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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슬립』-『안녕 내 사랑』-『하이 윈도』-『호수의 연인』-『리틀 시스터』-『기나긴 이별』-『원점회귀』
남성미, 궐련, 리볼버, 코트, 멋. 합치면? 하드보일드. 난 사실 하드보일드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레이먼드 챈들러가 창조한 필립 말로라는 인물이 하드보일드의 전형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그리고 말로의 ‘폼나는’ 행적을 그와 함께 발맞추어 걸어간 결과 왜 하드보일드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필립 말로는 챈들러가 생각하는 멋진 남자의 전형이었고, 심지어 말로의 평범한 사람으로의 추락마저도 더없이 아름다운 매력적인 인물이다.
사실 나는 추리 소설의 독후감을 지금껏 탐정이라는 묶음으로 취합해 썼고 이 독후감에서도 여지없이 필립 말로의 이름 아래에 챈들러의 7작품을 간단히 소개할 예정이지만, 이 소설은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여러 크고 작은 결격사유가 존재한다. 독자에게 충분한 추리 기회를 주는 일은 아무짝에도 상관없고 자신이 알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레이먼드 챈들러가 내 말을 들었다면 아마 상당히 기분나빠했겠지만, 엄밀히 말해 이 소설은 추리 소설의 정체성보다 하드보일드 소설로서의 정체성이 곱절은 강하다는 것을 그 고집 센 챈들러조차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 분명하다. 말로가 사건을 해결한다는 플롯은 일반적인 추리 소설과 같지만, 추리 소설에 충실한 형태는 플롯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속적인 많고 작은 사건들이 결국 큰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얼기설기 불안하게 엮여있는 모양새가 야기한 부실한 인과관계, 독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미쳐 주지 않는 긴박감, 복선보다는 반전과 결과에 힘이 실린 묘사 등 도저히 추리 소설이라는 분류 하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오히려, 이 추리 소설을 평가하는 여러 과목들만으로 필립 말로라는 인물과 작가인 레이먼드 챈들러를 논할 때 혹평이 튀어나오는 것을 참기가 힘들 정도로 추리에 몰두하는 보람도, 대리 만족도 전혀 느낄 수 없어 손톱만큼의 장점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그렇다면, 왜 챈들러와 말로는 오늘날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는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느 부분에 매료되었는가? 간단하다. 추리 소설이든 하드보일드 소설이든 그 이전의 문제이다. 그냥 글 자체를 잘 썼다. 책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모든 책에서 문체가 정말 좋다고 할 대목이 적어도 한군데씩은 존재한다. 챈들러의 강점은 단연 추리가 아닌 강인하고 선 굵은 문체다. 장르는 이 문체를 뒷받침하는 조력자에 불과하다. 말로를 보다 매력적이고 보다 강인하게 보일 수 있는. 하드보일드라는 장르를 등에 업은 말로는 보다 냉소적이고 보다 까칠하며 보다 의리 있게 보이며, 추리라는 장르는 말로를 보다 지적이고 세련되게 보이게 한다. 말로의 사색과 독백은 이 덕분에 확실한 멋이 되었다.
게다가 제목과 스토리의 앙상블이 정말 좋은데, 챈들러의 제목을 짓는 센스는 그 어떤 작가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 모든 실상을 깨우친 후 문득 책을 덮고 책 표지에 큼지막하게 적혀있는 제목을 읽을 때 느껴지는 소름은 챈들러만이 선사할 수 있는 쾌감이다. 출판 당시에는 다소 지엽적이거나 장르의 특징에 반한 것처럼 보이는 제목이라 그다지 좋은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나는 이 앙상블이야말로 챈들러가 다른 작가들과 확실한 강점을 지니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책을 덮고도, 책을 덮어야만 느껴지는 울림은 물리학적으로는 책 자체와 멀게 느껴지지만, 문학적으로는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챈들러는 증명했다.
말로는 대체적으로 냉소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시리즈가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존속되기도 했고 챈들러의 생활도 나름의 굴곡을 겪었기 때문에 작품마다의 말로의 모습도 어느 정도 다르게 비춰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말로의 데뷔작인 『빅 슬립』에서는 말로가 매우 냉소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면, 바로 다음 작품인 『안녕 내 사랑』부터는 다소 입이 풀려서 농담을 쉬지 않는 말로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식이다. 이 차이를, 내가 읽은 순서이자 출판 순서로 받은 인상을 간단히 설명하고 내가 바라보는 말로에 대한 결론을 마지막에 짧게 요약하는 식으로 독후감을 마무리하는 것이 쓰기도 쉽고, 아마 읽는 이들도 이해하기도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다. 바로 아래 단락은 말로의 행적을 구성하는 7작품들 중 내 개인적인 호감도이다.
기나긴 이별>호수의 연인≥하이 윈도>안녕 내 사랑>리틀 시스터>빅 슬립>원점회귀
빅 슬립: 말로가 다소 냉소적으로 등장하는 말로의 데뷔작, 하오체를 지속적으로 쓰는 말로와, 개성적인 장군의 두 딸 말고는 말투가 다 비슷비슷해 알아보기 힘든 편. 사실 말로와 비슷한 말투를 쓰는 인물(조 브로디)도 없지는 않다. 나는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는 다소 복잡한 플롯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이 작품의 경우 복잡한 플롯과 개성이 부족한 수많은 등장인물들, 그리고 이들의 복잡한 관계도 때문에 문맥을 여러 번 곱씹어야하는 수고스러움이 있었다. 나름 충실하게 진행 상황을 설명해주는 후속작들에 비해서 이런 설명이 따로 마련되어있지 않아 특히 정돈되지 못하고 난잡한 느낌을 심하게 준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문단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너무나도 어울려 아름답게까지 느껴진다. 사건의 열쇠와 너무나도 밀접한 문단이기 때문에 인용하지 않겠으나, 탐정 필립 말로의 팬이 된 사람들은 이 문단의 절대적인 영향력에 종속되었다고 쉽게 어림짐작될 정도로 매력적인 문단이다. 나는 하드보일드 특유의 뽐내는 말투와 “나는 문에 기대어 꿈꾸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등의 필요 이상의 자화자찬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으나, 『빅 슬립』의 막바지에서 이 문단을 마주하고서야 말로와 하드보일드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만큼 대단하고, 사건의 전반을 다시금 곱씹어볼 수 있는 문단이다.
안녕 내 사랑: 인디언, 흑인에 대한 저열한 묘사 등 다소 인종차별적이지만, 시대상을 고려하면 그 시대 평균적인 사람들 이상으로 인종차별적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전작에 비해 밝은 말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작에선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인 농담을 어느 상황에서도 쉬지 않고 이죽거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전작에 대한 피드백을 십분 고려했는지는 몰라도 전작보단 훨씬 등장인물들의 말투가 개성적이다. 흐름은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최면술사가 등장하는 등 『빅 슬립』만큼 난해하나, 이 작품부터는 대화를 통해 전작보다 훨씬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는 분량을 소설에 할애했다. 이번 작에도 “나는 멋진 인간이니까” 등의 자화자찬이 건재했으며 말로가 마약을 맞았을 때와, 고뇌할 때의 묘사가 아름다우면서도 섬세하다. 십 몇 층을 기어서 올라온, ‘희망’을 상징하는 분홍 벌레 등 상징물들도 눈에 띈다.
하이 윈도: 말로가 상당히 자상하고 옳지 않은 것에 이례적으로 분노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가 도드라지는 편이다. 시작하자마자 말로가 흑인 꼬마의 머리를 자상하게 쓰다듬어주면서, “너와 나는 다 같은 형제야”라고 이야기해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나는 책을 펴자마자 마주한 이 대목에 대해 전작의 말로가 다소 인종차별적이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한 묘사라고 생각했으나, 이 의뢰주의 집 앞에 서 있는 꼬마는 말로가 의뢰인의 집안을 전부 미친 사람들이라고 매도 대상으로 삼은 것에서 유일하게 “너만이 유일하게 이 집에서 정신병자가 아닌 것 같구나”라는 말을 들어 비하를 벗어난 것과 동시에, 실은 사람이 아닌 소년의 조각상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들보다야 이 장식물이 훨씬 낫다는 것을 의도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말로가 가장 중요한 증거를 우연히 발견하는 모습과, 마지막의 경관이 말로에게 털어놓는 고백은 특히 챈들러의 역량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별 상관은 없지만 말로가 가장 몸 성하게 돌아다닌 작품이기도 하다.
호수의 여인: 우리가 아는 추리소설과 가장 유사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나름 추리 소설에 보편적으로 쓰이는 요소가 차용되었고 시리즈 중에서는 말로가 합리적인 추리 과정을 밟는다고 볼만한 전개가 가장 많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독자가 추리할만한 요소는 아직까지도 너무나 적은 편이다. 『안녕 내 사랑』 이후부터는 나름 독자에게 친절한 태도로 진행 상황을 보고했고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인물은 드물어 독자에게 극도로 무신경해 보이는 『빅 슬립』 바로 다음으로 읽기 힘든 작품이었다. 잔잔한 호수 근처의 풍취와 마지막 추리 과정이 유독 아름답게 느껴졌다. 다른 작품들은 순간순간의 묘사가 아름다웠지만,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마지막 추리 과정 자체를 읽을 때 소름이 돋은 편이다.
리틀 시스터: 챈들러가 할리우드 생활을 마무리하고 직전에 출판한 장편 소설 『호수의 여인』 이후 6년만에 출간된 장편 소설. 극장의 독과점, 영화 업계의 피폐함과 저열한 업계 사람들 등 할리우드에 대한 묘사가 매우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과거의 말로는 냉소적이면서도 인간미를 갖추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냉소적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냉혹하기까지 하다. 마지막의 묘사는 자기 스스로의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 고뇌하고 발버둥을 치던 말로가 더러운 세상에 대한 저항과 고뇌를 멈춘 것 같아 묘한 씁쓸함을 야기한다. 다음 작품 『기나긴 이별』에서의 말로의 개심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기나긴 이별』을 읽기 전에 이 작품을 꼭 먼저 읽어볼 필요성을 느꼈다.
기나긴 이별: 개인적으로 지금까지의 필립 말로 시리즈에서 가장 전개가 난잡하지 않았다. 긴 분량 덕분에 상대적으로 이야기가 여유롭게 진행되었다. 강인하고 냉소적인 말로는 이제 없다. 그 역시 상처받는 인물이었다. 이례적인 연민과 헌신은 끝내 자신에게 따뜻함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최후반부의 내용은 사건과는 큰 연관성이 없는 내용이 많았지만, 챈들러의 할리우드 생활 이후 말로는 이성적인 면모 속에 묘하게 담긴 감상적인 면모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이 작품의 마지막을 마주하기 전의 말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감상적이었다. 작중 자신이 감상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이 김렛 한 잔이 아닌 돈을 추구했다면 땡전 한 푼 남지 않는 일에 뻗대 곤경을 겪지 않았을 것임을 단언한다. 그리고 이 노력은 보상받지 못했다. 돈을 추하게 쫓아다니지 않는 그가 돈을 명확히 나누어 타인과의 관계를 청산한 것은 감상적인 면모를 청산한 것과 같다. 물론 상대에게 돈을 더 주긴 했지만, 돈에 이끌리는 인물이 아니었던 말로는 이제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추가로, 처음으로 살인 사건에 얽히지 않는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말로의 모습이 묘사되었는데, 이 대목은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더더욱 부각시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원점회귀: 말로가 여자에게 치근덕거리기도 하고, 원나잇도 매우 가볍게 하는 등 전작에 이어 평범한 인간으로 굴러 떨어진 말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토리 자체는 짧아 정돈된 느낌을 주지만 전개가 매우 허술하고, 문체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별로인 느낌이 있다. 원나잇을 가볍게 하는 시시한 남자가 된 말로는 이제 10년 전의 그가 거부했던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필요하다면 법도 무시하고 경찰에 뻗대는 그의 강인한 줏대는 평범한 사람과 별반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유일하게 경찰이 말로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 준 장편 소설이고, 깡패에 의한 협박도 이례적으로 적게 받았으며 이 적은 협박도 슬기롭게 해쳐나갔기 때문에 경찰과 깡패가 말로를 괴롭히는 일이 줄어들어 그의 굳은 심지가 묘사될 일 자체가 줄었다. 하지만, 경찰과 깡패가 말로를 과거처럼 악랄하고 저열하게 괴롭히더라도 변한 말로는 이제 과거만큼 무모하고 헌신적으로 그의 철학을 미련스럽게 고수하는 방식으로 뻣뻣하게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전작에서의 그의 헌신이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형태로 돌아왔기 때문에.
필립 말로 시리즈는 두 분기로 나누어서 이해하는 것이 편하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6년간의 끔찍했던 할리우드 생활을 경험한 후로, 말로의 인상과 성향은 챈들러가 바라본 할리우드만큼 눈에 띄게 변화했다. 세상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직업윤리 – 불법적인 일을 의뢰받지 않고, 의뢰인들의 소망과 신상을 위협적인 주먹과 권력의 핍박보다 무조건적으로 우선시하던 굳은 심지를 지녔던 말로, 탄탄하고 매력적인 용모로 뭇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호감을 사나, 본인이 여자들에게 추할 정도로 치근덕거리는 것을 혐오하던 말로는 『리틀 시스터』부터 점차 자신의 신념과 행동의 근거가 되어준 기존의 굳은 심지가 지속적으로 흔들리더니 결국 그가 집필한 마지막 장편 소설인 『원점회귀』에서는 아예 초인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굳은 심지를 가진 고집 센 인물에서 전보다는 현실적인 인물로, 감성주의자이자 로맨티스트에서 이성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로 완전히 개변했다. 사실상 말로가 지닌 대부분의 매력이 최종적으로는 반감되었으나, 이 남자를 어떻게 헐뜯을 수 있을까? 말로는 이제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겼다. 외로움과 고독함을 선호했던 그는, 덕분에 누구보다 그다울 수 있었으나 그 때문에 그의 행동을 긍정해 줄 사람을 곁에 두지 못했다. 그는 신이 아니다. 그도 결국 한낱 인간이었고, 결국 다른 사람들처럼 다소 ‘사람답게’ 변했다.
챈들러가 묘사한 말로의 행적은 여기까지였다. 챈들러가 죽는 동시에 말로도 동력을 상실했고, 그 때문에 말로는 기존의 말로와는 상이하고 어색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설상가상으로, 챈들러의 사후 다른 작가가 챈들러의 미완성 원고로 출판한 말로의 다음 장편 소설은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만약 새 작품이 좋은 평을 듣게 되었다면, 아마 그가 챈들러 대신 말로의 이야기를 써내려갔을 것이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없는 가정이 되었다. 말로가 태초의 강인함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과 부대끼면서 유들유들한 면을 배우는 것에 만족할 것인가? 등의 질문들은 아무 소용없게 되었다. 말로는 ‘하드보일드’스러운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또 하나의 낭만이 여지없이 묵직한 현실에 짓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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