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일 2020/10/23
- 133일차 2021/03/04
- 오늘 읽은 책
1. 일리아스 - 호메로스 - 숲, 천병희 역
1p ~ 55p, 716p~ 726p - 66p
-134일차, 드디어 독갤 근본픽, 사놓고 거의 네달이 넘도록 방치한 일리아스를 펼쳤음
와, 일리아스 서사시의 제 1행,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여기서부터 뽕이 확 차올라, 읽을 맛, 감칠맛이 혀끝, 아니 뇌 끝에 감돌았다.
그런데 몇줄 안가서 인물을 부르는 방식의 독특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호메로스는 한 명의 인물을 지칭하는데에 제 1권 분량에서만 4가지 정도의 다른 표현 방식을 사용했다.
사실 그냥 주욱 읽어나갔어도 상관 없었을 텐데, 내가 전혀 모르는 세계의 인명이다보니,
그리고 이것이 노래로 불리던 시 이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배경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란 생각 때문에
겁이 덜컥 나서 주요 인명 부록으로 도망쳐버렸다.
인명 부록에서 각 인물들의 간략한 소개를 하는데 아차, 여기서도 누구와 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친구
안그래도 익숙하지 않은 그리스식 이름에, 지칭하는 방향마저 여댓개다보니 머리가 어질어질 했다.
그러나 누가 누구랑 싸웠네, 누가 자기 아들을 도륙내 신을 시험했네, 누가 누구랑 친구라서 누가 복수를 했네, 누가 자기 아들, 딸이랑 교합을 했네
하는 이야기들이 참 자극적이라, 인명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아도 그들의 존재가 머릿 속에 잘 남아있기는 하였다.
그러다보니 어렴풋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머릿 속에 담아둔 채로 펠레우스의 아들과 아트레우스의 아들의 다툼에서 나온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읽어보니
지레 겁먹고 도망쳤던 표현들이 머릿속에 잘 와닿았다. 이를테면 아이언맨을 보고, 하워드 스타크의 아들, 스티브로저스의 친구, 타노스의 숙적, 캡틴 아메리카의 동료이자 라이벌 이라고 부르는 식이니 다양한 방향과 입장에서 인물을 바라보면서도 그 인물의 존재가치가 더 명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호메로스의 노래를 직접 듣던 그리스인이 아님이 아쉬울 뿐이었다.
사실 신화, 서사시를 제대로 읽는 것이 이번이 사실상 처음인데, 처음 받은 인상으로는 인물들이 상당히 직관적이었다.
이 서사시의 인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아마 노래의 특성상 같은 표현을 반복하면서도 어느정도의 변주가 필요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 다양한 직관적 표현들 덕분에 이 노래가 얼마나 깊은 인간의 본능과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지,
또, 내 가슴 속에 묻힌 무엇인가를 얼마나 파해치고 있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현대에 들어서 리얼리즘이라는 양식의 영향인지, 자아가 공격받기 쉬운 디지털 시대의 특성 때문인지,
자신의 자아와 본심을 숨기기 급급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곧바로 드러내는 표현법이자, 탐구법아닐까?
나 자신을 생각해볼때도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만일 근현대에 들어 발생하는, 고전적인 비극의 운명과는 다른 부조리한 고통들이 이러한 감춤에 있다면,
드러냄이 그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릴 적 만화로 읽은 그리스 신화를 돌이켜볼때, 그 당시는 재밌다고만 느꼇던 그들의 운명이 이제와서는 잔혹하고 안타깝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말다툼은 상당히 직접적이고, 주변 인물들도 상당히 단도직입적이다.
또, 헤라가 좀 못 되먹고, 신경질을 부리는 여신이기는 해도
제우스가 자신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다면 당신을 줘팰수 밖에 없다고 일갈하는 장면은 상당히 노골적으로 다가왔다.
그의 자식들도 불사신이것만, 헤라를 도와줄 수 없다니,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제우스가 개새끼라기보다 제우스가 그만큼 강력한 신이라는 경고라 생각해본다.
그도 그럴것이 폭압적이고 개새끼이기만한 신을 왜 숭배하겠는가? 그들의 지배를 왜 따르겠는가?
따르지 않아야할 존재들은 이미 괴물로 형상화되어있다.
잔혹하고 막무가내로기는 헤라를 비롯한 다른 신들도 마찬가지에다
신이란 존재들은 자기 자신조차 지배하는 인간의 본능, 감정등을 의인화한 개념이라는 해석을 떠올려볼때,
인간의 본성이 그만큼 잔혹하고 막무가내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헤라는 대체 어떤 본성일까? 질투의 어머니인가?
신들에게 제물을 바쳐 소원을 비는 것을 보면
인간의 본성에게 무엇인가 좋은 것을 바쳐 평안하게 모셔야 비극을 막고 명예를 이룩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겠다.
인간을 지배하는 신을 거스른다면, 신들이 인간에게 벌을 내리리라.
그러나 우리는 우리 본성 속 신들에게 무엇을 바쳐야 할까? 우리 본성 속 신들이 다투기라도 한다면 어찌해야하는가?
새 책을 집어드니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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