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는 대략 기원전 6세기의 인도 북동부 샤카족 사람으로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도 꼬살라 국 마가다 국 근처에 마가다어로 가르침을 전파함. 석가모니 사후 죽기 직전까지 시봉하던 아난다의 주도 하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1차 결집을 하는데 이때는 글로 씌어진 게 아니라 가르침을 구전 암송해야 할 부분을 표준화한 거임. 그분량이 방대했지만 근데 인도 전통에서는 천년 이상 베다도 외워서 전승하는 관습이 있었고 승가엔 그런거 직업으로 하는 전문가들인 브라만들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음. 그러다 기원전 2세기 아쇼카 왕이 인도를 거의 통일하고 불교를 국교로 정한 다음 이 아쇼카왕 아들래미와 딸래미가 출가를 해서 스리랑카로 건너가 불교를 전파함.
양가죽(texaschainsaw)2021-03-02 08:39
답글
그때 전승되 오던 가르침을 마가다어의 근친어인 빨리어로 나뭇잎에다가 기록하는데 그걸 패엽경이라고 하고 이걸 ‘니까야’(모은 것)라는 거임. 근데 다른 한편으로 석가의 가르침이 북방으로 흘러감.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인 간다라와 서역 지역으로 전파되는데 이때는 어찌된 일인지 가르침들이 힌두교 브라만의 공식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걸로 전파됨 이걸 '아가마'(전승된 것)이라고 하는데, 이게 중국으로 가서 아함경이 됨. 근데 이 시기에는 간다라-서역에서는 상좌부나 아비다르마 부파불교에 대해서 저항하는 일종의 불교혁신 운동인 대승불교 운동 일어남.
양가죽(texaschainsaw)2021-03-02 08:40
답글
연구에 따르면 재가신자들과 석가모니 유적을 중심으로 가이드하고 강론하는 일종의 법사들, 강론가들 중심으로 일어남. 이때 부처님이 말했다(?)고 하는 반야부 경전도 막 엄청나 게 생겨남. 이 반야부 경전들 중 초창기경전이 금강경이고 원래는 산스크리트어로 씌어졌으며, 기원전 100년에서 기원후 1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걸로 보임. 근데 보면 원시불교의 석가모니 가르침을 그대로 담았다고 추정되는 니까야 경전과 금강경은 씌어진 형식이랑 깨달음의 내용이 많이 다름. 그래서 소위 남방불교, 대승에서는 '소승'이라고 까내리는 상좌부에서는 대승경전을 날조라고 생각하고 인정을 안함.
양가죽(texaschainsaw)2021-03-02 08:41
답글
그런데 본토에서 소위 ‘소승’ 정통파에게 밀려난 대승은 해외포교 엑소더스를 통해 티벳 서역 경유 중국 먹고 한국이랑 일본 까지 잡아먹고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경전 중 하나가 금강경임.심지어 선 불교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육조 혜능은 금강경 한 구절을 우연히 주워 듣고 깨달음의 실마리를 얻었다고 하니 선불교의 초석도 만든 거임. 심지어 대한민국 조계종의 가장 기본중의 기본 경전을 금강경으로 정하고 있음
양가죽(texaschainsaw)2021-03-02 08:41
답글
따라서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 대승입장에서는 금강경이 석가모니의 원가르침이 되는 자료와 어긋나지 않다 뜻이 통한다는 디펜스가 필요한 거임. 금강경을 누가 썼느냐 그걸 떠나서 심오한 경전인 건 분명함. 그걸 깨닫게 된건 불교랑 전혀 관계없는 남인도의 수행자였던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들을 읽다보니까 알게됨. 너무 비슷한 게 많음.
니까야는 초기 부처님 말씀 기록한거 금강경은 후에 불교경전 중 하나로 알고 있음 아님몰랑
니까야는 남방불교 경전 금강경은 북방불교 경전 전자는 소승 후자는 대승
석가모니는 대략 기원전 6세기의 인도 북동부 샤카족 사람으로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도 꼬살라 국 마가다 국 근처에 마가다어로 가르침을 전파함. 석가모니 사후 죽기 직전까지 시봉하던 아난다의 주도 하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1차 결집을 하는데 이때는 글로 씌어진 게 아니라 가르침을 구전 암송해야 할 부분을 표준화한 거임. 그분량이 방대했지만 근데 인도 전통에서는 천년 이상 베다도 외워서 전승하는 관습이 있었고 승가엔 그런거 직업으로 하는 전문가들인 브라만들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음. 그러다 기원전 2세기 아쇼카 왕이 인도를 거의 통일하고 불교를 국교로 정한 다음 이 아쇼카왕 아들래미와 딸래미가 출가를 해서 스리랑카로 건너가 불교를 전파함.
그때 전승되 오던 가르침을 마가다어의 근친어인 빨리어로 나뭇잎에다가 기록하는데 그걸 패엽경이라고 하고 이걸 ‘니까야’(모은 것)라는 거임. 근데 다른 한편으로 석가의 가르침이 북방으로 흘러감.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인 간다라와 서역 지역으로 전파되는데 이때는 어찌된 일인지 가르침들이 힌두교 브라만의 공식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걸로 전파됨 이걸 '아가마'(전승된 것)이라고 하는데, 이게 중국으로 가서 아함경이 됨. 근데 이 시기에는 간다라-서역에서는 상좌부나 아비다르마 부파불교에 대해서 저항하는 일종의 불교혁신 운동인 대승불교 운동 일어남.
연구에 따르면 재가신자들과 석가모니 유적을 중심으로 가이드하고 강론하는 일종의 법사들, 강론가들 중심으로 일어남. 이때 부처님이 말했다(?)고 하는 반야부 경전도 막 엄청나 게 생겨남. 이 반야부 경전들 중 초창기경전이 금강경이고 원래는 산스크리트어로 씌어졌으며, 기원전 100년에서 기원후 1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걸로 보임. 근데 보면 원시불교의 석가모니 가르침을 그대로 담았다고 추정되는 니까야 경전과 금강경은 씌어진 형식이랑 깨달음의 내용이 많이 다름. 그래서 소위 남방불교, 대승에서는 '소승'이라고 까내리는 상좌부에서는 대승경전을 날조라고 생각하고 인정을 안함.
그런데 본토에서 소위 ‘소승’ 정통파에게 밀려난 대승은 해외포교 엑소더스를 통해 티벳 서역 경유 중국 먹고 한국이랑 일본 까지 잡아먹고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경전 중 하나가 금강경임.심지어 선 불교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육조 혜능은 금강경 한 구절을 우연히 주워 듣고 깨달음의 실마리를 얻었다고 하니 선불교의 초석도 만든 거임. 심지어 대한민국 조계종의 가장 기본중의 기본 경전을 금강경으로 정하고 있음
따라서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 대승입장에서는 금강경이 석가모니의 원가르침이 되는 자료와 어긋나지 않다 뜻이 통한다는 디펜스가 필요한 거임. 금강경을 누가 썼느냐 그걸 떠나서 심오한 경전인 건 분명함. 그걸 깨닫게 된건 불교랑 전혀 관계없는 남인도의 수행자였던 라마나 마하리쉬의 가르침들을 읽다보니까 알게됨. 너무 비슷한 게 많음.
오 도움 많이 됐다
답변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