세상의 끝까지 서로를 이어주리라.
남은 두 권은 모두 이슬아의 책이다. 산문집 《심신 단련》과 에세이 《부지런한 사랑》이 그것인데 나와 같은 90년생인 만큼 이슬아의 글들에서 가장 많은 익숙함을 느꼈다. 재밌는 것은 익숙한 것과 별개로 세 작가 중 나와 가장 개인적인 성정이 다른 사람인 것 같다. 너무 똑부러지고 너무 열심히 산다. 나와는 정반대에 가까운데 오히려 그렇기에 더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심신 단련》은 분명 산문집임에도 읽으면서 스스로 반성하게끔 만드는 자기계발서적인 효용을 보여주었다.

한편 《부지런한 사랑》은 솔직함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인데 그도 그럴 것이 작가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생긴 일화들이나 단상들을 써내려갔기 때문이다. 아이들만큼 솔직한 존재가 또 어디 있는가. 그런데 그런 존재들의 글쓰기를 토대로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작가의 문장들이 배가되면서 솔직함의 향연이 벌어진다. 작가의 문장을 빌리자면 작가의 “애틋하고 광활한 시선”에 금세 몰입되어 재독임에도 단번에 끝까지 읽어버리고 말았다. 이슬아의 글에도 팬이 된 것 같다. 물론 김사과만큼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