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자 독후감.



헬레나 헤게만, 아홀로틀 로드킬, 2010, 열린책들.

 

이 소설은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빌려왔다. 내가 김사과를 좋아한다고 하자 자신도 마찬가지라며 그는 내게 김사과가 추천했다는 이 소설을 주었다. 김사과가 이 책을 추천한 내용은 그의 산문집 0 이하의 날들‘2000년대의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김사과는 이 책을 읽으며 인간과 언어와 도시를 포함해 존재하는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가는” “일종의 시대정신을 느꼈다고 평했다.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은 형해화된 광기가 얼기설기 짜깁기되었다. 마약에 찌든 열 여섯의 주인공 미프티와 그의 가족 및 친구들 간의 대화는 맥락이 없다. 미프티는 브랜드와 예술가들을 쉴새없이 읊어대고 약물과 술, 담배에 찌들어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몽환적인 섹스에 열중한다. 환락의 도가니처럼 보이는 이 장면들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미프티에게서 쾌락적인 면모는 발견할 수 없다. 현실과 환상이 뒤죽박죽 섞여 양자의 구분없이 비속어와 쌍욕을 버무린 채 아무 말이나 내뱉는 그의 언사와 생각은 독자로 하여금 단번에 이해를 할 수 없게 만들어 여러 번 다시 읽도록 한다. 이 정신나간 소설을 읽으며 확언할 수 있는 유일한 점은 정말이지 주인공이 미쳤거나 적어도 미쳐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주인공이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계속된 알콜중독자 어머니의 학대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그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진정 주인공을 광기로 몰아넣은 것은 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했을 때도, 어머니로부터 벗어나 베를린에서 아버지의 배다른 자매형제와 살았을 때도 그의 주변을 가득 채운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다. 그것이 김사과의 말대로 세계를 상품화로 환원하는 21세기 자본주의의 정신이든 뭐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재한다는 것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고 결국 그에 대항할수록 파괴되는 것은 오직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역자인 배수아는 역자 후기에서 이 소설 자체의 내용보다 이 소설을 둘러싼 여러 논의들을 더 중히 언급했는데 이 또한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 있다. 왜냐하면 사실 이 책은 표절작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열일곱의 나이에 이 소설을 출판해 일약 독일 문학계의 스타가 되었는데 출간 후 일부 문장이 마찬가지로 마약과 섹스를 다룬 소설 스트로보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인용한 것이며 그 외에도 다른 소설이나 노래 가사, 심지어 사적으로 받은 이메일 등을 변형해 인용한 것으로 밝혀졌다(이러한 표절 문장들은 책에 부록으로 무엇을 인용했는지까지 모두 실려 있다). 출판사에 의해 저작권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이를 두고 독일 사회에서 열렬한 논쟁이 벌어졌나 본데 자세한 내용은 역자 후기에 있으니 관심있는 이들은 읽어보길 바란다. 꽤 흥미롭다.

 

아무튼 내용 자체로도 광기덩어리인데 내용 바깥으로도 정상은 아닌(?) 책이다. 김사과가 왜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아, 제목의 아홀로틀은 표지에 나오는 저 양서류를 의미한답디다. 우파루파가 이름인 줄 알았는데 아홀로틀이 본명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