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세계가 존나게 풍요로워지면서 절대적 빈곤을 벗어나겠다는 일념같은 게 줄어들었고
평화로운 시대도 오래 지속되면서 평화에 대한 갈구같은 것도 드물게 되었고
물론 일부지역이나 일부나라에선 여전히 저러한 절대적 빈곤이나 평화가 매우 시급하겠지만,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들이 공감하는 문제는 아니라는 거임. 우린 주로 그런 나라들의 문학을 보니까.
얼마 전 전에 다니던 독서실 아줌마랑 5분 정도 얘기해보니, 90년대에 독서실에선 그렇게 도둑질이 잦아서 맨날 순찰돌면서 물건챙겨줘야 했는데, 00년대 중반부턴 남의 책상에 뭐가 굴러다녀도 애들이 관심을 안 가진다더라.
최신폰 쓰나 보급폰 쓰나 차이는 분명하지만, 그 차이가 절대적이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예전엔 가령 엠피쓰리 없음과 엠피쓰리 있음의 대결이었다면, 지금은 플래그쉽폰과 보급폰의 대결인데, 그정도 욕망은 부럽기는 하지만 양심을 팔 정도는 아닐 거임.
그런데 사랑에 대한 갈구는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빈익빈 부익부가 더 심해지고 있지. 방송매체가 발달할수록 더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쉽게 접하고, 이런 저런 연애 사례도 빠삭해지니 사람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간보는 게 보편화되어 있으니까.
여튼 그래서 사랑의 대표주자인 야스가 문학에 존나게 나올 수밖에 없는 거 같다. 더 강화된 쾌락(딴건 충족되면서 이건 충족이 안되니)이면서 동시에 아직까지 대리만족되지 못한 욕망이라.
요근래 갤주님의 단편집 여자없는 남자들 보며 갤주님의 야스에 대한 집착에 징그러움을 넘어 전율을 느끼다보니 이런글도 쓰게 되었다.
이제부턴 정말 인간의 시대인 거 같아. 에반게리온은 한 30년 일찍 나온 경종이었던 거 같고, 이제는 시대가 어른을 요구하는 느낌. 물질적인 걸로(외모, 재산 등) 타인을 부단히 간보다 보면 그거 다 부질없다고 현타 느끼게 될 게 분명하므로. 간 볼 필요가 없게 만드는 사람을 요구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 자체를 사랑하게 만드는 어떤 것을 타인에게 요구한다는 거지. 미축은 왜 전재산을 거렁뱅이 유비에게 베팅했는가?
질적 공리주의를 주장했던 밀이나 감정에도 급이 있다고 말했던 이런 저런 철학들은 그들의 주장이 입증되는 시기일 거라고 난 생각해. 야스에 대한 이러저러한 얘기는 그 중간 지점인 거구.
평화로운 시대도 오래 지속되면서 평화에 대한 갈구같은 것도 드물게 되었고
물론 일부지역이나 일부나라에선 여전히 저러한 절대적 빈곤이나 평화가 매우 시급하겠지만,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들이 공감하는 문제는 아니라는 거임. 우린 주로 그런 나라들의 문학을 보니까.
얼마 전 전에 다니던 독서실 아줌마랑 5분 정도 얘기해보니, 90년대에 독서실에선 그렇게 도둑질이 잦아서 맨날 순찰돌면서 물건챙겨줘야 했는데, 00년대 중반부턴 남의 책상에 뭐가 굴러다녀도 애들이 관심을 안 가진다더라.
최신폰 쓰나 보급폰 쓰나 차이는 분명하지만, 그 차이가 절대적이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예전엔 가령 엠피쓰리 없음과 엠피쓰리 있음의 대결이었다면, 지금은 플래그쉽폰과 보급폰의 대결인데, 그정도 욕망은 부럽기는 하지만 양심을 팔 정도는 아닐 거임.
그런데 사랑에 대한 갈구는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빈익빈 부익부가 더 심해지고 있지. 방송매체가 발달할수록 더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쉽게 접하고, 이런 저런 연애 사례도 빠삭해지니 사람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간보는 게 보편화되어 있으니까.
여튼 그래서 사랑의 대표주자인 야스가 문학에 존나게 나올 수밖에 없는 거 같다. 더 강화된 쾌락(딴건 충족되면서 이건 충족이 안되니)이면서 동시에 아직까지 대리만족되지 못한 욕망이라.
요근래 갤주님의 단편집 여자없는 남자들 보며 갤주님의 야스에 대한 집착에 징그러움을 넘어 전율을 느끼다보니 이런글도 쓰게 되었다.
이제부턴 정말 인간의 시대인 거 같아. 에반게리온은 한 30년 일찍 나온 경종이었던 거 같고, 이제는 시대가 어른을 요구하는 느낌. 물질적인 걸로(외모, 재산 등) 타인을 부단히 간보다 보면 그거 다 부질없다고 현타 느끼게 될 게 분명하므로. 간 볼 필요가 없게 만드는 사람을 요구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 자체를 사랑하게 만드는 어떤 것을 타인에게 요구한다는 거지. 미축은 왜 전재산을 거렁뱅이 유비에게 베팅했는가?
질적 공리주의를 주장했던 밀이나 감정에도 급이 있다고 말했던 이런 저런 철학들은 그들의 주장이 입증되는 시기일 거라고 난 생각해. 야스에 대한 이러저러한 얘기는 그 중간 지점인 거구.
오래 전엔 야스는 사랑에서 언급되지 않은 금기나 마찬가지였고, 지난 세기엔 진정한 사랑이 야스에 있다는 생각에 진실을 폭로하기 위한 수호자들에게 지켜졌다면, 현대엔 너무 흔해져서 의미조차도 찾을 수 없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