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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외교관으로 지명됩니다.

극작가가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새로 나온 소설을 사려고 건설 노동자들이 사무장들과 같이 줄을 섭니다.

어른들이 전사 원숭이들, 애꾸눈 거인,

그리고 풍차와 싸우는 미친 기사들의 이야기 속에서 길잡이와 지적인 도전을 찾습니다.

독해력은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여겨집니다.





……글쎄, 어디 다른 나라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 이 나라는 아닙니다.

미국에서 상상력이란 보통 TV가 고장 났을 때나 쓸모 있을지 모르는 뭔가로 간주되거든요.

시와 희곡은 실용 정치와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소설은 학생과 주부, 그리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읽는 겁니다.

판타지는 어린아이와 모자란 사람들이나 보는 것이고요.

독해력이란 사용 설명서를 읽을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상상력이 인류가 가진 가장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마주 보는 이 엄지손가락의 유용성을 넘어설 정도죠.

저는 엄지손가락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지만, 상상력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제게 맞장구치는 목소리들이 들리네요.

“맞아요, 맞아!” 이렇게 외치는 목소리요.

“창의적인 상상력이야말로 사업에 굉장한 플러스죠! 우린 창의력을 중시합니다. 보상도 하고!”

시장에서 ‘창의력’이라는 말은 <더 큰 이익을 낳는 실용 전략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내놓는다>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이런 격하가 하도 오래 이어지다 보니 ‘창의적’이라는 말이 더 떨어질 데도 없어졌어요.

저는 이제 창의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요.

자본가와 학자들이 좋을 대로 악용하는 데 손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상상력이란 말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상상력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에요.

이윤 추구의 어휘들 사이에 상상력이 낄 자리는 없습니다.

상상력은 무기가 아닙니다.

모든 무기가 상상력에서 비롯하고, 다른 모든 도구도 마찬가지지만 말입니다.

상상력은 정신의 필수 도구이고 생각의 본질적인 방식이며, 사람이 되고 사람으로 남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입니다.





도구라면 다 그렇듯이 우리는 상상력을 사용하도록 배워야 하고, 사용하는 방법 또한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은 신체와 지성, 언어 능력처럼 상상력을 태어날 때 부터 가지고 있어요.

이것들 모두가 인간다움에 필수적인 요소들이고, 사용법과 잘 사용할 방법을 배워야 하지요.

그런 가르침과 훈련, 연습은 유아기에 시작해서 평생 계속해야 해요.

어린 사람들은 성장하기 위해서, 건강해지기 위해서,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아니면 즐거움을 위해서 몸이나 정신의 기본 기술들을 훈련해야 하지요.

상상력도 훈련해야 합니다. 정신이 살아 있는 한 계속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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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발 제목은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르 귄 에세이는 주장이 많이 래디컬해서 독갤과는 안맞을거임

"아메리카 심상정" // "럭키 듀나"

이런말 나올거같음

그래도 몇몇 글은 딱 독붕이 감성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