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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형부농은 김용섭이 1960년대~70년대에 걸쳐서 발견해낸 개념이다.


경영형부농이란 봉건지주의 토지를 차경하여 부를 축적하고 있는 계층을 말한다. 김용섭은 경영형부농층이 자본가적 차지농이라고 정의하고 이 같은 계층이 조선후기 사회에 광범하게 퍼져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용섭은 조선후기 사회에서 자본주의 맹아를 찾기 위해 경영형부농에 주목하였다. 따라서 김용섭에게 경영형 부농은 조선후기 사회변동을 대변하는 세력이자 새로운 사회를 수립할 수 있는 사회계층이었다. 


이후 경영형부농은 한국의 사회발전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경영형 부농의 개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김용섭은 부민(富民)을 총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지대를 수취하는 계열, 둘째는 직접생산자 계열, 마지막은 병작지주와 직접생산자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계열이다. 김용섭은 경영형 부농이란 일반적으로 직접생산자 계열에 속한다고 보고, 이들이 소농적 자급자족 뿐만 아니라 부의 축적을 위해 임노동ㅇ력의 대량 사용, 새로운 농법 개발 등 여러 시도를 통해 농업생산력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점에서 근대자본주의 자본가와는 차이가 있지만 이들의 존재는 기존 사회를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저력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김용섭이 경영형 부농 개념을 찾아낼 때 사용한 연구 방법은 양안의 분석이다. (정확히는 고붕 용동군 양안)


이 양안에서 김용섭은 농민을 세 가지로 나눈다. 자작지와 시작(소작)지를 가진 농민, 대여지와 시작지를 가진 자, 세 가지를 모두 가진 자이다. 


1결 이상 토지를 보유한 부농층 가운데 자작과 소작을 병행한 농민이 전체의 5분의 1혹은 3분의 1에 달하였다고 설명한다.


또한 토지를 매입할 때 이전 소유자의 이름을 기입하는 관행을 지적하며 이 양안이 처음 만들어질 시기인 1708년 이전에도 경영형 부농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에 논문의 저자는 양안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용섭은 이 양안 내용으로 지주-소작 관계를 추출했고, 김용섭과 대척점에 있는 이영훈의 경우 궁방에서 지주- 소작으로 이어지는 중층적 소유관계를 추출한 것을 언급한 후 이를 비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양안의 경우, 19세기의 구분에 따르면 유토이고 17세기 말의 구분에 따르면 민결면세지이다. 따라서 이 분류에 따르면 기록된 사람은 모두 전주(토지 주인) 이라고 볼 수 있으며, 다시 말하면 이는 당시 용동군 내부의 민전에 대한 토지소유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이 같은 분석을 통해 저자는 경영형 부농을 비판하며, 경영형 부농론이 지나친 근대주의의 함정에 빠졌다고 지적하며, 조선 후기 농업사 연구는 근대주의 시각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 역시 이에 동의한다. 양안의 연구 결과는 분명 획기적이지만 이를 통해 검출된 경영형 부농이 과연 근대 자본주의의 맹아를 가지고 있는지, 더 나아가 서구의 관점에 따른 근대주의가 조선의 발전상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경영형 부농의 옹호자나 비판자 모두 지나치게 근대라는 관점에서만 이 개념을 바라본다. 저자도 지적한 것이지만 이를 위해 농업생산력의 단계적 발전이 아닌 비약적 발전이라는 혁명적 개념을 추출해내는데 필자 입장에서는 이 같은 논리 구조가 과연 조선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즉 저자의 말처럼 근대주의를 목적지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필자도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