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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문학 첫번째

"희고 말간 것은 싫다. 탱탱하고 반들거리는 피부도 싫다. 한 번도 깨져 보지 않아 굳은살이 배기지 않은 삶은 정상적인 삶의 행로라고 볼 수 없다. 그런 삶은 가짜다. 역사가 없는 것이다."    - 본문 182페이지에서

  생각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떠나서 이상적인 남성 같은 건 없다고 단언하며 작품 내내 마이 웨이를 고수하는 강민주가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더라.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기술한 그녀의 냉소와 독설은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어서 남성이 읽어도 자연스럽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끔 하는 부분이 있더라구. 얼마 전에 읽었던 원미동 사람들 연작의 따스하고 연민어린 문체를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던 내겐 충공깽 그 자체...  

그렇지만 역시 다 때려부수는 쪽으로 결말을 낼 수는 없었는지 후반부 들어서는 다시 성별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투쟁이 아닌 접촉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결말을 내더라구. 뻔하고 당위적인 마무리라고 까는 건 물론 쉽지. 그렇지만 이 결론에 다다르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이 문제를 파고들었을지 상상해보니 그렇게 속단하기도 어렵겠더라.

그리고 또 개인적으로 웃겼던 부분은, 똑같이 스스로가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보통 사람들'을 멋대로 재단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믿지만 강민주와 죄와 벌의 라스콜라니코프가 놓여 있는 환경이 전혀 다르다는 거야.  한쪽은 평생 살면서 금전 문제가 발목을 잡을 일이 없는 자산가지만 다른 쪽은 전당포에 맡길 물건조차 변변치 않은 무늬만 대학생이니까. 읽으면서 물질적으로 이렇게나 판이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인물들이 유사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흥미롭더라구.

또 이 작품을 읽고 나니 한국의 '여성 문학'이 얼마나 게을렀는지 감이 오더라. 이미 30년 전에 작위적 설정이나 페미 코인 덕을 보지 않고도 충분히 호소력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말이지. 일단 얘기가 볼 만 하면 작가가 읽지 말라고 난리를 쳐도 찾아보는게 사람들인데. 이럴 역량이 안 되니까 작품 자체보다 여성과 소수자(?)라는 정체성을 보고 책을 사라고 독려하는 마케팅이 성행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