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에는 위대한 고전 문학을 읽고, 대가의 책을 읽고, 이뤄본 자들, 현명한 자들의 이야기, 혹은 그저 재밌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도, 그들에 대한 존경심과 놀라움, 흥분이 그토록 자연스럽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체험을 머리로밖에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감동이 가슴에서 사라지고 머리로 그 감동을 재현할 뿐이었다.
왜 일까? 왜 나는 이제 그러한 흥분과 감동을 느낄 수 없는 걸까?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라 마치 대여섯살의 어린아이 처럼 어딜가든 새롭고, 어딜가든 놀라웠기 때문일까? 이제 내가 발견할 수 있는 신대륙은 없는 걸까? 그러나 일리아스를 평가한 위대한 저술가들은 일리아스에서 느낀 그들의 생생한 감정을 표현해내지 않았던가? 그들이 천재였기 때문일까? 그들이 엄청난 이성의 힘으로 일리아스를 낱낱히 해부한 뒤, 그 결합품의 초월적 완전함을 새롭게 느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들또한 머리에 피가 마른 뒤에는 위대한 작품들을 읽어도 처음에는 무미건조한 감상을 느꼈을 뿐이었을까? 그건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들은 분명히 처음 그 작품들을 읽었을 때도 황홀한, 무시무시한 경험을 했을 터임이 분명했다. 그 천재들만큼은 아니지만, 어린시절의 나도 그러한 경험을 자연스럽게 하고는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의 체험을 되살리고 싶었다. 문제는 어떻게 그 정신의 상태를 재현하는가 였다. 갑자기 신의 계시를 받아 기적을 행하는 예수로 나 자신을 탈바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최소한 그것을 내 의지로 할 수는 없었다. 상상력을 발휘해볼까? 그러나 그 시절의 나와 현재의 나가 상상의 구현력, 몰입도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몇몇 발상들이 떠올랐다. "역지사지",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아라", "저자가 나에게 말하고 있다 상상하라" 굳이어 이 말들의 의미를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무척이나 어렵지만 유용한 말이지 않은가? 하지만 책에서, 특히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일리아스에서 이런 방법론들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역지사지"는 굉장히 의식적이고 분석적인 느낌이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아라"는 실행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고 있기에는 불편한 조언이다. "저자가 나에게 말하고 있다 상상하라"는 다른 조언과도 일맥상통 하지만 그냥 강의를 무의미하게 듣는 것 처럼 흘러가버릴 때가 많았다. 그래서 두번째 조언이 내가 원하는 것에 가장 가까웠고 그러기로 정했다. 그러나 등장인물의 신발을 신어본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의 입장이 될 수 있을까? 놀랍게도 머릿속에 별 것 아닌것 처럼 느껴지는 한가지 답이 떠올랐다. 그들의 대사를 내가 말하는 것 처럼 상상해보자.
이쯤에서 다시 어린 시절의 내 경험을 되돌아보니, 나는 인물들에게 이입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그들의 표현을 분석하지도,(비록 읽은 후에 하기는 했지만) 그들을 억지로 이해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들에게 이입을 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들 모두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와 자연스러운 이입이 안될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라! 다른 사람의 신발을 내 신발인양 신어보라, 책 속의 화자가 내뱉는 말을 내가 신어야하는, 내가 내뱉어야하는 말처럼 읽어보라. 놀랍게도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입이 이루어졌고, 깊은 이성적 분석은 아니지만 충분한 감정의 이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집중이 잘 안되는 환경에서 독서를 한 탓에 이 방법을 충분히 실험해보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도 매우 유용할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독붕이들도 책이 이해가 잘 안된다면, 그 문장을 저자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닌, 소설 속 인물이 다른 소설 속 인물에게 하는 말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 타인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보자.
어제 독서마라톤에 쓴건데 그냥 묻혀서 재업해봄
해보고 후기좀
전에 어떤 갤러가 자신은 책의 세계를 완벽하게 상상하면서 읽는다는 거 보고 나도 그렇게 해봤는데, 확실히 몰입하는데 도움이 되더라.
근데 이거하고 역지사지하고는 좀 다른가? 이건 영화보는 느낌으로 읽는 거고 역지사지는 게임하는 느낌으로 읽는 거니까
ㅇㅇ 게임하는 느낌에 가까움, 반지의 제왕은 영화보는 느낌으로 상상해도 개꿀잼이었는데, 일리아스는 이상하게 그렇게 하면 뭔가 와닿는게 없었음 대사랑 서술에 있어서 행동묘사와 감정묘사의 구분이 사실상 없어서 그런건가 잘 모르겠음.
나보코프 문학강의 첫 부분이 생각나네.
그아조씨 책 안읽어봐서 몰랑. 나보코프가 거기서 뭐라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