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시절부터, 남들에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 유일한 긍지가 되었으며, 사실을 이해시키려는 표현의 충동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은,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다. 나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자신을 명석한 인간인 것처럼 여기려고 하였으나, 그것이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충동에서 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한 충동은 인간의 본성에 따라서, 자연히 타인과의 사이에 놓이는 다리도 되기 때문이다. 금각의 미에서 느끼는 도취감이 나의 일부분을 불투명하게 만들었고, 이 도취감은 다른 어떠한 도취감마저도 몽땅 나에게서 박탈하였기에, 그것에 대항하기 위하여는, 별도로 나의 의지에 의한 명석한 부분을 확보하여야만 했다. 남들의 경우는 모르겠으나 나에게 있어서는, 명석함이야말로 나의 자기(自己)이지, 그 반대, 즉 내가 명석한 자기의 소유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충 화자는 내가 나를 명석한 인간이라 여기려던 건 맞지만 그건 나를 이해하고자 불러일으켜진 충동이 아니라 금각으로부터 얻는 도취감(이것 외에 자신이 살며 얻는 모든 도취감을 박탈하며, 자신의 일부분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뿐만 아닌 또 다른 도취감을 얻고 타인과 자기 사이에 놓을 수 있는 다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생겨난 충동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