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7일자 독후감.
염운옥, 낙인찍힌 몸, 돌베개, 2019.
인종이라는 단어만큼 모순적인 단어도 드물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단일종이기 때문에 인종이라는 분류가 되어야 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인종하면 피부색에 따른 분류법을 떠올린다. 백인, 황인, 흑인, 홍인 등등 말이다. 하지만 대개 피부가 검은 인도인들 중 다수는 생물학적 인종 분류상 코카서스 인종으로 분류되며 코카서스 인종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백인종’이다. 코카서스 인종은 유럽과 미국에도 있지만 이란을 포함한 서아시아와 인도를 포함한 남아시아에도 거주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란의 무슬림이나 인도의 시크교도를 향해 백인이라 지칭하지 않는다. 인종이 정말로 생물학적인 차이, 그것도 거의 차이가 없다시피한 차이를 일컫는 개념이라고 한다면 왜 우리는 그들을 코카서스 인종이라 칭하지 않고 백인이라 칭하는가? 이 책은 이러한 물음에 대해 답하고 있다.
책은 총 6장이다.
첫 장 ‘인종에 갇힌 몸들’에서는 인종이라는 개념의 기원과 형성에 대해 살펴본다. 우리는 이 장에서 린네의 분류학과 빙켈만의 미학, 그리고 안면각과 골상학을 통해 인종이 어떻게 근대에 형성되었고 그것이 창시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방식으로 혐오와 차별에 힘을 실어주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2장 ‘검은 몸의 노예, 저항의 언어’에서는 흑인성, 16세기 이후의 아프리카 노예제와 노예무역 그리고 인종주의에 대해 살펴본다. 이 장에서 중요히 다루어지는 인물은 18세기의 인물인 올라우다 에퀴아노다. 그는 열한 살의 나이에 아프리카에서 납치된 후 미국과 캐나다, 지중해와 북극을 다녀온 뒤 주인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신의 수기를 남겼다. 2007년 영국이 노예무역 폐지 200주년을 기념해 여섯 종의 우편을 발행했을 때 그는 당당히 영국인으로서 그 한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 해의 노예무역 폐지 행사와 관련해 주인공은 노예무역 폐지 법안에 힘쓴 윌리엄 윌버포스였다. 에퀴아노는 ‘조연’으로 캐스팅됐다는 저자의 비판은 사뭇 귀 기울일만 하다.
3장 ‘인종, 계급, 젠더가 교차하는 여성의 몸’에서는 사르키 바트만, 메리 프린스, 서저너 트루스라는 세 흑인 여성의 삶에 대해 논함으로써 인종과 계급과 젠더라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세 정체성의 교차점에 대해 얘기한다. ‘호텐토트의 비너스’라 불리며 평생을 서커스에서 구경거리로 삼아지다가 죽고 나서도 시체는 박제돼 187년 동안 프랑스의 박물관에 갇혔던 바트만. 흑인 여성 노예로서 자신의 삶을 구술했지만 두 백인에 의해 적어지고 편집되어 실질적으로는 본명조차 모르는 프린스. 여성은 연약하고 남성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는 당대의 여성성에 대해 남자만큼 일하고 남자만큼 채찍질을 견뎌낸 자신은 여성이 아니냐고 연설한 트루스. 이 세 여인 삶의 흔적에서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지혜를 얻어내야 할 것이다.
4장 ‘혐오스러운 몸에서 강인한 육체로’에서는 유대인을 향한 인종주의의 역사를 설파하며 작금의 이스라엘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종주의를 얘기함으로써 그들이 그들 조상들이 겪은 고통을 타인에게 행하는 피해자의 가해자화를 말한다. 나치 독일 시절 가장 예쁜 아리아인 아기로 뽑힌 해시 레빈슨 태프트는 사실 유대인이었다. 그만큼 유럽에서 유대인과 비유대인 간의 외적 차이는 불분명했다. 그렇기에 반유대주의자들은 유대인다움을 만들어내야만 했고 유대인들에게 특정 표식을 지니게 함으로써 자신들로부터 구별해왔다. 수 백만이 죽은 홀로코스트의 참극을 겪은 유대인들은 그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끔 유대민족이 강인한 신체를 지녔다고 재정의하는데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세운 국가 이스라엘은 2018년 민족국가법을 통과시키며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역사적 조국이며, 그들은 배타적 자결권을 지닌다고 천명했다. 20%에 달하는 이스라엘의 아랍계 주민들은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유대인이지만 짙은 피부색으로 인해 천시받는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은 이제 유대인으로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게 되는 걸까?
5장 ‘베일 안과 밖, 그리고 문화정치’에서는 무슬림을 향한 인종주의와 베일로 칭해지는 무슬림 여성들의 의복을 둘러싼 서구의 논쟁을 정리하며 우리의 생각을 더욱 깊고도 복잡하게 만든다. 베일이 억압이자 저항일 수 있다는 이 모순적인 사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종교적 관습은 세속으로부터 어느 선까지 존중받아야 하나? 인종주의라는 폭력이 피해자로 하여금 대항책으로서의 폭력을 가까이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야 하나? 책은 답을 주지 않는다.
6장 ‘한국에서 다양한 몸과 함께 살아가기’는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이주민을 향한 인종주의에 대해 논하면서 작금의 다문화주의가 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역설한다. 한국에서 5년 이상 합법적으로 거주할 시 영주권이 부여된다. 그렇기에 외국인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최대 4년 10개월까지만 체류할 수 있다. 고용허가제에서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다. 휴업이나 폐업, 심각한 임금체불이나 폭행 등에만 예외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니 너무 심각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부당대우를 울며 겨자먹기로 겪을 수밖에 없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노동력은 이용하겠지만 결코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의미한다. 이외에도 많은 얘기들로 한국 사회의 배타적이고 인종주의적 측면을 저자는 나열한다.
나는 인종이 싫다. 성별도 싫다. 나이도 싫다. 나는 인간 000이다. 황인종 000도 아니고 남성 000도 아니고 이십 대 000도 아니다. 그것은 나이지만 내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일부분일 뿐 나를 온전히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들을 포함해 여러 정체성과 경험들이 얽히고설키어 구성된다. 지금도 구성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나에 대해 나를 구성하는 단 하나의 무언가로 정의내리고 낙인찍으려고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정체성이 나의 본질이며 나는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얘기하지 마라. 그것을 과학의 이름으로 옹호하지 말라. 나뿐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하고 싶은 얘기다. 인종을 포함해 그 사람의 정체성이 어찌됐든 간에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 정체성 자체가 당신에게 크나큰 피해를 주었는가? 나 역시 이러한 정체성에 야기하는 그릇된 인식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최대한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여기에 더 무슨 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와 이아저씨 ㅇㅏ직도 하시네 대박
좋은 책 알려주고 정리해줘서 ㄱㅅ 추
좋은책을 소개해줘서 고맙고, 큰 울림을 주는 감상문도 고마워
오래전에 독후감 쓴 책이네 잘 읽었어
하루한권이 가능한가.. ㄷㄷ - dc App
멋진 감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