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딩 때부터 꽤 오랫동안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었거든.
당연히 사회 참여적인 성격의 문학 작품들이 좋다고 믿고 살았어.
근데 최근 2~3년 사이에 작가를 구체적으로 지망하게 되면서
이런 생각이 바뀌었음.
그 이유는 뭐 각설하고.
특정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문학은 별로라고 밑에 쓴 갤러처럼
나도 이제 문학은 문학의 논리에 따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함.
이걸 어릴 때는 세상에 대한 협소한 관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정치적인 작품보단 더 확장된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해주지 않나 싶음, 지금은.
이렇게 생각이 바뀌고 나니까
한국소설을 읽고 있으면
거의 대부분이 특정 정파에 친화적인 소설을 쓴다는 느낌이야.
순문학의 대표 주자인 한강이나 김연수, 황정은, 김애란. 최근에는 김영하 같은 작가들도.
작중에서 비판하려고 하는 '나쁜 세계'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특정 정당에서 악마화하는 집단이나
그런 생각이 가진 사람들에게 절망하면서 공감을 유도하려는 느낌이 많이 들어.
물론 작품 자체는 다 좋고, 술술 잘 읽힘.
내가 오랫동안 정치병 환자로 살아서 그런지, 지금도 정치병 환자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왜 한국문학은 이렇게 읽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보르헤스 영향 많이 받았다는 박형서 같은 작가들 작품 읽을 때도 그래.
문제는 내가 소설 쓸 때도
그런 정치적인 해석을 의식하게 된다는 거야, 자꾸.
그렇다고 내가 보르헤스 스타일의 소설은 쓰고 싶지도 않고, 쓸 수도 없음.
밑에 정치와 문학의 관계에 관해 글 쓴 갤러는
문학에 집중한 작가로 보르헤스를 얘기했는데,
나는 보르헤스를 한창 진보 성향이던 어릴 때 읽어서 그랬는지
그렇게 막 재밌진 않았었거든.
이게 절실한 내 삶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모르겠고 그랬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다 구닥다리들이야.
셰익스피어나 체홉, 유진 오닐,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 같은..
물론 한국소설 작가들도 다 이런 작가들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정파적인 주석이 붙은 느낌이야.
그렇다고 내가 체홉이나 플로베르 같은 걸 쓴다고 해도
반페미니즘처럼 보일까 두렵고..
헤밍웨이 초기 단편들처럼 성장에 관해 쓰는 건 넘 올드하고.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
차라리 진보 성향 가지고 있었을 때는
이명박근혜 같은 꼰대 넘들 다 엿먹어라, 하는 걸 우아하게 쓰면 되겠군 ㅋ
하는 거라도 있었는데 말이지.
진보냐 보수냐 떠나서
인간의 패착이나 모순에 대해 쓰고 싶은데 반동으로 해석될까봐 무섭고.
사실 모든 글쓰기는 정치적이야. 조지오웰이 그랬지. 이 정치적인 글쓰기 즉 문학은 차라리 모두까기식의 비판이 나오는게 바람직함.
해석은 둘째 문제고 본인이 뭘 쓰고싶어하는지부터 찾아야함
정치를 단순한 당파싸움으로 이해할게 아니라 복합적인 사회체계적 연관이라 생각하면, 당파성정치와 맞닿게 쓰지 않아도 어떻게든 드러나는 소설은 많다고 봅니다. 진짜 '정치적인 소설가'는 카프카, 오웰, 마르케스, 살만 루슈디, 디킨스, 귄터 그라스, 뭐 발자크야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소설가들이라 생각해요. 말씀하신 예로 생각하면, 이명박근혜 까는 글쓰기가 아니라 이명박근혜 같은 부류 사람들의 범죄행위가 가능하게 된, 일상 속에도 스며있는 사회구조적 병폐를 체험적으로 드러내는 글쓰기라고 해야 하겠네요. 완전히 맞는 예는 아니지만.
ㄴ 알겠어. 참 어렵다.. 내가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정파적으로 해석했고, 그렇게 해석이 되니까.. 나는 또 거기에 대한 반론의 뜻에서 소설을 써야 할 것 같고. 그런데 그건 소설 내적인 논리에서 단지 쓰레기 같은 작품이 되는 셈이고. 정파성에서 거리를 두려고 할수록 한번 길이 잘못 잡혀서인지 계속 그 근처를 맴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도 망치고, 문학도 망치는 건데.
그러고보면 보르헤스도 상당히 진보적 정치관을 탑재한 소설가라고 할 수 있죠. 그 사람이 쓰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이고 비연속적인 역사관이 이후 68운동을 일으키고 그 세대의 사상을 주도한 푸코나 들뢰즈의 사고와 상당히 연관 있으니까요.
ㄴ 그 정돈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쓴 소설을 내가 읽어보면 그 정도로 보일 때도 있긴 함. 보르헤스나 이런 사람도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야 있겠지만, 창작 동기도 그럴까. 아니야.. 내가 괜한 걸 물어본 것 같다.
난 그냥.. 쓰면서 뭐 하나는 잡고 가야 할 것 같은데, 너무 이런저런 해석이나 생각 들이 머릿속을 휘저어놓으니까.. 원래 내가 뭘 얘기하고 싶었는지 잊게 돼. 이게 작가들이 흔히 말하는, "내가 쓴 게 아니라, 이야기가 그렇게 썼다." 이런 경지는 절대 아니고. 그냥 혼자 헤매는 것 같은데.. 한국소설 작가들은 그렇게 소설 쓰면서 잡고 가는 줄기가, 정치적 목적이 (내가 읽기엔) 뚜렷한 것 같아서 비교적 쉽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그런 게 없으니까 더 헤매는 게 아닐까 하는 괴로움 같은 거였어. 근데 내가 풀 문제지.
그렇다고 한국 작가들의 소설이 단순하게 읽힌다는 말은 아냐. 복합적인 맥락을 담고 있는 걸 나도 알고 있어. 나도 그렇게 쓰려고 한 건데, 막상 내가 쓴 걸 보면 좋은 건 다 섞어 놓은 예쁜 쓰레기가 되어 있다는 거지. 어떤 걸 줄기로 잡아야 할지 아직도 모르는 것 같아. 여하튼 답변 달아준 갤러들 고마워.
학자나 비평가는 항상 개념을 구분하고 이름 붙이는걸 좋아하지. 진보니 보수니, 모더니즘이니 포스트 모더니즘이니, 페미니즘이니 이퀄리즘이니. 근데 그 모든 해석들이 과연 살아가는데 큰 의미가 있는걸까? 모두가 진보주의를 표방한다면 세상은 항상 발전할까? 모두가 페미니스트라면 양성은 평등하게 대우받을까?
사실 삶과 그런 학문적 해석들은 전혀 관계없어. 어떤 체계도 사조도 내부에 모순을 품지 않은건 없으니까. 학문이 아무리 발전해도 완전한 삶은 이룰 수 없어. 비평가가 되고 싶다면 현상을 해석하는 개념들을 공부하렴. 하지만 소설가가 되고 싶다면 모든 해석이란건 잊어버리는게 좋을거야.
좀 핀트가 어긋나긴 했는데,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사건과 주장들은 관심을 가지되,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주장하고 해석하는 모든 비평은 버리렴. 대신 네가 생각하는 주장을 써.
중요한 건 네가 (문학관이)성장했다는거야.. 계속 이문제를 고민하고 부딪치다 보면 더 발전해갈거고 그러면서 네 답을 찾아가겠지.조급해하지말고.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계속 고민해봐.
사람이 정치에서 떠날 수 없고 반대로 정치가 다 사람의 문제임. 문학이 완전히 정치적으로 무관계하기를 바라기도 어렵다. 다만 특정 방향의 정치적 편향성을 지닌 채 선동의 의도로 쓴 문학작품을 보았을 때 좆같은 건 부정할 수 없지.
근데 혹시 그건 그 정치적 의도를 제대로 포장할 줄도 모르는 서툰 작가가 깊이도 떨어지는 철학을 독자에게 쑤셔박으려고 해서 그런 건 아닐까. 독자로서는 시바 존만이가 지보다 못한 놈 어딨다고 좆도 모르는 게 선동을 하려고 들어 내가 병신으로 보이냐 하고 느끼게 되는 거. 근본적으로 정치 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지식이, 사유가 너무 얕아서가 아니려나 함.
ㄴ 그러게. 더 깊은 차원까지 들어가서 내가 이야기의 세계를 축조해야 하는 것 같아. 대체 작가들은 얼마나 깊게 들어가서 생각을 하는 걸까. 아직 습작생인 나도 나름대로 깊게 생각해보고 세계를 꾸며냈다고 생각했는데 읽어 보면 쓰레기인 걸 보면.. 기성 작가들은 정말 내 눈엔 재능이 있거나 피 나는 노력쟁이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작품의 정치성을 따지기
전에 그 작품 세계의 짱짱함에 대해 경의감을 갖게 된다. 나도 그걸 먼저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 괜히 한국 작가들의 정치적 편향성을 탓하기보다는. 조언들 전부 고마워!! 열심히 쓸게.
누구보다도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카뮈 같은 작가의 문학 작품들을 살펴보면 실질적으로 정치성은 거의 없는데 그 이유랑 비슷한 맥락같아.
단순히 정치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수준이 낮아서 문제인 거임. 현대 문학가들은 철학적 문제를 너무 쉽게 단정 짓고 글을 쓰는 경향이 있음. 키에르케고어나 니체, 베버 이런 놈들처럼 글을 쓰면 정치적이어도 상관 없음. 글고 셰익스피어 이런 놈도 순문학이라고 하긴 어려워. 수준이 좆나 높아서 순문학을 잡아 먹는 거지. 먼저 문학의 순수성이 무엇일까를 고민해봐
너는 그냥 글 쓰지 마. 구라고 ㅋ 그까짓 거 고민하지 마. 글은 고민해서 쓰는 게 아니야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