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승세 선생이 2020년 12월 별세하였습니다.
소설가이자 SF 번역가로 활동하였던 천승세 선생이 작년 겨울 별세한 것을 모르고 있다가, 3개월 후에야 알았습니다.
작가로서는 [황구의 비명] 단편집에 실린 단편소설 [점례와 소], [혜자의 눈꽃], 희곡 [만선] 등으로 이름을 알린 사람이고...
SF번역가로서는 폴 앤더슨 [타우 제로], 필립 호세 파머 [연인들], 제임스 B. 블리시 [우주 도시] 등의 작품을 번역하였습니다.
천승세 선생의 SF 번역서들은 1991년~1993년 무렵에 주로 '나경문화'에서 집중적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제게 있어 천승세 작가는 교과서 또는 대입 시험에 자주 나오는 [만선]을 쓴 작가이자,
금쪽같은 SF[타우 제로], [연인들], [우주 도시]의 번역자였습니다.
특히 제임스 블리시의 [우주 도시]는 천승세 선생이 1부만 번역한 후 후속권에 손을 대지 않아서,
총 4부작인 이 작품의 2부 이후를 읽고 싶다는 독자들이 무척 많았고 저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천승세는 오랫 동안 한국 문단에서 중진급 작가들의 커뮤니티에서 중심축 역할을 하였던 사람이었는데,
30~40년 전이었던 1980년대말과 1990년대 초 한국 문단에서 SF에 대한 이해가 사실상 거의 없었던 시절에
문단의 중추적인 인사가 SF를 원서로 찾아 읽어대고, 또 직접 SF 장편을 번역 출간한 것은 무척 특이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자기가 좋아서 SF를 읽고 또 애써 번역까지 해 놓고, "장르 SF, 별로인 것 같다"는 투로 역자의 글을 써 놓는 바람에...
당시 한국 SF 팬덤에서는 "좋은 책 번역해 준 것은 고마운데, SF 별로라면서 왜 열심히 번역했는가"라는 성토가 있었습니다.
천승세는 본래 작가가 아니라 군인이나 무술가가 되고 싶어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가라데와 합기도를 연마하였고,
청소년 시절에는 "공부는 거의 뒷전이었고 주로 동네 양아치들과 어울려 싸움으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육사에 낙방하여 재수생이 되기도 그렇고 백수로 놀던 시절 [점례와 소]를 신춘문예에 투고하였는데 입선하였고,
그러자 서라벌예대와 성균관대가 20살도 안되어 문학으로 천재성을 보인 천승세를 입학시키려고 경쟁이 달아올라서
당시 대중 여류소설가로 이름을 날렸던 어머니 박화성 작가에게 찾아와 아들 천승세를 입학시켜 달라고 졸랐다고 합니다.
공부는 뒷전이었다고 하는데도 훗날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온갖 책을 탐독하였던 것을 보면 참으로 특이한 사람이죠.
(천승세 작가의 친동생은 서울대 영문과 교수가 됩니다 - 뛰어난 모친과 동생이 주변에 있는 환경 덕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작가로서 타고난 역량은 어머니 박화성 작가보다 아들 천승세 쪽이 더 뛰어난 것으로 여겨지고,
실제 작품의 완성도를 보면 일부 작품들은 보기 드물정도로 섬세하고 가공할만한 필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천승세는 작품을 몇 편 쓰지 못했고, 장편도 단편도 실제로 발표한 것이 극히 적은 과작(寡作)이었습니다.
착실하게 매일 같은 량의 원고를 쓰는 스타일의 작가가 있고, 흥이 오르면 느닷없이 일필휘지로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있는데,
천승세는 착실한 스타일과는 정 반대로 영감이 차오를 때나 글을 쓰고 그 때 느닷없이 명작 반역을 작품이 나오곤 했던 겁니다.
천승세의 작가로서의 운명을 가른 것은, "본격 해양소설을 써 보겠다"는 꿈 때문에 원양어선을 탄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작가는 모름지기 직접 경험해 본 것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써야 제대로 쓸 수 있다"라는 소신을 갖고 있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각 지역의 사투리를 스스로 정리하여서 전국의 모든 사투리를 자유롭게 구사하였다는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바다를 바라보며 자라나서인지, 해양소설을 쓰겠다는 목표 때문에 그 힘들다는 원양어선에 몸을 실었는데...
바다와 사투를 벌이다가 돌아와서 해양소설을 쓰기 시작했지만, 1980년대 안기부(국정원) 압력으로 연재 중단됩니다.
그 후유증으로 건강도 잃었고, 창작에 대한 기력과 의욕도 잃은 채 원대한 해양소설은 결국 쓰지 못하고 말았죠.
사실상 1990년대 초에 SF 번역본을 출간한 것을 끝으로 창작과 번역 모두 글로 남긴 게 거의 없게 되었죠.
타고난 천재성에 비해 작품을 많이 쓰지 못하고, 더 나아가 제대로 된 대표작 없이 작고한 천승세 선생의 인생을 보면...
너무 어린 시절에 온갖 운을 다 받아서 그 혜택을 다 누리고, 중장년 이후 운빨이 떨어졌는지 고생만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중고등학생 시절을 무술과 싸움으로 다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양아치 청소년 시절에 저지른 사건을 소설로 썼는데 덜컥 등단이 되고,
더 나아가 대학들이 서로 그를 끌어가려고 경쟁하는 상황이 되어 편안하게 서라벌예대와 성균관대를 차례로 다니며 모두 졸업합니다.
스트레스 만방의 수험생 시절을 바이패스하고도 좋은 학교 잘 다닌 셈이고, 이후 공모전에 내는 족족 당선되어 "4차례 당선"을 기록하죠.
그리고... 이후 꽤 좋은 단편을 써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명작이 쏟아진 1970~80년대를 생각해보면 "좋은 작가 레벨" 정도입니다.
결국 그의 운은 30대까지였는지 이후 불운이 계속되고 건강을 해치면서 꼭 쓰고 싶다던 필생의 장편은 제대로 쓰지 못하였고,
대한민국 전국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영어까지 능했던 그 능력 역시 묻히고 말았죠.
작가사진은 아오지탄광 느낌이네. 황구의 비명 하나로 이름값했지
저 사진 천승세 사진치고 꽤 말끔한 편임. 다른 사진들의 상태는 저보다 훨씬 더 상태가 심각함
천승세 송영 박태순 이동하 송기숙 송하춘 이런 작가들 이제 이름도 듣기 힘든듯.
곰치 이놈아-- 만선에 미친놈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