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viewimage.php?id=3fb8d122ecdc3f&no=24b0d769e1d32ca73dec83fa11d028313e457d3f472465ed713dd2021f942a44e0976f5093769444d9597bddc8fd4ad99b3d5923c65e555f25ac95b94b1fdce9305a422be9c55be1cddab4fa82338484314beeee54131b972e

혁명은 때가 왔을 때 이뤄지는 것이며

혁명을 유지시키는 것은 참으로 고생스러운 것이고

혁명을 완성하는 건 말할 것도 없는 희생이다

그런 달 세계의 혁명이었다


한줄요약
달 세계의 혁명, 분화된 매력, 모든 게 괜찮은 수작


3대 SF작가 중 하나인 하인라인의 소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다. 이로써 나는 아시모프와 클라크, 하인라인까지 다 읽은 셈이다. 물론 각자 대표작들만 읽은 셈이라 자세히 논하려면 더 두루두루 읽어야겠다만...... 그 얘기는 언젠가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자. 어쨌건 3대 SF작가를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한 만족감을 줬다. 스포일러라고 할 만한 게 없긴 하지만 일단 줄거리와 내용을 다루니 유의하자.

전체적인 감상부터 말하자면, 굉장히 애매했다. 뭐가 애매했냐면, 읽으면서 나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아시모프와 클라크를 떠올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둘이 비교군이 되면서(그리고 마션의 앤디 위어도 어쩌다보니 비교군으로 떠올랐다) 감상 자체가 일종의 비교가 됐는데...... 그 결과가 참으로 애매하다.

내가 작가별 등급표를 매기자고 생각한 것도 하인라인 때문이다. 모든 게 괜찮았고, 나쁘지 않았는데, 막상 이걸 명작이나 정말 재밌다고 말하기엔 어딘가 마음 한구석에서 걸렸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이 좋다고 하면 거기의 상위호환이 떠올라 정말 좋다고 말하기 애매해지는 그런 상황에 직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수작 이상이라는 점이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은 크게 3부로 구성돼 있고, 3부가 모두 "달 세계의 혁명"이라는 커다란 주제와 서사의 흐름 안에 속해있다. 그리고 그걸 다시 부의 내용을 요약해 정리하자면 이렇게 나온다.

1부(생각하는 컴퓨터): 혁명 완수를 위한 준비, 그리고 혁명, 곧 혁명극
2부(무장한 천민들): 혁명 이후 혁명을 유지시키기 위한 정치극
3부(탄스탄플!): 혁명을 완성하기 위한 전쟁극(독립전쟁)

그렇다. 이 작품은 각 부마다 그 개성이 현저하게 다르고, 그에 따라 재미의 성격도 완전히 다르다. 좋게 말하면 3색의 매력을 하나의 서사에 묶어낸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이 중에 취향에 안 맞는 게 있다면 지루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물론 하인라인은 결코 나쁘거나 게으른 작가가 아니다. 지루해 할 일이 있다면 그건 정말로 취향의 문제지, 글을 못 썼기 때문은 아니다.

1부 혁명극에서는 주인공 마누엘, 데 라 세즈 교수, 와이오밍, 멈, 그레그, 생각하는 슈퍼컴퓨터 마이크, 스튜어드 등 정말 많은 인물이 나오고, 주조연 가릴 것 없이 개성 넘쳐서 기억하는데 어렵지 않다. 1부는 또한 소설 도입부로서 달 세계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집중하기 때문에 하인라인이 생각한 달 세계의 풍경과 문화를 감상할 수 있다.

물론 가계 결혼이나 여성상위문화(정확히는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 여성이 주도권을 잡는다는 얘기다. 달은 여자가 적어서 그렇다.) 등등에 있어서 달 세계가 정말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어쨌건 그런 요소들이 달 세계에 대한 나름의 고증과 개연성을 가지는 건 분명하다.

즉 1부의 재미의 성격은 그야말로 "알아가는 재미"가 있고, 또 혁명에 휘말리게 된 마누엘이 슈퍼컴퓨터 마이크를 활용해가며 혁명을 구체화시키는 "혁명극으로서의 재미"가 있다. 이 과정에서 혁명에 대한 교수의 의견과 통찰도 꽤 눈여겨 볼 만하다.(이건 직접 확인하는 걸 추천한다.)

1부의 끝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총독부가 뒤집힌 순간, 2부부터는 혁명극이 끝나고 정치극으로 돌입한다. 이 혁명을 지구에게 인정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로 인정 받는다는 건 아니었고...... 그냥 정치극의 연속이다. 혹여나 창작가가 꿈인 사람이 있다면, 정치물 쓸 때 2부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정도로 재미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고, 또 그만큼 잘 써냈다.

다만 1부에서 드러난 인물의 개성이 2부로 넘어가면서 흐려진다는 게 단점이다. 물론 주인공이나 마이크, 교수 같은 주연급 인물의 개성은 변화하거나 발전하거나 유지되는 축에 속하는데, 다른 조연들은 퇴색되거나 흐려지거나 사라져버린다. 3부로 넘어가면 더 심각해진다. 그때엔 정말로 인물의 개성이라고 말할 만한 게 없어지기 때문이다.

바꿔말하면 1부에선 서사보다는 서사 외의 요소로 재미와 흥미를 잡으려 했다면, 뒤로 갈수록 서사의 비중이 커지면서 그 외의 요소를 대체한다고 보면 된다. 좋게 말하면 독자의 흥미를 다양하게 붙든다고 볼 수 있지만, 재미의 방향을 잡아내지 못하면 금방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특히 이게 혁명 완수가 끝이 아니라, 그걸 끝으로 완전히 독립하기까지 이어가기 때문에 서사의 흐름도 굉장히 긴 편이다.

3부는 독립전쟁이라 했지만 그렇게 화려하게 치고박고 싸우는 건 아니다. 다만 그 긴박함을 살려냈단 점에서 하인라인은 정말 다재다능하게 잘 쓴다고 할 수 있다. 정말 특출나게 잘 쓴다고 느끼질 못해서 그렇지, 이정도면 만능작가라 봐도 되지 않겠나 싶다. 거기에 결말부는 분명 나름 행복하고 유쾌하게 끝을 맺었지만, 어딘가 안타까운 구석도 존재한다. 그 구석에 대해선 약간 찝찝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다.

정리하자면 이 작품은 정말 많은 매력이 적절하게 살아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걸 심도 있게 다루지는 않는다. 뒷편의 옮긴이의 말에서 하인라인을 클라크나 아시모프와 달리 일반인에게도 두루두루 사랑받는 작가라고 소개했는데, 그 말은 바꿔말해 장르로서의 깊이가 다른 작품에 비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말대로 이 작품에서 어떤 깊은 깊이를 느끼기 쉽지 않다. 그럴 여지를 남겨둔 구석이 종종 보였지만, 결코 깊게 파지 않은 그런 느낌이다.

그러니 내게는 차라리 유쾌함으로는 아시모프가 더 나았고, SF로서의 재미는 클라크가 더 낫다고 느꼈다. 물론 이런 혁명 서사를 아시모프나 클라크가 쓸 것 같진 않았다. 둘은 인간 자체나 인간을 둘러싼 것에 집중하는 편은 아니었으니 말이다.(혹시나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라면 정정해주길 바란다.) 그런 점에서 하인라인이 둘과 차이점을 가지는 점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하인라인의 소설은 SF이지만, 결국 사람 사는 얘기이기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극적인 재미는 없어서 다소 실망하고 김 빠진 감은 있어도, 그것은 다른 3대 SF작가로부터 비롯된 거대한 기대였을 뿐이다. 충분히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수 있고, 또 하인라인의 다른 작품도 읽어볼 만하다. 다만 그걸 간절하게 읽고싶지 않을 뿐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때가 돼서 읽을 생각이다. 나는 하인라인보단 아시모프나 클라크가 더 좋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작품에서 유지되는 분위기나 내용, 결말로 볼 때 제목이 왜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작품의 단점을 꼽으라 하면 유일하게 "제목값 못함"이라고 짓고 싶다. 물론 달의 환경 자체가 굉장히 무자비하고, 1부 혁명 전 환경은 무자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목이 내용을 아우르거나 관통하거나 대표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제목은 좋게 짓는데 좀 더 연결되게 지어줬으면 했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등급
필력: A
독서 과정에서 느끼는 총체적인 평가, 곧 작품 자체에 대한 인상. 나머지 6개의 기준을 모두 합친 또 하나의 전체적인 기준.
가독성: A+
문장을 읽을 때 글이 얼마나 잘 읽히고 술술 넘어가느냐를 기준으로 삼음. 본인 어휘력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으니 주의.
인물: A-
주인공을 비롯한 각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개성, 매력, 혹은 대사 센스, 유머까지, 곧 작중 인물을 얼마나 잘 살려내고 잘 써내고 잘 활용하느냐에 대한 기준.
설정: A+
장르별로 기준의 정의가 다르게 작용하겠지만, 공통적으로는 배경되는 시공간과 전후상황 등의 설정들이 가지는 매력과 활용도가 기준.
분위기: B+
말 그대로 작품에 깔리는 분위기. 전체적인 분위기, 각 파트별 분위기, 분위기 전환 등의 '장면 인상' 위주의 기준.
구성: A-
책 자체의 구성(목차), 문단 구성, 사건 구성, 사건의 흐름, 배치, 플롯으로 퉁칠 수 있는 부분까지. 소설의 골격에 대한 기준.
문장: A
필력이 소설이라는 군집적이고 총체적인 문장의 인상이라면, 문장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부분을 가리키며, 흔히 부르는 묘사도 여기에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