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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과 상실의 품에서 웅크린 사람들, 별 다른 도리 없이 멈춰서야만 했던 사람들. 그리고 보란듯이 아무 일 없이 돌아가는 세상을 이방인처럼 낯선 시선으로 마주치게되는 안과 바깥의 명확한 온도차이를 다루고 있다.
담담하고 건조한 말투로 조근조근 읊는 이야기들은 서늘하고 처연하다. 슬픔 앞에서,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써는 도무지 도리가 없이 무자비하게 들이닥친 운명 앞에서 그들은 한없이 무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 김애란은 "계절의 몫과 시간의 일"을 말한다. 이런 태도에서 배어 나오는 사려깊음이 위로를 전하기에, 따뜻함으로 독자에게 가닿으므로 김애란은 계속해서 호응을 얻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 반문하게 된다. 타자에 의한 결핍은 필연적으로 타자에 의한 구원으로 환원될 뿐인지.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묻는 누군가가 없다면, 운명의 노선이 변덕처럼 찾아오는 우연한 행운에서 벗어나있다면 절망속에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아갈 수 없는지?
멈춰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거기에서 그치는 것은 김애란 소설의 정서를 극대화해주는 방법이었겠으나 여전히 나는 조금 불만스럽다. 그 사람들은 그 지점에 머물러 있을 뿐인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나 풍경의 푸름을 회복하고 보다 나은 삶을 선택하는 일도 없이 악천후처럼 찾아온 운명이 다시 물러가기를 기다려야 할 뿐인지. 자신의 삶에서 철저히 유리된 채 언제까지고 슬픔 앞에 주저앉아 그렇게만 있어야 하는 건지.
나는 이런 슬픔도, 위로도 좋지만 역시 그보다는 슬픔과 화해하고 떨군 고개를 들어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야기, 아직 세상에 좋은 것들이 남아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이야기일 수는 없었느냐고 자꾸만 물어보고 싶어진다. 아름답지 않겠는가, 삶에 대한 희망이 싹트지 않겠는가.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를 기다리고있다.
김애란이 아직 제대로 된 장편소설을 못 쓴 것이 바로 그 이유 같다. 세계와의 갈등 대결 투쟁을 설득력 있게 펼쳐내지 못한다는 거 혹은 시도 자체를 안 하거나. 따뜻하고 안타깝고 정겨운 가족 서사나 유사가족 서사는 단정한 문장에 담아 잘 그려내지만 뭔가 많이 아쉬워.
맞습니다. 단정하다는 표현이 참 적합하네요. 종종 특유의 단정함에서 벗어날만큼 약간은 과한 문장들도 보이지만 문장력만큼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작가인 것 같아요. 중학생때 비행운 읽다가 충격받고 접은 이후 처음 들춰보았는데 조금 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와 필력 좋다
잘 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