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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평지에서 노을을 보고 있으면, 파란 땅거미와 붉은 석양 사이에 하얀 경계선이 가로지르고 있다. 하늘이 두쪽 난 것이다. 김원일의 <노을>에선 아버지와 어머니에 빗대어 표현하곤 하지만, 난 실상 그것이 남과 북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소설은 어렸을 때와 중년이 된 현재를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백정 출신이었던 아버지는 좌익에 가담하는 내용이 과거요, 외삼촌의 부고를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내용이 현재다. 얼핏 과거와 현재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중심에는 분단이 낳은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

월북한 아버지와 그로 인해 수난을 겪은 ‘나’의 인생은 작가 김원일의 일생과 흡사한데, 이 대목에서 40년대생 작가들의 정체성이 끼어든다. 그들은 한국전쟁을 ‘목격’했으나 ‘체험’하진 않았다는 것. 그들은 ‘이데올로기를 선택하는 쪽’이 아닌, ‘이데올로기에 휩쓸리는 쪽’으로써의 인식이 더욱 강하다는 것. 그렇기에 김원일에게 중요한 것은 남이냐 북이냐,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가 아닌,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비극 그 자체에 있다.

이병주와 같이 학병-해방기-한국전쟁의 주역이었던 일본어 세대에 비해, 김원일 세대의 삶은 다소 맹숭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문학은 현재 대한민국의 비극을 한국 전쟁의 상처와 연결하여,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환원해낸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선 전쟁 그 자체를 다뤄내는 작업보다도 중요하다.

‘수난’이라던가, ‘한’이라던가. 이런 주제에 대해서 식상함을 느끼는 독붕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 대체로 수능의 탓이 아닐까 생각하긴 하는데, 어쨌든 김원일의 <노을>은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도 충분히 서정적이고 또 한편으론 격렬한 작품이다. 홍정선 평론가가 말하는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노을에 바래 이제는 한 줌의 역사가 돼버린 한국 전쟁. 그러나 김원일의 소설은 여전히 견실한 문학으로서 우리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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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은 내가 찍은 노을 사진들.

김원일 재밌넹. 다른 작품들도 봐야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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