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자 독후감.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열림원, 2019.
이 책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부산역에서 샀다. 아마 저녁 11시는 족히 넘은 시간대였고 나는 비에 홀딱 젖은 채 부산역 내의 편의점에서 이 책을 골라 구매했다. 그리고 대략 두어 시간이 남은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2층 의자에 누워 이 책을 읽었었다.
책은 평범한 산문선이다. 내가 산문집에 가지고 있는 편견은 그것이 가벼운 글이라는 것이다. 큰 울림을 주는 경우는 거의 드물고 대개 여러 단상들만을 쥐어주며 씨익하고 웃을 수 있는 뭐 그런 글들의 모음집이 나의 산문집에 대한 평가였다. 그런데 그 날의 이 책은 달랐다. 몇몇 산문들이 저자의 가족과 연관되어 있었는데 아마 내가 책을 읽으며 운 가장 최근의 기억이 이 책일 것이다.
추석을 맞아 부산으로 내려간 그 날 이후로 내 친부를 여태 본 적이 없다. 원래는 내려가기 힘든 일정을 제쳐두고 홀로 쓸쓸히 명절을 맞을 그이를 위해 부산으로 향한 나를 향해 친부는 너무나도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었고 나는 그 뒤로 그이를 평생 보지 않을 심산으로 서로의 면면을 마주한지 십 분 만에 발걸음을 돌린 것이다. 누군가는 내게 후회하지 않겠나 했다. 나를 만나러 내가 다니는 학교에까지 그의 소식을 들으며 끝내 만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를 만나지 않았고 이제는 별 후회도 없다.
그는 내게 있어서 제목처럼 잊기 좋은 이름이었을까. 내 친부의 석자, 유명 개그맨과 마지막 한 글자만 달라 어린 시절의 나에게 혼란을 준 그 이름은 내게 그저 잊기 좋을 뿐이었을까. 많은 맥락이 있지만 어찌됐든 그 한 사건으로 연을 끊어버린 나는 패륜아일까.
넷상의 많은 관념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그중 제일가는 건 모부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존경이다. 나는 암만 생각해도 효도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모부와 자식이라는 관계는 내가 보기에 자식이 도덕적 당위성을 온전히 지니고 있다. "누가 이 개같은 세상에 낳아 달랬나, 왜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느냐"라는 외침에 모부가 할 말은 없다. 그저 그러한 도덕적 당위성을 오랜 기간 서로의 관계를 통해 모부가 무마할 뿐이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경우 자식이 모부를 무조건적으로 공경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나는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 이러한 나 자신의 생각도 내가 나의 모부와 악연이 있어 생긴 생각일 테고 내가 반출생주의에 개인적인 차원에서 동의하는 것도 그러한 연유일 것이다. 다들 자신의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는데 무슨 정답이 있고 하겠나. 이젠 그저 조용히 관망하고 싶다. 다 부질없다고 느낀다. 비관만 는다.
아름다운 산문을 읽고도 내 푸념만 늘어놓는 꼴을 보니 책은 읽어서 뭐하냐는 생각이 든다. 원한을 줄이고 내 삶의 안정을 찾아 떠나야 하는데 이게 참 쉽지가 않다. 이래서야 유튜브에 악플 남기며 인생을 즐기는 인간들과 뭐가 다를까 싶기도 하다. 반성하며 겨우겨우 산다.
9급 공부는 언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