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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이런 대가의 대작을 평가할 깜냠이 읎다. 문학에 대한 소양도 그냥 즐기는 수준인지라

도스토예프스키 최후, 최고, 최대의 작품을 감문으로 남긴다니. 불알이 흔들릴 정도다.

그러나 좁밥에게는 좁밥의 방법이 있는 법. 한번 리뷰해 보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요한복음 12장 24절의 말씀으로 시작한다. 상세한 맥락은 (귀찮) 찾아봐야 하겠지만

2천 페이지에 달하는 이 작품은 우리 한 명 한 명의 씨앗이 세상에 태어나 어떻게 열매 맺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구원, 사랑, 신, 종교, 폭력 등 많은 소재가 스쳐지나가지만 결국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교'에 대한 

세 형제의 이야기이자 작가의 대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안에서 하느님과 악마가 싸우고 있고 그 전쟁터는 바로 인간의 마음이야 (드미트리의 경우)

드미트리는 극과 극을 모두 품은 상남자다. 

아비를 때려 눕히기도 하지만 시를 읊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약혼녀를 배반하고 정부랑 놀아나는 개막장 욕정의 노예같지만

종국에는 만사에 대한, 만인에 대한 죄를 인정하고

갱생의 길로 나아가는 영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드미트리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마음은 이토록 심원하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 같다. 


하지만 죄없는 아이들의 고통은 어떡하란 말이니 (이반의 경우)

이 작품의 종합적 주인공은 당연히 알료샤이겠지만, 도드라지는 사상을 기준으로 꼽는다면

단언코 이반일 것이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은 허용된다' 라는 문장으로 요약되는 이반의 사상은 이성적이고 지적인 냄새를 풍기지만

뜻밖에도 이반이 알료샤에게 풀어놓는 고민을 들어보면 순수하고 맑은 24살 짜리 청년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반은 무신론이라기보다는 반(反)신론의 사상을 품고 있는데 이 사상의 출발점은 '죄없는 존재들의 고통'인 셈이다.

안경낀 지적 섹시 이미지의 내면엔 타인의 고통을 놓치지 않는 감수성을 지닌 멋진 청년이다. 

내면의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탓에 정신분열을 겪고, 죄의식에 악마를 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도 삶의 질문을 성실하게 밀고 나간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덧. 독서 토론과 각종 독후감을 통해 30명 이상의 독자에게 '자신과 닮은 인물'을 꼽으라고 했을 때

다들 이반을 꼽던데 난 도저히 이반의 반의 반도 닮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우리 마음 한켠에는 이반처럼 

되고 싶은 욕구가 있나 보다. (오른팔에 봉인된 흑염룡같은...)


삶을 그것의 의미보다 더욱 사랑해야 해요 (알료샤의 경우)

드미트리와 이반에 비해 안정된 마음과 신실한 믿음을 가진 20살의 앳된 청년 알료샤.

약관의 나이지만 성숙하고 흐트러짐을 쉬이 보이지 않는다.

형과 아버지 사이를 조율할 정도로 선하면서도 둘째 형의 분열을 일찌감치 눈치챌 정도로 지혜롭다.  

사랑, 선, 구원 등 좋은 이미지는 다 갖고 있는 청년같지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으려면 멀었다.

작가는 알료샤를 강하게 키운다.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첫째 형이 시베리아로 끌려가고, 둘째 형이 미쳐버리고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조시마 장로는 곁을 떠난다.

잇따른 고통에 나락까지 떨어진 알료샤가 요부중의 요부였던 그루쉔카를 만나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그의 은인 조시마 장로의 유언과도 일치한다(고뇌 속에서 행복을 찾도록 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