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내가 못알아 먹어서 그런지 지금 이 설명 가지고는 충분치 못한 듯거 같은데..요컨대 자아의 불멸성을 인정하느냐 또는 조건적으로 존재하고 해소되는 것으로 자아를 보느냐로 힌두교와 불교의 윤회 전생을 구분한다고 하는 거잖아, 근데 그렇게 칼로 자르듯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아 보임 이를테면 나는 5살 때의 나와 아주 달라졌다는 걸로 나는 그때의 나와 다르다고 주장해봤자 나는 그때의 내가 없으면 지금의 나도 없다는 것은 분명하잖아. 다시 돌아오는 것이 없음에도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개념도 말장남처럼 아리송하고 결국 그 차이를 실감(?)하지 못하면 힌두교의 환생이나 불교의 윤회가 실질적으로는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그렇게 구분되는 개념이 되지는 못할 것 같은데
양가죽(texaschainsaw)2021-02-2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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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전에 글 써주신다면서요. 불교에서 보는 인간 존재의 의미. 삶이 고해라면 인간의 탄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Phil(inno0822)2021-02-25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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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하는 거니까 재촉할 일은 아니고. 시간 날 때 써 주세요~
Phil(inno0822)2021-02-2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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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nno0822)2021-02-2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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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니짜 아나타 이러는데 나로서는 상 무상 아 무아 고 쾌 이러는 게 더 편할 듯.. 넌 설명하면서도 진짜 나 가짜 나 언급했는데 그럼 진짜 나는 무상한 존재가 아닌 건가 연기 조건에 따라 해소되지 않으며 늘 그러한 자리에 있는 존재인가.. 그리고 힌두교라고 아울러 부를 수 있는 실체적 종교가 존재하는지 모르겠네.. 최근 내가 읽어본 마하리쉬 같은 경우는 불교와는 전혀 관계없는 남인도의 타밀 어를 쓰는 성자 거든? 쉬바 신을 믿고...근데 범아 일체 이런 언급 없고 오직 자기 탐구인데 그러한 나를 주시하라는 건데 그러다 덜컥 진짜 나를 깨닫는다고 해서 너가 말한대로 고가 쾌로 바뀌거나 그런 건 없던데.. 재육화 이런 발상도 없고 그런 거 신경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걸 하고 있는 오직 나
양가죽(texaschainsaw)2021-02-25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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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를 들여다 보라고 하던데.. 근데 스님도 비슷한 말을 하던데 나를 보라고 구름에 가려져 있는 그래서 그 구름을 나라고 착각하지만 그런 건 지나가는 거고 생성소멸하는 거는 무상한 거니까 붙들어봤자 소용없이 그 뒤에 쨍한 해같은 나를 보라고. 그런 나는 무상한 나가 아닌 건가. 돌아오는 내가 내가 아니라면 그건 돌아오는 게 아닌 거고 윤회개념 자체를 거론하는 게 무쓸모한 거지. 그런데 어딘가 연관이 되어있고 기억나지 않지만 고통을 이어받는 게 있으니까 이어받는 주체가 조건에 따라 해소되는 무상함에 기반해 있더라도 없는 것은 아니잖아 이건 뭐 수행을 통해 각성을 해야지 알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는 무아의 윤회니 아트만의 윤회니 그 사이에서 갈라치는 경계가 모호함
양가죽(texaschainsaw)2021-02-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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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들어와서 다시 읽으니 내가 너의 댓글을 대충 읽어서 오해한 게 드러났는데 그걸 우선 시인해야겠네. 진짜 나 가짜 나 라고 언급한 거는 불교의 입장에서는 외도가 되는 힌두교이든 브라만교이든 범아일여든 그 외도쪽에서 그렇게 언급한다는 거지 빨리어로 표기된 원시 불교에서 '진짜 나' '가짜 나'라는 구분 자체가 예초부터 발생하지 않는다는 얘기지? 그럼 늘 그러한 나라는 것은 없겠네. 댓글에서 언급한 그 스님은 구름이 걷히면 햇살 같은 쨍한 내가 있다고 했는데 그럼 그건 너가 생각하는 불교에서는 어긋난다는 거네? 불성이니 여래장이니 이런 것도 마찬가지로 잘못이겠? 마하리쉬 언급을 한건 마하리쉬도 그 스님이 한 얘기와 너무나 유사해서 얘기했을 뿐이야. 진짜 내가 있다는 거. 너 입장에서는 그게 없다는 거고..
양가죽(texaschainsaw)2021-02-2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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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링크해놓은 거도 읽었어 요컨대 보통 '무상'이라고 번역되는 nicca 라는 건 내가 바라는대로 세상에 정돈된 채로 유지되지 않음을 말하고, 그런데 내가 내가 바라는대로 정돈될 꺼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헛된 시도를 해서 발생하는 '고통'을 dukka 라고 한 거고, 보통 '무아'라고 번역되는 anatta라는 건 그러한 시도를 하고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는 나라는 게 없다는 거 아닌가? 심각한 오해가 발생한다하는 지점은 대상이'>>내 주관의 꼴림에 따라 수월하게 배치될 수 있는 믿음<<을 중심으로 개념들을 재배치하는 차이가 있는 거 같은데.그러니까 그냥 무상 무아 가 아니라 세상이 내 바람에 따라 그대로임 항상성 유지라는 각도기에서 무상이냐, 그러한 내가 없다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는 거 아냐 ?
양가죽(texaschainsaw)2021-02-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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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너가 말하는 무아 또는 anartta라는 것은 '그러한 믿음이 해소될 수 있으므로' 수행을 통해서든지 연기적 조건의 변경에 따라 나의 조건이 달라지기에 무아=아나따라는 건가? 여하튼 맨처음으로 돌아가면 그러한 나를 위해 컨디션이 유지될 거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나는 얼마든지 해소될 수 있는데 윤회, 즉 돌아온다고 하는 주장을 불교에서 굳이 하는 이유가 뭐야? 그렇게 가변성이 넘치는 존재인데 연기적 조건에 따라 10년후에도 달라지고 대오 각성을 해서 산 채로 죽어버릴 수도 있는 나라면 돌아올 내가 없잖아? 죽은 다음에 뭐가 돌아온다는 거야? 심지어 과보까지 받으면서 이전생으로부터 고통과 업장을 받는다는 거는 원시불굔에서는 힌두교에 오염된 헛소리인가? 그러기엔 경전 곳곳에서 이를테면 석가모니의 이전생
양가죽(texaschainsaw)2021-02-2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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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수행담들은 다 후대에 민중의 취향에 따라 가필 된 건가? 논쟁을 위한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으므로 여기까지 할 게 여튼.. 불교에서 윤회는 중요한 이론적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무시 때리면 안될 거 샅아 그게 없으면 힘들면 자살하거나 적당히 살다 죽으면 되지 하드한 수행을 뭐하러 하노 그런 의미에서 말야.. 그런데 돌아올 내가 없다? 그러면서도 과보는 받는다? 이런 모순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거고. 불교 내부에서도 다 읽어본 건 아니지만 난제일 듯 해.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는 것 같으니까.
윤회, 환생 때문에 불교는 안믿지만 그래도 다른 종교보다는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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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다른데?
오 이거 오늘 본 5장 내용 요약이네 ㄱㅇㄷ
글쎄.. 내가 못알아 먹어서 그런지 지금 이 설명 가지고는 충분치 못한 듯거 같은데..요컨대 자아의 불멸성을 인정하느냐 또는 조건적으로 존재하고 해소되는 것으로 자아를 보느냐로 힌두교와 불교의 윤회 전생을 구분한다고 하는 거잖아, 근데 그렇게 칼로 자르듯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아 보임 이를테면 나는 5살 때의 나와 아주 달라졌다는 걸로 나는 그때의 나와 다르다고 주장해봤자 나는 그때의 내가 없으면 지금의 나도 없다는 것은 분명하잖아. 다시 돌아오는 것이 없음에도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개념도 말장남처럼 아리송하고 결국 그 차이를 실감(?)하지 못하면 힌두교의 환생이나 불교의 윤회가 실질적으로는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그렇게 구분되는 개념이 되지는 못할 것 같은데
형님. 전에 글 써주신다면서요. 불교에서 보는 인간 존재의 의미. 삶이 고해라면 인간의 탄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봉사하는 거니까 재촉할 일은 아니고. 시간 날 때 써 주세요~
너가 니짜 아나타 이러는데 나로서는 상 무상 아 무아 고 쾌 이러는 게 더 편할 듯.. 넌 설명하면서도 진짜 나 가짜 나 언급했는데 그럼 진짜 나는 무상한 존재가 아닌 건가 연기 조건에 따라 해소되지 않으며 늘 그러한 자리에 있는 존재인가.. 그리고 힌두교라고 아울러 부를 수 있는 실체적 종교가 존재하는지 모르겠네.. 최근 내가 읽어본 마하리쉬 같은 경우는 불교와는 전혀 관계없는 남인도의 타밀 어를 쓰는 성자 거든? 쉬바 신을 믿고...근데 범아 일체 이런 언급 없고 오직 자기 탐구인데 그러한 나를 주시하라는 건데 그러다 덜컥 진짜 나를 깨닫는다고 해서 너가 말한대로 고가 쾌로 바뀌거나 그런 건 없던데.. 재육화 이런 발상도 없고 그런 거 신경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걸 하고 있는 오직 나
오직 나를 들여다 보라고 하던데.. 근데 스님도 비슷한 말을 하던데 나를 보라고 구름에 가려져 있는 그래서 그 구름을 나라고 착각하지만 그런 건 지나가는 거고 생성소멸하는 거는 무상한 거니까 붙들어봤자 소용없이 그 뒤에 쨍한 해같은 나를 보라고. 그런 나는 무상한 나가 아닌 건가. 돌아오는 내가 내가 아니라면 그건 돌아오는 게 아닌 거고 윤회개념 자체를 거론하는 게 무쓸모한 거지. 그런데 어딘가 연관이 되어있고 기억나지 않지만 고통을 이어받는 게 있으니까 이어받는 주체가 조건에 따라 해소되는 무상함에 기반해 있더라도 없는 것은 아니잖아 이건 뭐 수행을 통해 각성을 해야지 알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는 무아의 윤회니 아트만의 윤회니 그 사이에서 갈라치는 경계가 모호함
아침에 들어와서 다시 읽으니 내가 너의 댓글을 대충 읽어서 오해한 게 드러났는데 그걸 우선 시인해야겠네. 진짜 나 가짜 나 라고 언급한 거는 불교의 입장에서는 외도가 되는 힌두교이든 브라만교이든 범아일여든 그 외도쪽에서 그렇게 언급한다는 거지 빨리어로 표기된 원시 불교에서 '진짜 나' '가짜 나'라는 구분 자체가 예초부터 발생하지 않는다는 얘기지? 그럼 늘 그러한 나라는 것은 없겠네. 댓글에서 언급한 그 스님은 구름이 걷히면 햇살 같은 쨍한 내가 있다고 했는데 그럼 그건 너가 생각하는 불교에서는 어긋난다는 거네? 불성이니 여래장이니 이런 것도 마찬가지로 잘못이겠? 마하리쉬 언급을 한건 마하리쉬도 그 스님이 한 얘기와 너무나 유사해서 얘기했을 뿐이야. 진짜 내가 있다는 거. 너 입장에서는 그게 없다는 거고..
너가 링크해놓은 거도 읽었어 요컨대 보통 '무상'이라고 번역되는 nicca 라는 건 내가 바라는대로 세상에 정돈된 채로 유지되지 않음을 말하고, 그런데 내가 내가 바라는대로 정돈될 꺼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헛된 시도를 해서 발생하는 '고통'을 dukka 라고 한 거고, 보통 '무아'라고 번역되는 anatta라는 건 그러한 시도를 하고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는 나라는 게 없다는 거 아닌가? 심각한 오해가 발생한다하는 지점은 대상이'>>내 주관의 꼴림에 따라 수월하게 배치될 수 있는 믿음<<을 중심으로 개념들을 재배치하는 차이가 있는 거 같은데.그러니까 그냥 무상 무아 가 아니라 세상이 내 바람에 따라 그대로임 항상성 유지라는 각도기에서 무상이냐, 그러한 내가 없다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는 거 아냐 ?
그럼 너가 말하는 무아 또는 anartta라는 것은 '그러한 믿음이 해소될 수 있으므로' 수행을 통해서든지 연기적 조건의 변경에 따라 나의 조건이 달라지기에 무아=아나따라는 건가? 여하튼 맨처음으로 돌아가면 그러한 나를 위해 컨디션이 유지될 거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나는 얼마든지 해소될 수 있는데 윤회, 즉 돌아온다고 하는 주장을 불교에서 굳이 하는 이유가 뭐야? 그렇게 가변성이 넘치는 존재인데 연기적 조건에 따라 10년후에도 달라지고 대오 각성을 해서 산 채로 죽어버릴 수도 있는 나라면 돌아올 내가 없잖아? 죽은 다음에 뭐가 돌아온다는 거야? 심지어 과보까지 받으면서 이전생으로부터 고통과 업장을 받는다는 거는 원시불굔에서는 힌두교에 오염된 헛소리인가? 그러기엔 경전 곳곳에서 이를테면 석가모니의 이전생
의 수행담들은 다 후대에 민중의 취향에 따라 가필 된 건가? 논쟁을 위한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으므로 여기까지 할 게 여튼.. 불교에서 윤회는 중요한 이론적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무시 때리면 안될 거 샅아 그게 없으면 힘들면 자살하거나 적당히 살다 죽으면 되지 하드한 수행을 뭐하러 하노 그런 의미에서 말야.. 그런데 돌아올 내가 없다? 그러면서도 과보는 받는다? 이런 모순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거고. 불교 내부에서도 다 읽어본 건 아니지만 난제일 듯 해.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는 것 같으니까.
샅아 -> 같아
세상에 정돈된 채로 -> 세상의 사물들이 나를 위해서 정돈된 채로
여튼 독립된 글을 쓰겠다고 했으니까 그쪽을 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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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 환생은 불교의 개념이 아닙니다.
그럼 금강경은 힌두교 경전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