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자 독후감.
변정수, 한판 붙자, 맞춤법!, 뿌리와이파리, 2019.
넷상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빌런’ 중 하나는 맞춤법 빌런이다. “보고서나 레포트도 아니고 무슨 평소에 맞춤법을 일일이 신경쓰냐”는 얘기도 있지만 반대로 “한국 사람이면 안, 않/되, 돼 정도는 구분합시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는 계속해서 맞춤법을 틀리는 애인 때문에 정이 떨어졌다는 썰도 있다. 상반된 양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과 별개로 많은 사람들이 한글 맞춤법을 자주 틀리고 또 어려워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한글 맞춤법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맞춤법 규정이 어렵기 때문에? 실제 언어생활과 동떨어져 있기에? 저자는 어문 규범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그 취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그의 친절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맞춤법 규정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그런대로 간단하고 생각보다 실제 언어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맞춤법이 어렵다고 느끼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의 주장을 간단히 말하자면 책을 안 읽어서다. 눈에 익으면 자연스레 틀린 표현들이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꽃이 예쁘다’라는 문장에서 ‘꽃이’는 분명 ‘꼬치’라고 소리나지만 우리 모두 ‘꽃이’라고 쓴다. 이것은 왜일까. 규범에 따르자면 〈한글 맞춤법〉 제 14항 ‘체언은 조사와 구별하여 적는다.’에 의해서 ‘꽃이’라고 써야한다. 하지만 우리가 〈한글 맞춤법〉 제 14항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적는가? 그냥 평생 살면서 봐온 글들에서 ‘꽃이’라고 써왔으니깐 당연히 그것이 ‘옳은 것’이라 여기고 따라 쓸 뿐이다.
책에 있는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는 ‘갇히다’를 ‘갖히다’라 잘못 쓰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데 이 경우 왜 받침이 ㅈ이 아니라 ㄷ인지 명료하게 근거를 제시하는 규정이 〈한글 맞춤법〉에 없다. 즉 한글 맞춤법 규정집을 달달 외었더라도 ‘갇히다’가 왜 ㄷ 받침인지 논리적으로 알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저자는 ‘갖히다’라 쓴 글을 보면 ‘맞춤법 공부 좀 하지’라는 생각이 아니라 ‘평소에 얼마나 책을 안 읽었으면’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픈 맞춤법에 대한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규범이 이러저러하게 규정하고 있으니, 꼼꼼히 숙지해서 반드시 지키자’가 아니라, ‘규범이 이러저러하게 규정하고는 있지만 그 취지를 이해한다면 지나치게 주눅들 필요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목표를 비단 맞춤법이 아닌 우리네 인생 전체에 적용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여러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분명 규범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규범만으로 재단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는 종종 규범 바깥을 상상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한 노력의 과정에서 가장 중한 것은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접하는 것이다. 다양한 이들의 말에 진정으로 귀 기울인다면 설사 규범에 무지하더라도 규범을 위반하는 일은 드물 테니 말이다. 맞춤법이든, 인생이든 말이다.
30년 경력의 편집자인 저자의 출판교열 특강을 다룬 마지막 장까지 다 읽으니 한 생각이 떠올랐다. 군대에서 읽었던 《지리의 힘》이라는 책에서 중국과 대만을 얘기하다가 대만의 수교국에 스위스를 써놓았더라. 암만 생각해도 스위스씩이나 되는 국가가 그럴 리가 싶어서 다음 날 싸지방에 가서 검색을 해보니 눈 씻고 찾아봐도 스위스는 대만의 수교국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만의 수교국 목록을 뒤져보다가 스와질랜드가 발견하고는 그제서야 의문점이 해결됐다. 아마 역자가 스와질랜드를 스위츨랜드로 보고 그리 번역했나보다. 역자의 자질도 자질이지만 편집자 역시도 읽다가 나처럼 엥? 스위스가 대만 수교국이라고? 라는 생각을 안 해봤을까... 아니면 번역서는 편집자가 따로 없는 건가싶다. 쨌든 뭐 그런 기억이 떠올랐다.
오 이거 재밌겠다 혹시 두꺼운 책이야? 얇으면 츄라이해봐야지 - dc App
400p 안 됨
한국어시험 보기 전에 이 책 읽어볼걸 싶다ㅋㅋ 소개 고맙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