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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감상을 쓰기 전에 이 소설을 영화화한 <솔라리스>(1972년)를 보려고 했다. 허나 절반 정도 보고 나니 영 소설과는 딴판인 내용이라 그리 볼 마음이 들지 않아 내려두었다. 원작에서 이야기하는 압도적인 미지를 상당히 작은 규모로 축소시켜서 다룰 것만 같았다. 텅 빈 타자에 대한 이야기는 꼭 <솔라리스>가 아니더라도 다른 글이나 영화를 통해 할 수 있지 않을까?



<솔라리스>가 겨냥하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보는 시야가 아니다. 자연을 보는 시야다. 단순하게 요약하면, 어떻게 인간 이성을 연장시키고 확대시켜서 만든 학문으로 그 밖의 자연을 완전히 포섭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렘은 이를 두 종류의 방식으로 접근한다. 하나는 인류 문명이 행성 솔라리스를 연구한 역사의 무용함이다. 주인공이 읽어나가는 이 역사는 솔라리스의 다양한 자연 현상들과 관측 결과들을 수많은 학자들이 어떻게든 분류하고, 이유를 생각하고, 하나의 총체적인 이론으로 이를 해석해보려는 노력의 연속이다. 거대하고 장엄한, 그러나 동시에 덧없기도 한 불규칙한 자연물들이 바다 위에 대륙처럼 만들어지고, 생물체처럼 움직이며, 어느새 사라진다. 그러나 긴 세월이 흐르며 이 모두가 실패했고 지금 솔라리스는 역으로 학문이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실패로 남아 있다. 그것을 감추고 싶어 솔라리스가 진화의 처참한 실패 결과에 불과하다는 해석을 내놓는 학자까지 있다. 그리 단순하게 취급하기에는 솔라리스가 품은 비밀의 깊이가 상당히 깊다는 걸 알면서도.



또 하나는 (영화가 주로 초점을 맞춘) 솔라리스와 인간 학자들 사이의 소통이다. 솔라리스는 학자들이 쏜 X선의 에너지로부터 무언가 반응을 해야 한다고 느낀 것일지, 한 사람이 가장 원하는 사람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일종의 클론을 만들어서 보낸다. 그것은 일반적인 물질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이를 파괴한다고 하더라도 그 파괴된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 또 다른 클론이 똑같이 그를 찾아와 빈 자리를 메운다. 학자들에게 이 방문자는 악몽이 된다. 어째서 솔라리스가 그런 것을 보내는지 이해할 수도 없고, 솔라리스도 인간들이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라는 것이 솔라리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라면.)



이 두번째 방식은 묘하게 기존 SF 단편들을 떠오르게 만든다. 우주의 다양성을 배경으로 한다기에는 상당히 인류 문명의 확장과 다를 것이 없는 모습들. 개중 하나를 꼽자면, 아마 프레드릭 브라운의 <투기장Arena>가 좋은 예시이리라. 이곳에서 주인공은 인류를 침략하는 외계인 한 마리와 단 둘이, 서로 각 종족을 대표하는 선수로서 싸우게 된다. 그 싸움을 중재하는 의지는 이 두 종족보다 훨씬 더 발전한 일종의 의지인데 그 역시 인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솔직히 말해, 이 단편의 배경을 몇 백년 전의 독일로 옮겨 두 영주들의 기사들의 싸움을 보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바꿔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나쁠 건 없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 거라면 아예 판타지로 보는 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반면 <솔라리스>는 이런 글쓰기의 기저에 깔린 '모든 것은 독자의 인간적 사고의 확장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철저히 부정하고자 노력한다. 학자들이 행성에 붙인 이름 '솔라리스'는 아주 노골적으로 이를 상징하고 있는데, 그것은 태양, 즉 아폴론의 이름이다. 그러나 아폴론의 솔라리스학은 디오니소스적인 자연을 사로잡기는 커녕 늘 전복당한다. 니체 대신 아도르노 식으로 이야기하면, 계몽이라는 방식으로 자연을 종속시키려는 시도가 빈번히 실패한다. 결국 인류 문명이 택해야 할 방식은 행성과 소통하는 것 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그렇듯 오해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소통을 해야만 한다.



그러고보니, <솔라리스>가 기존 SF의 이 낙관적인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대답이라면, <솔라리스>에 대한 대답도 있기 마련이다. 피터 와츠가 쓴 <블라인드 사이트>야말로 영미 SF스러운 대답이라 할 수 있는데, <솔라리스>가 지적하는 탈인간적인 존재들과 삶의 형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최대한 과학의 케이스 안에 두고, 조금이라도 삐져나오려고 하면 그것에 대해 강박적으로 학문적 이유를 만들며 인간 외의 것을 인간으로부터 만들기 위해 미친듯이 손을 놀리기 때문이다. 과연 <블라인드 사이트>에 대한 대답도 나올 수 있을지 미래가 기대된다.



P.S. 여담으로, 영화 <솔라리스>가 총 세 번이 나왔는데 개중 단 하나도 바다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는 건 참 애석한 일이다. 특히 감상 최상단에 언급한 1972년작이 가장 아쉬운데, 이를 찍은 타르코프스키 감독은 그 후 <노변의 피크닉>을 영화화한 <스토커>에서는 자연환경을 상당히 능숙하게 이용했기 때문이다. 제작 과정에서 꼬였다는 게 이쪽으로도 안 좋은 영향을 준 것일까?



P.S.S. 스타니스와프 렘의 단편집이 작년에 현대문학에서 나올 예정이었지만 무산된 이후로 여태까지 소식이 쭉 없다. 나오긴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