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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만큼 복합적인 면모가 강한 인물은 드물다.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도전가, 오만한 권력자, 못나고 추한 가장, 열렬한 채식예찬가, 도저히 타인을 배려할 수 없는 성향을 타고난 성격파탄자 등 서로 연관성이 부족한 여러 수식어들이 모두 잡스 단 한사람을 명확히 가리킨다. 이 특이하다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그의 편협한 성격과 드라마 같은 일생의 굴곡이 합쳐진 덕에 수많은 사람이 그의 이른 죽음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이 관심은 잡스의 전반적인 인생사를 다룬 월터 아이작슨의 공식 전기 『스티브 잡스』에까지 미쳐 많은 책이 소비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괜찮은 수준의 판매고를 올릴 수 있었다.
잡스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암과 사투를 벌였지만, 이 사실은 애플의 주가와 잡스의 성향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자신의 잘못된 믿음과 고집 때문에 암이 손쓰지 못할 정도로 확산되었고, 이에 더 이상 맞서 싸울 수 없음을 체감한 잡스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일생을 설명해주기 위해 전기 작가로 유명한 아이작슨에게 자신의 전기를 써줄 것을 부탁했다. 아이작슨은 아인슈타인 등 여러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한 그의 전기들이 상업적인 측면에서 부족함 없는 성공을 이미 거둔 적이 있는, 전기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베테랑이었던 인물이지만, 그에게 있어서도 잡스라는 인물의 전기를 집필한다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어쩌면 까다롭기로 유명한 잡스의 ‘공식’ 전기라는 것이 그의 적나라한 실상과 그의 달콤한 변명 사이에 어떤 스탠스를 명확히 취해야하는지를 더욱 망설이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900p를 넘을 정도로 두껍지만 잡스의 100%를 나타내기에는 너무 얇지 않았나 싶은 이 책에서 취한 그의 스탠스는, 호불호가 있을지언정 갈팡질팡하지 않는 확고함을 간직했다. 나는 불호 쪽이지만.
잡스는 극도로 자가당착적인 인물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생각한다는 배려의 기본은 그에게 따분한 것을 넘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자신의 행동이 세간에 어떻게 비추어질지 염려하는 소심함은 일시적인 감정의 동요를 단 한 번도 억누르지 못했다. 그가 만약 SNS의 중요성이 커진 2021년까지 CEO의 자리에서 자신의 꼬인 성질머리를 지속적으로 내비쳤더라면 도덕성에 대한 비판을 더더욱 크게 받았을 것이 확실하다. 세상은 보다 엄격하게 변한지 오래다. 아이작슨은 고민했을 것이다. 이처럼 명과 암이 확실한 인물을 어떻게 평가해야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일단 아이작슨은 공식이라는 직함을 달고 잡스의 저열한 행동을 적나라하게 지적해 잡스의 팬들에게 반발심을 사거나 잡스의 찬양할 수 없는 부분도 억지로 옹호해 자신과 『스티브 잡스』의 평을 떨어뜨리는 수준 낮은 스탠스는 당연히 취하지 않았다.
그가 내린 결론은 ‘잡스의 추악함과 악행은 드러내되 문제 있는 발언들은 숨기자!’였다. 『스티브 잡스』는 잡스가 애인으로부터 얻은 첫 번째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추하게 부정했다는 사실 자체는 숨기지 않은 채로 드러냈지만, 친자 확인 과정에서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한 잡스가 한 “나는 무정자증이라 저 아이가 내 아이일 리가 없다”는 망언은 전기 내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단지 잡스가 그때 자신의 모진 대응을 이례적으로 후회했다는 의외의 인간적인 면모만 부각시켰을 뿐이다. 또한, 아이폰 4를 특정 손 모양으로 감싸 쥐면 수신 감도가 눈에 띄게 떨어지는 현상이 주목받았을 때, 잡스의 “그런 식으로 아이폰을 잡지 말라"는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공식 답변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아이폰 외의 나머지 핸드폰들도 이런 수신 감도의 하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조명함으로써 티가 적게 나는 선에서 잡스를 옹호하는 스탠스를 취했다.
잡스의 문제되는 발언들을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확실한 증거 이외에도, 아이작슨이 잡스의 ‘현실 왜곡장’의 영향을 진하게 받았음이 확실해 보이는 묘사가 전기 곳곳에 산재해 있다. 잡스가 아직 회사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지 못할 위치의 잡스가 주변인들의 그를 향한 충고나 비난을 마주할 때 여지없이 '잡스는 눈물을 흘렸다'는 표현이 등장했다는 점이 그 근거 중 하나이다. 이 표현이 등장한 상황은 보통 제3자가 볼 때 주변인들의 의견이 옳아 보일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많았고, 잡스의 상황이 이를 이성적으로 반박할 수 없으니 감성적으로라도 동정표를 사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아는 잡스는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다.
잡스 역시 죽음을 지근거리에 둔 상태에서도 자기변호와 그 스스로에게 임의로 유리하게 왜곡시켰던 기억을 청산하지 못했다. 자신이 매킨토시 팀을 이끌 당시의 워즈니악을 "워즈는 그동안 별로 기여한 것이 없다"고 단언했다는 것이 잡스의 인간성이 변하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한 대목인데, 이 '그동안'의 범주가 얼마나 되는지는 잡스만 알 일이지만 애플이 출범하기 전부터 초창기에 거의 모든 기술 파트를 담당한 워즈니악의 헌신을 저평가하는 것은 매우 경솔하고 설득력도 떨어지는 발언이었다. 막말로 애플2의 출범 이후 워즈니악이 일을 아예 놓은 채로 월급만 착복했더라도 그 어떤 직원들보다 애플에 기여한 바의 공적이 훨씬 컸을 것이고, 더구나 그 시점까지도 워즈니악이 애정을 품었던 애플2팀은 아직 존속해 있었다. 당연 워즈니악의 성향을 보면 그가 일을 등한시했을 리도 만무하다. 워즈니악이 자신의 매킨토시 팀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사적인 이유로 워즈니악의 부정할 수 없는 헌신을 애써 폄하하는 잡스의 독선이 잘 나타나는 부분이다.
이처럼 세상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 이분법적으로 바라본 잡스였기 때문에, 자신의 무례함과 경솔함이 결정적으로 작용해 애플에서 실권을 잃어버리게 된 사건을 마이크 마쿨라와 존 스컬리가 자신을 배신한 탓이었다고 진심으로 생각했고, 그들을 매우 혐오했다. 일의 실상은 스컬리는 잡스와 이사회 사이의 갈등을 최대한 봉합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잡스가 스컬리가 부재했을 때 스컬리 대신 자신을 지지해줄 것을 사우들에게 부탁함으로써 잡스에게 배신당할 뻔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스컬리마저도 잡스를 변호하는 힘겨운 싸움을 포기했고, 잡스는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완전한 통제권을 쥐기 위해서는 애플을 떠나 다른 회사에 몸을 담아야 했다는 것이 일의 진상이다. 이 과정을 "스컬리는 최소한 가슴에 칼을 꽂는 신사다움은 보였던 것이다"라고 표현한 것은 아이작슨이 잡스와 완벽히 동화되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큰 예시이다. 그는 최대한 중립적인 척을 했지만, 그 잡스마저도 쓰지 않았던 강도의 표현을 아이작슨이 앞서서 썼다는 점에서 이미 중립성은 버린 지 오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적어도 교양서적을 마주할 때는 그 책의 정보가 최대한 편향되지 않았으면 한다. 웬만한 교양서적들의 으뜸가는 책무는 정확한 정보 전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장사치가 아닌 예술가로서의 잡스를 마주볼 수 있는 순기능이 있지만, 잡스의 굴곡지고 사람답지도 않은 생애를 억지로 이해시키려는 인상이 강하게 풍기기도 한다. 잡스에 대한 여러 흥미로운 사실을 이 책을 매개로 얻을 수 있었으나, 아이작슨이 잡스에게 매우 온정적이고 때로는 명확한 사실을 잡스의 입맛에 맞게 개조했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의 전체적인 진위성에 대한 반발심이 지속적으로 떠오른다. 적어도 아이작슨의 스탠스는 나에게는 마냥 역겹기만 했다. 이 책으로 내가 진정으로 얻은 깨달음은 전기 작가와 전기의 대상이 필요 이상으로 친한 전기는 읽지 않아야한다는 것 단 한가지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기 때문에 편향 자체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편향의 대상이 일반적인 상식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는 인물이라 괜한 반발심만 든다. 그림자를 최대한 밝게 보이려 애쓰지 말고, 오히려 빛과 그림자를 각각 더 밝고 어둡게 묘사함으로써 잡스를 세상이 낳은 기린아로 표현하는 스탠스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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