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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분량(율리시스)만큼 읽으신 분들은 각자 감상을 얘기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감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토의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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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독회에 자체에 대해 몇 마디.

누가 던져본 거 재밌겠다는 생각에 시작해 본 거였는데 어느새 마지막까지 왔네..... 생각도 못 했다. 사실 중간에 다 포기하고 나 혼자만 남아서 자축하는 상상했는데 끝까지 따라와 준 독붕이들 고맙고 수고했음.

사실 독회나 토의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서로 진지한 얘기 보다는 가벼운 감상 댓글로 몇 마디 하는 정도에서 끝났는데 주최자 임에도 뭔가 잘 끌어주지 못한 거 같아서 미안하다는 생각도 든다 ㅠㅠ 옆에 다른 독회들은 주최자가 다들 잘알이라 수준 높던데 여기는 완독에 만족하는 걸로.....

아무튼 이런 기회에 악명 높은 책 읽게 된게 좋은 경험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끝까지 함께해준 독붕이들은 이번 달, 이번 주 안으로 작은 기프티콘이라도 보내 줄 생각임. 이제 다들 자신감 가지고 어디가서 율리시스 읽은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하고 다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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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부터 근대 소설이 출범한 이후, 산문 예술은 중대한 변화를 하나 겪었는데 그것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장면을 서술하는 방식으로의 변화임. 이로 인해 소설이란, 작가가 어떤 담화를 전달한다는 느낌보다는, 한 발 물러서 장면들에 대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생각이 많이 퍼지게 됐고, 이후 19세기와 20세기의 가장 핵심적인 소설 형식으로 굳어지게 됨.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프루스트와 토마스 만의 작품들과 더불어 그런 형식의 가장 극단적이면서도 대표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장면은 더 이상 하나의 현실적인 삶의 부분, 우리 눈으로 관찰 가능한 영역을 넘어, 추상적인 의식 그 자체를 담을 수 있게 되었음. 인간의 근본을 표현하기 위해 내면 심리의 극단을 파헤치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소설이 되는 거지.

모든 소설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짐.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이루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인간임을 보여주는가? 어떤 소설가들은 중대한 사건에서 이성의 극단까지 나아가며 광기와 감정 과잉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인간으로 규정했고, 어떤 소설가들은 사건이 없는 일상의 한 부분에서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사소한 표현들을 인간의 한 부분으로 묘사함. 좀 마이너하지만, 인간의 행동이 멈추는 그 시점, 시간적으로 앞이 아닌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아가는 영역을 인간으로 규정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트리스트럼 섄디 읽으쉴?

조이스는 현재 그 자체를 탁월하게 묘사한 소설가임. 우리에게 한 순간에 불과한 그 찰나를, 조이스는 18장에 걸친 다양한 도구들을 통해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며, 때론 더블린 시의 가장 높은 곳에서, 때론 가장 깊은 인간의 마음에서, 인간을 존재케 하는 의식과 자아를 보여줌.

이런 세세한 묘사는, 《일리아스》와 더불어 인류의 행동을 규정한 가장 근본적인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그 형식의 모방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이란 자신의 귀향을 잊지 못한다는 점, 따뜻한 고향과 가정이 있다는 점, 자신을 계승하는 당돌한 핏줄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귀향길이란 목숨을 걸며 세계와 맞서 싸워야 하는 투쟁이라는 점을 호메로스는 서사시로 노래하며 표현했음.

이러한 귀향길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20세기 인간의 입장에서 다시 서술한 것이 《율리시스》라는 소설이다. 전지구적인 투쟁은 작은 도시의 일상으로, 자신을 계승하는 핏줄은 정신적으로 합치되기도 대립하기도 하는 낯선 젊은이로, 그리고 그리운 고향과 가정은 안심하고 머물 수 없으면서도 끝내 돌아가게 되는 하나의 잊을 수 없는 목적지로 변화함.

신화는 소시민의 삶으로, 오늘날 다시 그 모습을 어중간하게 머금은 채 부활했고, 그런 삶은 그 전까지 어떤 소설가도 함부로 포착하지 않았던, 잡히지 않는 희미한 순간들 속에서 문자로 표현되었다. 현대는 삶이 덫이 되어버린 카프카의 세계이고, 그 누구도 자신의 자아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존재로 살아가는 중임. 그럼에도, 소설이 한 번 포착한 그 진실은 인간이란 존재가 근본부터 달라지지 않는 이상 포기하기 힘든 엄연한 사실이 되었음.

《율리시스》는 그 자체로 보면 어떤 미친 놈이 써재낀 헛소리 모음집에 불과할지도 모름. 하지만 거대한 소설의 흐름들 속에 이 작품이 위치하는 순간, 그 자리는 가장 빛나는 성좌 중 하나가 되며 20세기의 초반이자 근대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누군가는 과시 욕구에 불과하다고, 누군가는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전공도 아닌데다 하나하나 분석하지도 않으면 무의미라고 폄훼하기도 했었지. 하지만 이런 작품을 눈 앞에 두고 익숙함으로 도망치는 것보단, 호기심을 가지고 펼쳐본 뒤 천천히라도 읽어본다면 자신의 지평이 조금이라도 넓어지는 맛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얘기하 듯 독서의 이유가 즐거움이라면, 새로움을 경험하고 깨닫는 것도 아주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뭐 결국 걍 평소에 하던 말들 정리해 둔 거 마냥 되부렀네. 독갤 전체가 율리시스를 읽는 날이 될 때까지 독갤이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이상으로 독서 갤러리 율리시스 독회는 오늘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