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자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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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노모리 호슈, 한 경계인의 고독과 중얼거림, 태학사, 2012.

 

저자 아메노모리 호슈는 18세기 일본의 유학자이자 외교관으로 한··일 언어에 모두 능통할 정도로 박식한 노학자다. 조선과의 교류를 담은 책이나 한국어 교과서 등도 집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산문을 모아놓은 이 책에도 조선에 대한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재밌는 점은 그는 조선을 한국이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역자는 이에 대해 이미 당시부터 조선이라는 단어가 멸칭으로 쓰였기에 일부러 한국이라고 표했다고 각주를 달았는데 타국에 대한 이와 같은 배려는 그가 적어도 시류에 부화뇌동한 학자는 아님을 알게 해준다.

 

우리에게 옛날의 유학자에 대한 이미지는 성리학을 우선하고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며 불교를 억압하는 등의 이미지다. 그런데 저자는 다르다. 불교에도 배울 점이 있다고 하고 중국의 법이 꼭 일본에 맞는 법은 없으며 각자 장단점이 있다고 얘기한다. 이러한 저자의 인식은 비단 학문이나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는 삶의 전반에 있어서 상대주의적 시선을 견지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일본 고유 문자인 가나가 없었다면 일본인들이 더 한자를 잘 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중국, 인도, 한국, 일본, 만주, 심지어 네덜란드까지 언급하며 제각기 자기 나라 말에 호응한 것으로 자연의 이치를 따랐을 뿐이라며 가나가 없었으면 따위의 발언은 중국 외의 나라에는 문자가 없어야 한다는 식의 사려 깊지 못한 발언이라고 비판한다.

 

나는 특히 이 대목에서 조금 놀랐다. 어느날 박사부라는 한국 노인이 저자에게 말하길 우리나라는 군현제여서 아랫사람이 윗자리로 올라가기 쉽기 때문에 자연히 사람들이 머리를 굴리는 일이 많고 뇌물도 행해져 아침에는 성하고 저녁에는 쇠하니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그대 나라의 사람들은 제각기 그 분수가 정해져 있으니 부럽습니다.”라 했단다. 이 대목은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 볼 수 있다. 사실 과거 한국의 신분은 법적으로 구성돼있지 않았다. 누가 양반이고 누가 상민인지가 명확히 법적으로 명시되어있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랬기에 조선 후반에 들어서면 양반이 전체 인구의 3, 4할이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계층이동이 활발한 사회에서는 계층상승욕이 강할 수밖에 없다.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추태들도 이와 완전 무관하다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 일본은 법적으로 신분이 정해져 있었다. 그렇기에 한 번 사무라이는 평생 사무라이로, 한 번 상인은 평생 상인으로, 한 번 농민은 평생 농민으로 살아갔다. 그래서 일본에는 그리도 몇 대씩 내려오는 가업들이 많은 것이다. 심지어는 국회의원 등 정치인도 세습인 경우가 많지 않나. 아무튼 이런 사회에서는 서로 자신의 자리에서만 열심히 살며 그 자리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즉 자기 분수를 안다는 것이다. 이러니 사회 내부적으로 활력이 그리 많지 않다. 90년대부터 이어져 오는 일본의 장기 침체는 경제적인 면도 있지만 이러한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양국의 차이를 이 책에서 저자가 보여준 시선대로 생각하자면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비록 저자는 이 문제에서만큼은 상대주의적 입장을 내려놓고 일본의 신분제가 더 낫다고 주장하지만 말이다.

 

역자에 따르면 이와 같은 저자의 상대주의적 세계관은 일본이 세계의 중심이자 제일이라 여겼던 아라이 하쿠세키나 모토오리 노리나가 같은 학자들에 의해 비판받았고 후대에도 저자보다는 아라이와 모토오리 같은 국수주의적 학자들이 더 중히 다루어졌다고 한다. 아마 그것이 20세기 초중반에 걸친 동아시아의 비극을 창출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일본인들, 나아가 한국인을 포함한 각국의 모두가 저자와 같은 상대주의적 입장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상호 간에 합리적이고 동행하는 관계를 꾸려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