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mage.php?no=24b0d769e1d32ca73dec83fa11d028313e457d3f472465ed713dd3021d932a443c5aafd4ef6741c9ae7cbea4f5a8d0d240e1632d46a02dec82a1d70bfda97b98a14bbfa0f3bbb2d11ad191d6b5adfa71ef8c33fdb715



2월 21일자 독후감.


김사과, 0 이하의 날들, 창비, 2016.
처음으로 술을 마시고 쓰는 독후감이다. 근데 그게 하필이면 김사과의 책이라니. 광기의 극단을 첨예히 달리는 작가의 책이라니. 정말이지 아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김사과의 글은 산문에서도 절망의 종말론적 세계관을 어김없이 발휘한다. 그렇기에 불편하다. 더 이상 우리 세대에 희망은 없다는 얘기를 약간의 적의도 악의도 없이 설파하는 그에게 뭐라 말할 수 있겠는가. 작가에게 미안하지만 속된 말로 얘기하자면 ‘ㅈ빠지게 일하고 나서 유튜브로 위안을 삼는 영상이 마찬가지로 ㅈ빠지게 일하는 아이돌’인 이 세계에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파멸을 거부하지 않으며 희망을 노래하는 이들을 비웃으며 냉소를 뿜는 것. 그것이 이 세상에 최근 태어난 이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윤리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생산력이 남들보다 떨어지면 경제가 망해 국민들이 힘들어한다. 하지만 생산력의 강화는 환경오염을 촉발해 인류의 멸망을 가속화한다. 이 두 가지 모순에 그 누가 확실한 명답을 내놓을 수 있는가? 전부 산업혁명 전으로 돌아가 인류의 95퍼센트가 1차 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결국 우리네 세상은 서로 폭탄 넘기기 게임 중이다. 솔직한 말로 지금 태어난 세대가 내 세대를 향해 온갖 욕지거리를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김사과의 이와 같은 종말론적 세계관은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약간의 희망을 보인다. 나는 이것이 작가의 진심인지 아리송하지만 정말로 그것이 그의 의도였다면 아마 최소한의 죄책감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을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여태 읽어 온 그의 글들을 생각하자면 그가 괜히 낙관을 펼친 이유는 그것이 유일하다. 그렇다면 김사과는 더더욱 나쁜 사람이다. 혹은 이러한 악평을 다 예상한 것이 아닐까. 그는 위악으로 보이는 위선을 즐기니까. 그만큼 변태적이고 이 사회에서 별종이니깐. 하지만 어떡해. 그게 그의 매력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