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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댓글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게 세카이계 떡밥의 연장선이 아니길 빈다...

하루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니 용서해주세요...ㅜㅜ



이 댓글 보고, 밥 먹고 플로베르가 누군지 찾아보면서 든 생각인데,



잘 생각해보니 '일상'이라는 단어는 일본인만의 무언가라는 기분이 든다.


내 스스로 놀란 게 뭐나면, 비단 라노벨이나 만화뿐만이 아니라, 

추리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심지어 하루키 같은 보통 사람들도 흔히 읽는 문학을 포함해서,

구성상에서 '일상 파트'라고 분류할 수 있을 만한 장면을 의도적으로 배치하는 건, 진짜 일본인밖에 없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



그니까 윗 글에서는 내가 전달을 좀 잘못 한 거 같은데,

내가 말한 일상이라는 건 낭만적인 의미에서의 일상이지, 사실주의적인 의미의 일상이 아니었다;;


굳이 서술하자면 일본적인 미의식의 대상으로서의 일상이라고 하면 좋을듯.

'어떤 윤리적 기준이나 철학적 관념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이,

그냥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지금의 순간'이라는 느낌의.



좋은 예시가 될 지는 모르겠는데, 하나 생각나는 노래가 있어서 좀 가져와보자면...



(한국어 자막 있는 거 같으니 가사 읽고 싶은 사람은 켜보셈, 보카로 싫어하는 사람 위해서 커버한 걸로 가져옴)



보카로 노래 중 '너도 나쁜 사람이라 다행이야' 라는 노래가 있는데,

간단히 말해서 여친이랑 집데이트 하면서 꽁냥대는 게 가사임.


씨발 생각해보니 나는 왜 3월 14일에 혼자서 이딴 글 쓰고 있냐??? 서럽네


아무튼, 이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음.



저녁 노을이 예쁘고 개가 귀여워서

촌스러운 뉴스에 함께 화도 내고

B급 영화에 웃고 버라이어티를 보며 울고

까불며 떠드는, 조금 쓸쓸한 두명이 있었어


너도 나만큼 나쁜 사람이라 다행이야



이게 일본산 스토리텔링에서 나오는 '일상'을 되게 잘 표현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런 여친과의 행복한 순간들을 '나쁜' 것이라고 정의내려 버리면서도,

그래서 '다행이야' 라고 받는다는 게, 되게 일본스럽다고 나는 느꼈거든.


별 의미도 없고, 쓸데없고, 다른 사람들도 실컷 했고, 유치한 말을 

너와 내가 그저 주고받기만 한다는 게 참 나쁜 일이지만, 그래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게.




그래서 느낀 게 뭐나면, 내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떠올리는 책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노르웨이의 숲'임.




잘 생각해보면 노르웨이의 숲 극 중의 상황이 이 노래가사랑 되게 비슷하지 않냐?

언제 자살할지도 모르는 나오코를 찾아갔는데, 정작 묘사는 이 요양원의 일상이 어떤지 잔잔하게 묘사하는 데 지면 대부분을 쓴다던지.

아버지가 그냥 매일매일 죽어가는 처지인데도, 자신이 무슨 기행을 일삼고 있는지 키득거리며 설명하는 미도리라던가.


아마 내 기억에, 미도리 집에 처음 들러서 대화하다가 키스하는 장면에서, 창 밖에서 들려온다는 기타 소리가 뭔 비틀즈 노래였지 싶은데
어째 내 머릿속에는 자체 브금으로 이 노래가 깔린다. 정서가 너무 잘 통해서.




사실 나는 하루키의 소설은 노르웨이의 숲밖에 읽어보지 못했음.

하루키 잡문집은 읽었는데 에세이에서 일상의 정서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건 당연한 거니 에러고...

그래서 이게 하루키 작품들의 전체적인 정서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내가 노르웨이의 숲을 읽으면서 느꼈던 건, '아, 최종병기 그녀가 여기서 나왔구나!' 같은 감정이었다.

이후로도 로맨스 만화건 잔잔한 일상물이건 무언가 일본산 스토리텔링을 보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게 이 정서더라고.

서드 임팩트도 신을 결정하는 서바이벌 게임도, 전공투도 가족의 죽음도, 심지어 자신의 죽음마저도,

'지금 이 순간'의 일상이 더 소중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 같은, 그런 미의식.



물론 내가 솔직히 독서의 폭이 좁으니 그렇게 느낀 거일 가능성이 높기는 한데...

정반대로 다른 나라의 책에서 이런 걸 느낀 적이 있냐면 그건 확실히 아니란 말여.


그리고 흔히들 '씹덕'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 정서와 관점을 체화한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나.

걍 촌동네에서 여자애들이 밥 먹는 것만 보더라도 이런 낭만적인 미의식을 캐치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 않나... 싶음.



좀 심하게 말해, 이 조선인들이 세카이계 가지고 싸우는 꼬라지는

'마쿠라노소시'가 집필된 그 시절부터 정해진 운명의 흐름 같은 거라는 게 내 생각인데.




물론 이건 솔직히 내 주장이고, 근거가 이거 말고는 1도 없으므로

저보다 일문학 많이 읽어보셨을 독갤럼들의 고견을 구한다는 이야기임.



이만 총총.