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일 2020/10/23
- 142일차 2021/03/13
- 오늘 읽은 책
1. 일리아스 - 호메로스 - 숲, 천병희 역
404p ~ 424p - 21p
-142일차, 오늘은 집중도 안되고, 신경쓸 일도 많고 그래서 쪼금만 읽었다.
"그러면 자, 그대는 스틱스 강의 범할 수 없는 물에 걸고
그리고 크로노스를 둘러싸고 있는 하계의 모든 신들이
우리의 증인이 되도록 한 손으로는 풍요한 대지를 잡고
또 한 손으로는 번쩍이는 바다를 잡고는 틀림없이
그대가 나에게 젊은 카리테스 여신들 가운데 한 명을,
나 자신이 늘 원하던 파시테에를 주겠다고 맹세하시오"
어릴때 그리스 로마 만화에서 읽었던, 신들 조차 약속을 어겨선 안된다는 그 스틱스강의 맹세를 읽으니 반가웠다. 한 손으로는 풍요한 대지를 집고, 또 한 손으로는 번쩍이는 바다를 잡는다니, 표현도 참 멋드러진다. 이 말을 한 자는 잠의 신인데, 잠의 신이 죽음의 신의 동생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어둠이 눈에 내리덮혔다." 라는 표현으로 전사들의 죽음을 노래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죽음의 모습과 잠의 모습이 퍽 비슷하게 보임을 중요하게 생각했나보다.
헤라가 아름답게 꾸미고 아프로디테한테 사기템까지 빌려서 제우스 꼬시러 가니까 제우스가 홀랑 넘어오는 꼴이 아무리 위대한 지혜와 힘의 신이라고 해도 꼴리는데에는 장사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땅 위에서 온갖 아름다운 풀들이 침대처럼 풍성히 자라오르고 그 위에서 황금 구름으로 몸을 덮어 사랑을 나누었다는 표현을 읽으니 여인들을 예술 작품처럼 대한다는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의 말처럼 아름다운 문학을 읽을 때에도 꼴리는데는 장사가 없었다.
오늘 책을 읽기 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에는 위대한 고전 문학을 읽고, 대가의 책을 읽고, 이뤄본 자들, 현명한 자들의 이야기, 혹은 그저 재밌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도, 그들에 대한 존경심과 놀라움, 흥분이 그토록 자연스럽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체험을 머리로밖에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감동이 가슴에서 사라지고 머리로 그 감동을 재현할 뿐이었다.
왜 일까? 왜 나는 이제 그러한 흥분과 감동을 느낄 수 없는 걸까?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라 마치 대여섯살의 어린아이 처럼 어딜가든 새롭고, 어딜가든 놀라웠기 때문일까? 이제 내가 발견할 수 있는 신대륙은 없는 걸까? 그러나 일리아스를 평가한 위대한 저술가들은 일리아스에서 느낀 그들의 생생한 감정을 표현해내지 않았던가? 그들이 천재였기 때문일까? 그들이 엄청난 이성의 힘으로 일리아스를 낱낱히 해부한 뒤, 그 결합품의 초월적 완전함을 새롭게 느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들또한 머리에 피가 마른 뒤에는 위대한 작품들을 읽어도 처음에는 무미건조한 감상을 느꼈을 뿐이었을까? 그건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들은 분명히 처음 그 작품들을 읽었을 때도 황홀한, 무시무시한 경험을 했을 터임이 분명했다. 그 천재들만큼은 아니지만, 어린시절의 나도 그러한 경험을 자연스럽게 하고는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의 체험을 되살리고 싶었다. 문제는 어떻게 그 정신의 상태를 재현하는가 였다. 갑자기 신의 계시를 받아 기적을 행하는 예수로 나 자신을 탈바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최소한 그것을 내 의지로 할 수는 없었다. 상상력을 발휘해볼까? 그러나 그 시절의 나와 현재의 나가 상상의 구현력, 몰입도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몇몇 발상들이 떠올랐다. "역지사지",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아라", "저자가 나에게 말하고 있다 상상하라" 굳이어 이 말들의 의미를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무척이나 어렵지만 유용한 말이지 않은가? 하지만 책에서, 특히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일리아스에서 이런 방법론들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역지사지"는 굉장히 의식적이고 분석적인 느낌이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아라"는 실행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고 있기에는 불편한 조언이다. "저자가 나에게 말하고 있다 상상하라"는 다른 조언과도 일맥상통 하지만 그냥 강의를 무의미하게 듣는 것 처럼 흘러가버릴 때가 많았다. 그래서 두번째 조언이 내가 원하는 것에 가장 가까웠고 그러기로 정했다. 그러나 등장인물의 신발을 신어본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의 입장이 될 수 있을까? 놀랍게도 머릿속에 별 것 아닌것 처럼 느껴지는 한가지 답이 떠올랐다. 그들의 대사를 내가 말하는 것 처럼 상상해보자.
이쯤에서 다시 어린 시절의 내 경험을 되돌아보니, 나는 인물들에게 이입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그들의 표현을 분석하지도,(비록 읽은 후에 하기는 했지만) 그들을 억지로 이해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들에게 이입을 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들 모두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와 자연스러운 이입이 안될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라! 다른 사람의 신발을 내 신발인양 신어보라, 책 속의 화자가 내뱉는 말을 내가 신어야하는, 내가 내뱉어야하는 말처럼 읽어보라. 놀랍게도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입이 이루어졌고, 깊은 이성적 분석은 아니지만 충분한 감정의 이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오늘은 집중이 잘 안되는 환경에서 독서를 한 탓에 이 방법을 충분히 실험해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도 매우 유용할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독붕이들도 책이 이해가 잘 안된다면, 그 문장을 저자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닌, 소설 속 인물이 다른 소설 속 인물에게 하는 말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 타인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보자.
오늘까지 달린 거리
7564 / 42195 (약 17.9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