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일자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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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 한국 디자인과 문화의 전환, 안그라픽스, 2019.

디자인에 처참할 정도로 무심할 뿐더러 무식한 식견을 지니고 있는 내가 디자인 평론집라는 평소의 관심사와 완전히 동떨어진 부류의 책을 읽게 된 원인은 아마 저자의 글을 지난 몇 년간 SNS에서 접해왔기 때문이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SNS에서 접해온 저자의 글은 한국 사회의 여러 사안들을 디자인과 연관하여 유의미한 시사점들을 얘기해왔기에 제아무리 디자인에 일자무식한 사람일지라도 무리없이 읽을 수 있었다. 그런 저자의 글들을 미리 접했기에 이 책 역시 부담 없이 읽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고 그 덕에 SNS에서는 만나보지 못한 양질의 글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책은 ‘디자인과 문화의 전환’, ‘디자인 윤리와 교육의 전환’, ‘사회의 변화와 문화의 전환’, ‘예술과 창작의 전환’ 이렇게 크게 네 장으로 구성돼 있다. 모두 다 나름대로 의미있는 글들로 짜여져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사회의 변화와 문화의 전환’에서의 ‘국가와 국기와 나: 태극기의 신화를 넘어서’와 ‘소녀상과 미술 담론: ‘소녀상의 예술학’ 토론회를 통해 본 한국 진보 미술계의 인식’을 주의깊게 읽었다. 태극기와 소녀상이라는 두 상징물을 토대로 한국 사회의 일면을 날카롭게 조명하는 그의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 모두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라 여긴다.
또한 ‘예술과 창작의 전환’에서의 ‘민화, 우리 안의 니그로를 찾아서: 종족적 인정투쟁의 장으로서의 미술’은 민화를 한국의 ‘니그로 미술’로 정의하면서 일본 지식인에 의해 발굴된 민화의 재타자화, 즉 탈민족적 전유를 이야기하는데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민화가 民의 그림인지 族의 그림인지를 두고 얘기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민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꽤나 많은 분야를 民과 族의 구분을 통해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자는 계속해서 근대성이 마치 서구 근대 국가에서는 완전히 작동한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물론 저자가 그것을 모를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서구 역시 근대성이 제대로 작동했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서구 역시 국가가 국민을 배제하고 차별한 역사가 있지 않은가. 예컨대 저자는 세월호 참사를 다루면서 서구에서는 국가와 국민이 동일시되어 온 반면 한국에서는 국가가 신으로 군림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마치 서구 근대 국가에서 자행된 국가폭력을 일부러 경시하는 듯하다.
또한 저자는 ‘예술과 창작의 전환’에서의 ‘적폐를 찾아서, 샤머니즘 팝의 탄생: 김홍식의 <벌기.위한.기도.>전’에서 한국 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의 기원을 “한국인들의 원시적 심성”인 샤머니즘으로 해석하는데 이는 너무 자국민폄하적인 사고가 아닐까 한다. 소위 물질주의라는 문제가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렇기에 나는 김규항이 《혁명노트》에서 얘기한 것과 같이 그러한 물질주의적 문제는 자본주의 자체가 지니고 있는 물신주의에서 연유한 것이라 보는 쪽이 더 알맞다고 여긴다. 설사 물질주의가 서구에 비해 한국 사회에서 더 심각하고 만연한 문제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한국인의 원시적 심성 때문이 아니라 김덕영이 《환원근대》에서 주장하듯 한국에서의 근대성이 물질과 비물질 중 오직 물질적인 영역으로만 환원되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읽으며 계속 흥미를 북돋아 주는 내용들로 이루어져있었다. 아무래도 저자의 다른 평론집들도 읽어봐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